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못 잊어’ 한국인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별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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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 정미진 여행+ 디자이너

    소에 따라 기억의 지속력은 달라진다. 집 앞에서 생긴 일이라면 금방 잊어버리지만, 지구 반대편 여행지에서 맞닥뜨린 일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지에서 별난 사람을 만났다는 익명의 제보자들이 등장했다.즘 여행을 못 가니 추억 소환하는거냐고? 맞다. 당장 떠날 수 없다면 회상해보자. 아직까지 기억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그 때 그 사람.


    돈은 없고 시간만 많았던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숙소는 무조건 호스텔로 잡았다. 1박 요금이 3만원이 넘지 않는 곳으로만 골랐다. 주로 20대 여행자들이 모이는 호스텔은 재밌다. 유럽에선 혼숙(?)이 기본이다. 화장실과 샤워실만 남녀 구분하고 침실은 같이 쓰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방 하나에 8~12명이 들어간다. 한 달 넘게 호스텔을 전전하면서 별의별 진상을 다 만났다. 침대에 걸어놓은 내 수건을 제 것처럼 쓰는 사람, 밤새 코를 고는 인간들, 발 냄새와 암내는 기본이다.

    그중 아직도 생각나는 최악의 인간은 따로 있다. 술에 취해 이층침대에서 바닥을 향해 토를 쏟아낸 아이리시맨… 어째 불안불안했다. 대낮부터 술을 퍼마신 그놈은 새벽 4시가 다 돼 만취 상태로 기어들어 와 그 사달을 냈다. 그놈 입속에서 뿜어져 나온 분비물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술에 취해 쓰레기를 집어먹은 건 아닌지 모르겠는 분비물의 냄새 때문에 그날 밤은 뜬눈으로 지새고 아침이 되자마자 다른 호스텔로 옮겼다. 이름 모를 그 아이리시맨은 여행 내내 안줏거리가 됐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내가 여행 중 만난 최악의 사람’으로 등장해 가끔은 질타를 받았고, 가끔은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친구와 둘이 유럽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는 며칠 가운데 하루는 각자 떨어져 ‘혼자 여행’의 재미를 느껴 보기로 했다. 유난히 날이 맑았던 그날, 파리 감성에 푹 빠져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고, 유명 카페인 앙젤리나에 들러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며 완벽에 가까운 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해가 지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시작됐다. 문 앞에서 나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당시 우리는 오래됐지만 고풍스러운 아파트에서 머물렀는데 하나뿐인 열쇠가 친구에게 있던 게 화근이었다. 일단 추위를 피해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개찰구 옆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자 매표소 역무원이 다가왔다. ‘길 잃은 강아지’ 같은 행색의 내 모습을 보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은 눈치였다. 곧이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낯선 도시에서 미아가 된 상황도 기가 막힌데 역대급 언어 장벽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쓸쓸한 그날 저녁, 그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말없이 곁을 지켜준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다. 허공에 떠다니던 불어는 의미 없는 소리로 흩어졌으나 따뜻한 마음은 진하게 남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37.6℃. 2017년 8월 22일, 태풍 전야의 무더위는 홍콩을 절절 끓게 만들었다. 동시에 머무르던 아파트 본햄 테라스의 전기가 나갔다. 당장 오늘 밤은 고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고 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아파트의 관리인은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친구를 보냈다. 그리하여 만난 이가 ‘데이비드 우’. 그는 온갖 인종이 모인 홍콩에서도 유달리 특이했다. 길거리 흔히 지나가는 홍콩인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소설가 이외수가 생각난달까. 또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북한학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 관심분야도 남달랐다.

    단지 한국인 세 명이 곤란해졌다는 말에 달려온 그는 패닉에 빠진 우리를 달래주었다. 새로운 숙소로 데려다주고 사비를 탈탈 털어 저녁까지 포장해 주곤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부처의 자애로움과 인자함이 이런 모습일까? 휘몰아치는 사건 속에서도 고요하게 마음을 진정시켜주던 데이비드 우. 태풍전야 부처와의 만남이다.

    인생 처음 떠났던 패키지 여행 일행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첫 패키지 여행의 ‘강행군’스러운 일정 때문인지 어째 몸이 이상하다 싶더니만 골골 병이 나버렸다. 좀만 걸을라 치면 머리가 핑핑 돌고, 눈 앞에 잔뜩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이 버스에만 젖은 시래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여행 날리나 싶던 와중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아니, 구세주‘들’이 나타났다. 당시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이거나 중년의 부부, 혹은 내 부모님의 또래셨는데, 입술이 파랗게 질린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여기 약 있는 사람?”하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그리곤 곧 어디선가 기적처럼 감기약을 구해 왔고, 장소를 옮길 때마다 모든 분들이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땡땡아, 이거 홍삼 액기스인데 먹어.’ 하며 내 건강을 세심하게 챙겨줬다. 그뿐이랴,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도 더 먹고 싶은 건 없는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물어 가며 고기도 직접 구워 접시 앞에 놓아 주는 등 마치 가족처럼 보살펴 줬다.

    낯선 타지에서 이름도 모르는, 연고도 없는 분들에게 받는 이런 관심이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울컥 올라왔다. 마치 이 기분은…‘댕댕이’가 된 기분이랄까? 좀 더 응석을 부리고 싶었지만 친절한 분들의 살뜰한 케어 덕분일까, 다음날 몸살은 말끔히 나아 있었고 남은 기간 무사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 아직도 어디선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기를.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은

    더 오래 기억나는 법.

    읽다보니 생각나는 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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