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살라는 말이 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뜻과도 맥을 같이 한다. 가끔 이런 진리를 180도 뒤집는 경우가 있어 화제를 낳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역발상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쓰레기는 어떨까. 종류에 따라 매립장이나 소각장 등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나 ‘아니다’를 외친 이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그 주인공은 남이섬과 서울시 송파구다. 두 기관은 2006년부터 무려 16년째 쓰레기를 주고 또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좀 남다르다. 바로 은행잎이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은행나무 가로수의 은행잎은 노랗게, 노랗게 물든다. 이 아름답던 은행잎은 가지에 붙어 있을 때 빛을 발하지만 바닥에 떨어지고 나면 처치 곤란한 골칫덩이 쓰레기 신세가 된다. 환경미화원이 매일 빗자루로 쓸어내지만 그때뿐이다. 그 다음날 또 수북이 쌓인다.
고민에 빠진 송파구에 남이섬이 구원자로 나섰다. 송파구에서 모은 20t 가량의 은행잎을 남이섬으로 옮겨 흩뿌리는 것이다. 송파구는 쓰레기 처리비용을 절감하고, 남이섬은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선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 남이섬은 왜 은행잎을 가져오려 했을까. 남이섬은 지리적 특성상 다른 지역보다 이르게 낙엽이 떨어진다. 단풍을 보기 위해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가을 풍경을 오래 간직할 방법을 찾았다. 그 때 송파구에서 가로수인 은행나무 잎을 처치하기 곤란하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 같은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남이섬은 송파구에서 가져온 은행잎을 섬 중앙 광장부터 호텔정관루 별관까지 100여m가량에 골고루 뿌려 푹신한 은행잎길을 만들었다. 이름도 ‘송파은행나무길’로 명명했다. 이 길에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동심에 빠진다. 은행잎을 한 웅큼 집어 머리 위로 던지기도 하고,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도 찍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 밖에도 남이섬에는 다양한 단풍을 볼 수 있는 숲길이 조성돼 있다. 송파은행나무길 옆에는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진 메타세쿼이아길이 있다. 메타세쿼이아길은 현재 잎이 갈색으로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길게 뻗어 오른 나무길이 강변까지 이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남이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토존 중 하나인 중앙잣나무길은 떨어진 잣 열매를 까먹기 바쁜 청설모와 다람쥐에 심심할 틈이 없고, 저녁이면 불을 밝히는 ‘풍선등’의 은은한 빛이 더해져 가을밤 운치를 더한다. 섬 서쪽에 위치한 강변산책로는 각양각색으로 물든 잎들이 푸르른 북한강과 함께 어우러져 걷는 이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아트호텔로 유명한 호텔정관루 커피숍 아일래나라운지에서 동쪽으로 펼쳐지는 유영지(柳影池)와 후원 일대는 남이섬의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정원으로, 짙은 커피 향과 함께 조용한 낭만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남이섬 관계자는 “송파구의 은행잎이 남이섬으로 옮겨지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대접을 받는다”며 “초겨울로 들어서려는 이때, 관광객에게 또 한 번의 가을을 선물하는 느낌”이라고 관심을 바랐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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