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일이다. 어떤 이에게 여행이 색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창구라면, 또 다른 이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할 수 있는 도피처다. 특히 누군가에게 여행은 큰 도전이다. 그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여정을 택하고 결국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여행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예상치 못하게 물건을 도둑맞거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까지 여행을 즐긴다.
새로운 사회에 발을 디디며 떠난 여행부터 30여 년간 일한 직장을 은퇴한 기념으로 떠난 여행까지, 각 여행이 품은 의미도 가지각색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완성한 이들의 여행기를 담은 책 3권을 소개한다.
청춘, 가슴이 시키는 대로
김민형 / 크루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험이 있다. 여행도 그중 하나다. 작가는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자유’라고 외치는 여행자다. 그는 젊음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여행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가슴이 시키는 여행을 즐겼다. 돌아오는 일정 없는 편도 티켓만 끊고 대략적인 일정만 설정했다.
‘청춘, 가슴이 시키는 대로’는 작가의 캐나다, 미국, 중남미 자전거 여행기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지만 작가는 긍정과 집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다. 특히 여정 중 만나는 사람과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낯선 사람이 베푼 조건 없는 친절부터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까지, 작가는 홀로 시작한 여정에서 ‘같이’의 가치를 느낀다. 무엇보다 겪은 일을 생생히 풀어내고 현장감 넘치는 사진을 담았기에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독서 이상의 경험을 간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의 여정만 길게 풀어낸 것은 아니다. 책은 자전거 여행은 물론 숙박, 비상시 대처 방안을 비롯한 여러 정보를 함께 담았다. 특히 책 속 정보는 작가가 직접 겪고 대응한 방법을 전한 것이기에 그 어떤 정보보다 유용하다.
감정들은 내가 주인공인 한 이야기의 결말에서 대미를 장식하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행의 추억들이 전부 내 것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나는 세상이 궁금한 어떤 사람일 뿐이었지. 어느새 나는 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275쪽
긴 여행을 다녀온 작가는 이제 그다음 여행을 구상하며 여행 작가로 지내고 있다. 한 번이라도 마음 따라 떠나는 즉흥 여행을 계획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작가와 함께 새로운 여행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
여행도 하고 싶고 취업도 하고 싶고
현재 / 도서출판 푸른향기
20대, 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사회로 첫걸음을 내디딜 단계다. 물론 90년대생인 작가는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여행도 하고 싶었다. 이 마음가짐 하나로 작가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해외에서 어학연수, 인턴,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여행도 하고 싶고 취업도 하고 싶고’이다. 때로는 낭떠러지를 가로지르고 히치하이킹을 하며, 작가는 별의별 경험을 했다.
작가가 여행과 취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해서 책이 전형적인 엘리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은 여행을 원하지만, 현실의 끈도 놓을 수 없었던 작가의 세속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래서 책은 더욱 특별하다. 독자는 요즘 인기몰이하는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와는 다른, 날 것의 여행기를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감을 느낄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흥분되고, 즐겁고, 호기심이 넘쳐나며, 재미있다’는 감정을 얼마나 누리다 죽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실히 할 수 있다. 바로 외국에서 생활할 때다. 여행할 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방인의 삶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겁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도 나쁘지 않지만,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는 게 가장 즐겁다.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한 덕분에 호기심이 넘쳐난다.
-246쪽
책은 시간 순서에 따라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읽는 순서는 독자 마음이다. 제대로 된 여행 이야기를 알아보고 싶다면 Part 2, 미국 이야기를 먼저 엿보고 싶다면 Part 4를 먼저 읽으면 된다. 글 중간중간 카우치 서핑, 히치 하이킹, 현지인 인터뷰와 같은 독특한 요소도 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소심쟁이 중년아재 나 홀로 산티아고
이관 / 도서출판 푸른향기
작가는 공기업에서 34년을 일한 평범한 현대인이다. 그는 은퇴 이후 오랫동안 꿈꿔온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시작한다. 여행에서 그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일을 마주한다. 로그로뇨의 빨래방에선 스페인어를 읽지 못해 반려동물 전용 빨래통에 옷을 세탁하고 감기 몸살이 심했던 날, 버스에서 잘못 내려 5.5㎞를 다시 걷기도 했다. 도보 여행에 힘겨웠던 점만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작가의 순례길에선 즐거움이 더 컸다. 낯선 순례자에게 서툰 자기소개를 하고 이들과 어울려 격려를 주고받으며 자신만의 여정을 즐겼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배낭을 정리하던 중,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안경을 발견했다. 배낭 속 침낭 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마치 집 나간 며느리라도 돌아온 것처럼 무지하게 반가웠다. 늘 잃어버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있구나.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안경은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눈 어두운 내가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사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본문 속으로
길 위에서의 나날은 매우 단순하다. 먹고 걷고 자는 것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여행 중 매일 매일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먹어보는 요리 등 모든 것이 작가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히 그간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달려온 그에게 순례길에서의 시간은 휴식과도 같았다.
어느덧 집을 떠나온 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해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였다면, 이제는 익숙해져 원래부터 방랑 생활을 해온 순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문 속으로
작가는 혼자 여행이 두려워 망설이는 사람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추천한다. 특히 그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해 보라고 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누구나 친구가 되고 서로를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글=이가영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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