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일이 마냥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마냥 수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반전해 매 순간을 혼자서 오롯이 겪어본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혼자는 마냥 외롭고도 쓸쓸함을 품은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혼자여서 더욱 풍부한 경험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자 하는 여행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 홀로 여행의 매력을 알아버린 여행객이라면 혼자여서 더욱 뜻깊고, 더욱 완전한 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나 홀로 여행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혼자 떠났기에 더욱 매력적인 여행 이야기를 풀어낸 신간 3권을 소개한다.
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 달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행을 처음, 그것도 혼자 시작하려 한다면, 어려움이 더욱 클 수 있다. 그렇지만 홀로 떠난 첫 여행이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처음인 만큼 새로운 것도 많고 혼자인 만큼 느끼는 것도 많다.
‘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의 작가가 그랬다. 작가는 서른이 넘어 첫 해외여행을 혼자, 일본 삿포로로 떠났다. 그리고 책은 작가가 다시 홋카이도에 방문해 모리노키 게스트하우스와 게스트하우스 민타로 헛을 오가며 10여 년간 만난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가게 된 홋카이도에서 자연스레 일본어를 배우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마주한 모든 일을 담담하게 풀어내 감동을 준다.
혼자 떠났지만 혼자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와 10년 후를 약속하게 되었으니 함께였던 거다. 함께 동네를 거닐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잔을 기울이고. 그리고 그때마다 다시 10년 후에 만나서 지금과 같은 것을 하자고 약속한다. 10년을 고대하면서 기다린다면 그 시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살아가려 할 테다. 그 촘촘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진 않을 게 분명하다.
_「10년 후에 다시 만나요」 중에서
‘처음’, ‘혼자’ 여행을 통과한 작가에겐 이제 어려운 점이 없다. 혼자 있는 것을 낯설어하던 작가는 첫 홋카이도에서 홀로 낭만을 배웠고 어느새 인연을 만드는 데에 어색함이 없는 프로 여행자가 됐다. 그러니 처음, 혼자 여행을 앞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걱정을 덜어내 보는 건 어떨까.
되는 대로 낭만적인
황찬주 / 흐름출판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여행부터 현지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까지, 여행객은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른 여행을 떠나곤 한다. 여기, 모든 여행객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청년이 있다. ‘되는 대로 낭만적인’은 스물여섯 살 청년이 50ℓ짜리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전 세계를 보고 느낀 점을 풀어낸 책이다.
작가는 다른 이가 아닌 오직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마음가짐 하나로 그는 카오산 로드에선 처음 만난 친구와 인생 첫 문신을 새기고 로마에선 우연히 끌리는 이와 동행하기도 한다. 수많은 우연과 인연이 이어지는 여행을 즐긴 그는 아시아, 유럽을 건너 남미의 페루까지 18개국 50여 개의 도시에 발 도장을 찍으며 결국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사막의 우주 한가운데 그대로 누워버렸다. 29시간의 이동, 예고도 없이 새벽의 한가운데 멈춰버린 버스, 안데스 산행과 덜컹이던 트럭. 짐작조차 하지 못한 트럭 파업과 그로 인해 갇혀 있던 수크레에서의 4일. 트럭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걸어 나갈 결심. 차 벽 사이를 걷던 순간. 이 기나긴 여정이 없었다면, 우유니는 지금처럼 아름다웠을까? … 일어나자. 또 내 앞에는 새롭고 아름답고 어려운 길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삐걱거리고 덜컹거리고 꽉 막힌 길일지라도, 단단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걸어내야지.
_466~467쪽, 48장 <버스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여행 중 작가가 눈으로 담은 이것저것을 그림으로 남겼다는 점 역시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다. 작가는 여정 중 온전한 쉼의 순간이면 플러스펜을 들어 그림으로 구석구석을 그려냈다. 단조롭기만 한 일상에서 벗어나 언젠가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자신만의 여행을 꿈꿔보자. 누군가가 계획한 여행이 아닌, 발길 닿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되는대로 떠나는 여행으로 그 이후의 삶이 한층 더 풍성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로 향하는 길-열두 밤의 책방 여행
김슬기 / 책구름
모든 이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어렵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은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로 향하는 길-열두 밤의 책방 여행’도 그중 하나다. 한 아이의 엄마로 10년간 지냈던 작가는 그간 소홀했던 ‘나’를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작가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책방이다. 그는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책방 여행을 즐겼다.
한 달에 한 번 나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안 하던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여행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이상하게 허술했다. 평소의 나는 1년 열두 달을 줄 세워 적어 놓고 달마다 좋을 장소를 모색해 1순위는 물론 2순위까지 정리해 두었을 텐데. 철저하리만큼 계획적이었던 나는 사라졌다. 나태하고 게으르고 느슨했다. 이 여정의 목적이 무언가를 완벽하게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동안 애쓴 나를 돌아보며 쉬어 가는 것이었으므로. 그저 느낌이 가는 대로, 즉흥적인 떠남과 멈춤을 즐겨 보자 싶었다.
_72쪽
사실 책은 온전히 작가 혼자 떠난 여행기만 담고 있지는 않다. 분명 홀로 떠나리라 결심했지만, 아이와 부모님은 물론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까지,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도 했다. 그의 여행은 언제나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만큼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도 ‘나로 향하는 길-열두 밤의 책방 여행’은 한 번쯤 북 스테이를 고민해 봤던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서툰 여행 실력을 자랑하는 작가가 직접 책방을 예약하고 방문하는 과정이 모두 녹아 있기에, 이를 따라 여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은 자차를 타고 가는 먼 여정부터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곳까지, 다양한 책방 정보를 담고 있다. 색다른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글=이가영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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