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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면 떠오르는 ‘토지’ 대단원의 종착지 원주

최지연 에디터 조회수  

6월이 ‘호국의 달’로, 5월이 ‘가정의 달’로 불리는 것과 달리 8월은 공식적인 별칭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의미를 떠올리고 기억한다. 특히 치욕스러운 식민 지배의 역사가 끝난 8월 15일 광복절 전후로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는 이맘때 생각나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다. 구한말부터 광복에 이르는 험난한 역사적 흐름을 폭넓게 조망하는 이 작품의 원고가 완성된 건 공교롭게도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8월 15일이다. 약 2주 뒤인 8월 30일엔 이 마지막 원고가 문화일보에 실려 25년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8월과 ‘토지’, 박경리는 꽤 연이 깊은 셈이다.

박경리 작가의 유산을 찾아가고자 할 때 우리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우선 작가의 고향 통영에 자리한 박경리 기념관은 과거 예능 ‘알쓸신잡’ 1회에 등장해 비교적 인지도가 있다. 작가가 사망 후 묻힌 묘지도 있어 상징성도 크다. 또 ‘토지’ 1부의 주 배경인 하동에 있는 평사리 문학관은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당시 촬영지로 사용한 촬영지를 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경리 작가가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살던 집의 안방

하나 소설 ‘토지’, 그리고 인간 박경리를 놓고 보았을 때 위의 두 곳 만큼 큰 의미가 있는 지역이 있으니 바로 강원도 원주다. 1980년 서울 정릉 집을 떠나 이주한 이래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박경리는 원주를 지켰고 ‘토지’의 4, 5부를 써 필생의 역작을 완성했다. 과연 그곳에는 지금 무엇이 남아있을까. 대문호가 남긴 자취를 따라 원주로 발길을 옮겼다.

박경리 문학공원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토지길 1



박경리 문학공원은 원주터미널 바로 맞은편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약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내리고 보니 일반적으로 공원 하면 떠올리는 한눈에 다 들어오는 넓은 평지가 아니다. 얕은 경사의 진입로를 따라가는 내내 공원 전경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한다.

본격적으로 공원 안을 살펴보니 중앙 광장 주변을 세 개의 건물과 산책로가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인 ‘문학의 집’ 바로 앞 안내판에 친절하게도 관람 순서를 적어뒀다. 그대로 따라가 보기 위해 문학의 집을 먼저 방문했다.



박경리문학의집 외관. 입구가 2층에 있다.

건물을 구성하는 5개의 층 가운데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건 2~4층이다. 2층 입구로 들어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부터 차례대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된다. 사전에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했다면 5층 세미나실도 가볼 수 있다.





문학의 집의 핵심은 3층 토지 전시공간이다. 이곳은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소설 ‘토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성인 키보다 조금 낮은 유리관 안에는 ‘토지’ 각 부에 등장하는 인물의 관계도, 줄거리를 간략하게 제시한 뒤 주요 장면을 커다란 책으로 보여준다. 책 주변에는 그 장면과 관련한 소품이나 키워드를 함께 두기도 하고, 장면에 따라 책 자체를 찢거나 태우기도 했다. 덕분에 방문자들은 긴 글을 읽는 피로를 덜 수 있고 작품이 전달하려는 정서를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건만 전시 방식이 상당히 참신하고 알기 쉬워 놀랐다.



2층은 작가의 생애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이다. 벽에는 학창시절 소녀의 모습부터 딸, 손자와 함께 찍은 말년의 모습까지 여러 사진을 걸어뒀다. 안쪽에는 ‘토지’ 육필 원고, 생전 즐겨 입던 옷, 농사일에 쓰던 호미 등을 전시하고 있다.



문학의 집 바로 옆 원통형 건물은 북카페다. 2010년까지는 이곳이 주요 전시관이었지만 문학의 집 개관 이후 방문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입구에는 6개월 뒤에 발송하는 느린 우체통이, 1층 로비에는 거기에 넣을 엽서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2층 북카페로 올라가면 박경리 선생의 저서는 물론 그림책, 비평서 등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교과서나 상패 등 토지의 시대적 배경인 일제 강점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기증품도 전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박경리 선생의 옛집이다. 북카페 바로 옆으로 보이는 대문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대하듯 활짝 열려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잔디마당을 낀 2층짜리 주택이 나온다. 건물 앞에는 박경리 선생이 생전 즐겨 앉았다는 바로 그 자리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관문 바로 옆 조그만 웅덩이는 손자를 위해 박경리 선생이 손수 만든 물놀이장이다. 원주로 이사한 이유도 손자가 아버지의 빈 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돌봐주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그 사랑이 진정 지극하다.




거실 전경

왼쪽부터 주방 서재 손님방




생전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는 작업실. 끝이 다 해진 방석이 주인의 성정을 말해준다.

현관은 평소에는 잠겨있고 해설 프로그램 참가 시 들어가 볼 수 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소파와 탁자가 놓인 거실부터 주방, 서재, 안방에 이르기까지 고인이 생활하던 그 시절에 시간이 멈춰있는 듯하다. 이중 가장 중요한 공간은 서재 옆 집필실이다. 생전 자신 외에는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는 집필실에는 책상과 장롱, 방석 하나가 전부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작업실이라기에 너무나도 소박한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이 옛집은 1989년 토지개발계획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다. 이에 작가는 집 건물과 부지를 한국토지공사에 기부했고 공사는 이를 공원으로 만든 후 기부채납 형태로 원주시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원주에는 옛집과는 또 다른 중요한 장소가 생기게 된다.

박경리뮤지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567



1998년 문학공원 조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박경리 작가는 다른 거처를 구해야 했다. 이때 이주한 흥업면 매지리의 집은 2021년 박경리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거실과 주방에 가득한 화려한 찻잔은 전부 손님용이었다고 한다. 오른쪽 장롱 위엔 손자가 그린 고양이 그림이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다.

건물 옆 돌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박경리 선생이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생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현관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거실과 주방이, 오른쪽에는 안방이 있다. 우선 거실로 향하니 넓은 대청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텃밭에서 기른 작물들을 손질하고 후배들이 찾아오면 밥상을 내어주는 등 작가가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이다. 그 외에도 손님들에게만 내주던 각종 찻잔을 비롯해 여러 소품이 옛 모습 그대로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집주인이 안방에서 손님을 마중 나올 것만 같은 생생한 생활감이 느껴진다.



고양이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공간

거실과 안방 사이 베란다에는 커다란 벽난로가 있다. 거실이나 안방도 아니고 실외나 다름없는 공간에 벽난로가 있는 이유는 그 옆으로 보이는 쪽문과 관련 있다. 박경리 작가는 동물,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집 주변의 들고양이들에게 밥을 내어주곤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쪽문과 벽난로까지 만든 것이다. 그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는지, 그릇도 화로도 비어있건만 얼마 전까지도 고양이들이 쉬었다 갔다고 한다.

작가의 생을 조망하는 1전시실


토지문화관 본관 1층 매표소와 뮤지엄샵, 3 전시실

작가의 집을 그대로 보존한 2전시실 외에 전시공간은 두 곳 더 있다. 본래 창고로 사용했다는 건물 1층은 육필 원고와 물건 등을 통해 삶의 궤적을 되짚는 1전시실로 꾸며져 있고, 매표소가 있는 토지문화관 본관 1층에는 작품활동 관련 전시물을 모아둔 3전시실이 있다. 입장권 가격은 성인 5000원, 청소년과 노약자는 4000원이다.

작가들을 위해 직접 장을 담그던 장독(좌)과 작가들이 머무르는 창작실(우)

앞서 소개한 박경리 문학공원에 비해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이 다소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박경리뮤지엄이 위치한 토지문화관 자체가 본래 작가들의 작품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시설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 문학관들과 달리 전시나 선양의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 창작의 산실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보면 작가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 봐도 손색이 없다.


‘토지’라는 작품과의 연을 따라 방문한 원주에는 오히려 작가가 한 명의 어머니, 할머니로서 남긴 발자취가 더 깊게 남아있었다. 대문호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떠나 자식들을 사랑했고 자연을 아끼던 사람 박경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꼭 원주를 찾아가 보길 권한다. 수필에서 “원래의 대지, 본질적인 땅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원주(原州)라는 이름 그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라던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강유진 여행+ 기자

최지연 에디터
tplus@viewus.com

댓글1

300

댓글1

  • 은총이0114

    박경리의 소설 ~10년차이로 두번 읽었는데, 느끼는 감정이 다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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