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프랑스 스타 가이드 曰 “코로나 끝나도 몽생미셸 투어 라방으로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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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드라이브 공동대표 한주영]

    프랑스 스타 가이드 한주영 대표

    여행, 가이드, 그리고 삶을 말하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여행 가이드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치유 받는 직업

    작년에 시작한 가이드 랜선투어

    코로나 이후에도 효용가치 있어

    코로나 끝나면 당장 프랑스로 출국

    프로그램 만들어 손님 모시고 싶어

    몽생미셸은 2010년대 들어서 프랑스여행의 필수코스로 여겨지고 있지만, 생경한 장소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항공사 회장이 생전에 직원들에게 몽생미셸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는데, 회장이 자리를 뜨자마자 ‘뭐라고? 몽셸통통?’이라며 서로 되물어봤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남아있다.

    ‘직장이 몽생미셸’이라는 한주영 가이드는 한국서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저 좋아서, 또 가이드 일이 즐거워서 9년여를 터줏대감처럼 몽생미셸에 살다시피 했다. 처음 몽생미셸로 가이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선배에게 14포인트로 정보가 입력된 A4 용지 한 장을 받았다. 한국인들을 위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2017년에는 번역본 외에는 유일한 몽생미셸 관련 책도 냈다.

    그는 현재 2019년 설립한 가이드라이브의 공동대표 맡고 있다. 마이리얼트립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투자 받았고, 2020년 한국관광공사 우수벤처기업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2020년 7월에는 국내 최초로 실시간 라이브 랜선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나름대로 성공적인 반응도 얻었다. 랜선 라이브 투어는 코로나 19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인 측면도 있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일상이 복귀하더라도 의미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한주영 대표는 확신했다. 코로나 끝나면 몽생미셸부터 가보고 싶다는 그에게 가이드가 된 이유와 근황을 비롯해 여행의 미래를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주영 가이드라이브 공동대표. <제공 = 한주영 대표>

    여행 가이드가 된 이유가 궁금한데, 그래서 질문드린다. 가이드가 되기 전에 무엇을 하셨나.

    군대 가기 전에는 특별히 한 게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놀다가 25살에 늦게 군대를 다녀와서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는데, 헤드 셰프와 매니저 눈에 띄었다. 그들이 요리를 권해서 요리학교에 등록해서 주경야독으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웠다. 돈이 없었기에 주 단위로 학비 낼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가이드가 된 계기는.

    선배 가이드가 미술관에서 해설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교과서에서 본 세계사는 재미가 없었는데, 현장에서 가이드를 통해 본 모습은 달랐다. 역사가 ‘멀리’가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호주서 요리 배우다가 우여곡절 끝 귀국

    외항사 승무원 현지 도전위해 유럽행

    우연히 가이드 투어 듣고 매료돼

    그때가 독일로 가려다가 프랑스에 머물게 되면서 가이드 투어에 참여한 것 아닌가. 자세히 들려줄 수 없겠나.

    너무 긴 얘기다. 원래는 요리하면서 영주권 얻어서 호주에서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학비를 벌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영주권 받아야 했는데, 원래 좋지 않던 허리 상태가 심각해져서 일을 못 나갔다. 복대를 차고 일하고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일을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보름 동안 앓아누워서 학교에 못 나갔다.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이민성에서 문제 삼았다. 변호사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이민성 담당자가 마지막 진술을 하라고 했다. ‘경고를 못 받았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이민성 담당자는 학교 측 기록에 6번 경고를 한 것으로 나왔는데 왜 못 받았냐고 되묻더라. 그 당시에 나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일 년에 8번 이사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다른 주소로 경고장을 보냈던 거였다.

    기구한 사연이다.

    어쨌든 비자가 만기가 되었으니 호주에서 그나마 가까운 동남아로 잠시 가 있겠으니 이메일로 결과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때 동남아로 한 달 여행을 떠났다. 끝내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추방당했다고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어떻게 지냈나.

    한국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쳤다. 한 달 지났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담당자 켈리에게 연락했다. 켈리는 이메일이 아니라 편지만 보낸 거였다. 비자 취소가 번복되었는데 나는 받지 못했다. 우편 외에 이메일로도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이메일로 보내는 것을 깜빡한 거였다.

    혼란스러웠겠다.

    한 달 동안 멘붕이 왔다. 그러다가 유럽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어서 루프트한자 승무원을 준비했다. 그때가 만으로 스물아홉 살이었다. 승무원 스터디 그룹에 참여해 이십 대 초반 여성들과 같이 준비했다. 이상하게 원래 일 년에 두세 번 뜨는 공고가 그해에는 뜨지 않았다.

    답답했겠다. 좌절할 법도 한데.

    원래 뭐에 꽂히면 돌격하는 스타일이다. 무작정 (루프트한자 본사가 있는) 독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픈 데이라고 현지에서 바로 도전하는 채용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때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왕 떠나는 길이니 일본에서 마이애미, 남미, 북아프리카, 유럽 거쳐 들어가는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남미 마지막 일정인 아르헨티나에서 소매치기당하고 신용카드와 현찰을 다 잃어버렸다. 현지 영사님 붙잡고 긴급송금 서비스로 현찰만 겨우 조금 받았다.

    그런 불상사를 겪으면서까지 유럽에 갔나.

    핀란드에 있는 친구네 별장에 갔다. 어떻게 정비를 할까 하다가 다시 프랑스에 있던 친구에게 신세 좀 지자고 했다. 그 친구는 당시 유로자전거나라 프랑스 지사장이었다. 그때 친구 따라 가이드 투어 참관을 나갔다가 아예 프랑스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때 가이드라는 직업에 훅 빠져버렸나.

    공부가 싫어서 대학도 못 갔는데 가이드를 하면서 밤새워서 공부했다. 손님들에게 설명할 때 그들이 빨려드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알아서 공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 사명이 된 거 같다.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주 망슈현에 있는 유적지 몽생미셸. 한주영 가이드가 9년 동안 ‘직장’으로 일한 곳이다. <제공 = 한주영 대표>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 프랑스 서부 망슈 주 남서부 몽생미셸 섬에 있는 관광지다. 브르타뉴 반도와 코탕탱 반도 사이의 몽생미셸 만에 있다. 중세에 순례 성지였으나, 14세기에는 방어용 벽과 탑을 쌓아 요새로 역할을 하였다. 1791년 혁명군이 감옥으로 사용하다가 1863년에 폐쇄했다. 현재는 다시 수도생활이 행해진다.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1979년 몽생미셸과 만이란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일 년에 350만 여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2017년에 쓴 책 <몽생미셜>을 보니 몽생미셸을 직장이라고 적을 정도로 애착을 보인다.

    10년 전 몽생미셸은 투어라고 부르기 민망한, 차로 데려다주는 수준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음 몽생미셸 투어를 시작할 때 14포인트로 쓴 A4 용지 한 장을 선배 가이드에게 받았다.

    물론 10년 전에도 몽생미셸은 프랑스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에 첫 번째이고 유명하지만,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해서 한국 사람은 찾지 않았다. 5년 전쯤 ‘붐’이 일어서 프랑스에 가면 꼭 가야 할 곳이 되었지만 10년 전에는 한국 사람 중에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몽생미셸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

    맨땅에 헤딩하면 투어 상품 개발

    제대로 된 자료 남기려고 책도 써

    몽생미셸에 왜 주목하게 되었나. 책도 썼다.

    몽생미셸을 좋아해서 빠져들었는지, 투어를 만들기 위해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헷갈린다. 처음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아까 언급했듯이 한글로 된 자료도 없었다.

    처음에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현지에서 책도 사서 봤다. 겨울철에 2달 동안 가이드를 쉬고 몽생미셸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에 머물면서 몽생미셸에 매일 갔다. 혼자 가서 사진을 찍고 야경 보면서 와인을 마셨다. <몽생미셸>이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팔리지 않더라도 한글로 된 자료를 남기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책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풍경 사진이 멋지다. 사진도 독학인가.

    독학이란 표현은 좀 그렇다. 어떻게 스승이 없겠는가. 정규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사진은 가이드로 인해 많이 찍으면서 연습이 된 거 같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피사체를 다른 날씨에 찍다 보니 체형의 차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해드렸다. 2박 3일 투어가 아니라, 당일 투어라도 그날 바로 뽑아드렸다. 프로는 아니지만. 매일 찍었다. 인쇄해서 명함과 함께 깜짝 선물로 손님에게 드렸다.

    깜짝 사진 선물을 받은 후에 손님 반응이 어땠나.

    당일 투어에서는 많이 놀라셨다. 오전에 찍어서 오후에 2~3장 나눠드렸다. 긴 투어는 20~30장 정도 찍어서 인쇄해 드렸다. 사진 보면서 감동해서 많이들 우셨다.

    현지인과의 교류도 많이 한 것 같다.

    몽생미셸을 다 알고 싶었다. 투어 안 할 때 자주 놀러 갔다. 긴 머리가 특이하다 보니 현지인들이 잘 기억했다. 부채와 작은 태극기 같은 조그만 선물을 몽생미셸 수녀님이나 몇몇 친구들에게 줬다. 집에 가서 밥도 먹으면서 친해졌다.

    손님들과 방문하면 좋은 기억이 될 거 같다.

    어떤 지역에 갔을 때 현지 사람들이 가이드를 알아보면 신뢰가 확 올라간다. 엘로디와 마튜는 방문하면 협조적으로 해줬다. 손님들이 뭔가 사면 한글 성함을 옮겨 적어줬다. 손님들에게 작은 감동 포인트이자, 장소를 기억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장치가 사람이다.

    (남편 마튜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몽생미셸을 찍고, 아내 엘로디는 그림을 그린다. 둘은 2017년 기준으로 15년째 몽생미셸을 지키는 부부다.)

    손님들과 함께 몽생미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한주영 대표. <제공 = 한주영 대표>

    들을수록 가이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가이드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가이드는 자기가 소개하는 지역에 애정이 있는 가이드다. 한 100개국 정도를 여행한 가이드 선배에게 제일 좋아하는 투어가 뭐였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투어라고 했다. 투어를 진행한 할아버지가 평생 뉴욕 바깥에서 살아본 적도 나가본 적도 없는 분이셨는데, 그분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센트럴 파크였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진심이 느껴지니까 그분의 애정으로 얘기하는 장소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이드에게 필수라는 말인가.

    손님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 “가이드님 여기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이다. 그럼 되물었다. “여기 안 좋으세요?” 헤어질 때 손님들이 “왜 좋은지 알겠어요”라고 하신다. 어린아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가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손님들 중 가이드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는가.

    평생에 한 2년 정도는 해봐서 나쁠 게 전혀 없는 직업인 거 같다. 사람 상대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 마음 얻는 법을 배우고 어떤 장소를 소개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이게 어쩌면 나아가서 공부했던 게 다 교양이 되고 사회 생활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될 거다.

    가이드에 적합한 스타일이 있나.

    가이드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일인데 내가 즐겁지 않으면 상대방도 즐거울 수가 없다. 본인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이드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 받는 직업이다.

    어떻게든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데, 사람한테 치유 받는 짜릿함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마약이라고 표현한다. 손님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내 투어가 즐거워서 “가이드님, 오늘 투어 너무 즐겁게 들었고 우리아이가 역사 공부를 하고 싶고, 가이드가 되고 싶대요”라는 말 한마디에 춤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게 안 되는 사람은 가이드를 하면 안 된다. 말을 잘하고 호기심이 많다거나, 센스가 있어서 사람들의 바람을 빨리 파악한다거나, 그런 건 그다음 문제다.

    가이드 잘하기 위한 가장 큰 덕목은

    아이같이 순수한 여행지에 대한 애정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에게 위안받아

    한 군데에 계속 있는 가이드 지겨울 거 같기도 한데.

    같은 장소 지겹지 않냐고 물으면 제 사무실은 몽생미셜이라고 말했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처음 보는 분들한테 박수받고 퇴근하려고 하는데 당신 때문에 오늘 하루가 즐거웠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 만들었다는 말은 들을 수 있는 직업이 도대체 전 세계에 얼마나 되겠나.

    누군가에 기억에 평생 추억에 한자리 꼽사리 끼는 가슴 뻐근한 직업이라고 표현한다.

    약간의 관종 끼가 필요한 직업 같다.

    갖춰야 할 자질이 또 있다. 말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 보통은 말하면 기가 빨리는데, 말하는 게 즐거운 사람들은 상대가 말을 안 들어주면 기가 더 빨린다. 손님들이 말을 잘 들어주면 그날 집에 가면 노동하고 피곤한 느낌이 아니라 너무 좋아하는 운동을 마친 노곤함으로 잠이 든다.

    지금 공동대표로 있는 회사인 가이드라이브는 코로나 이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했다. 2019년 가이드 라이브 창업을 하고 10월에 처음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나가서 오프라인으로 투어를 했다. 완판이 됐고, 후기도 좋다. 저가 패키지의 반대인 고가 전략인가.

    가이드 라이브 투어는 당연히 최저가는 아니다. 반면 프리미엄 패키지로 불리는 상품보다는 훨씬 싸다. 그렇지만 가격보다는 저희가 추구하는 바는 경험의 프리미엄이다. 가격의 프리미엄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급화라는 표현을 지양한다. 고급화는 기존의 여행상품에서 사용하던 용어인데 하드웨어 개선을 고급화라고 주로 표현한다. 호텔 성급을 높이고, 좌석을 비즈니스로 하고 미슐랭 선정 식당을 포함하는 것을 주로 일컫는데, 가이드라이브 상품에도 그런 요소가 일부 있긴 하다.

    경험의 프리미엄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의 지향은 단순히 고가 전략이 아니다. 가이드가 중심이 되어서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가 생각하는 가성비가 좋은 곳을 선정해서 코스로 짠다. 무조건 5성 호텔이라고 좋은 게 아니다. 가이드는 현장에서 위치나 이동 동선상 효율적인 곳을 알 수 있다. 그런 요소들을 고려해 적당한 가격에 코스를 뽑아내는 것이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한 끼에 5유로부터 500유로까지 다양하다. 매끼 비싼 식사를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소중함을 모른다. 5유로 중에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는 것이다.

    확실히 현지에 대해 잘 아는 가이드만이 코스를 짤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에도 진짜 맛있는 떡볶이 집이 있고, 그냥 그런 떡볶이 집이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여행을 갈 때 욕쟁이 할머니 같은 식당에 가고, 비싼 식당도 간다. 프랑스에서도 투박한데 맛있는 동네 식당이 있다. 근데 한 끼쯤 정찬으로 먹고 싶기도 하다. 경험은 다양할 때 비교가 되고 상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이드라이브 프로그램은 현장을 잘 아는 배테랑 가이드가 자기 가족을 모시고 여행할 때의 마음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저가도 최고가도 아니다. 단순히 가격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를 잘 아는 가이드가 제공하는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서 중요한 건 제값이다. 제값을 안 내고 싸게 가격을 책정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제값을 내지 않은 투어 상품은 어떤 문제가 있나.

    가이드가 물건을 판다거나 옵션이 있어서 옵션에 추가 가격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실제로 현지 운영비가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가이드는 인건비가 없이 일을 나간다. 그러면 그 가이드가 여행지 소개에 열성을 기울이겠는가, 물건 파는 데 집중하겠는가.

    그래서 제값이라는 게 중요하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없던 게 막 생긴다기보다는 여행시장은 한 십 년 걸려서 변화해야 할 것들이 단축되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 자체를 못 나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패키지 여행상품은 어떻게 될까.

    패키지 시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최저가만 바라보는 그런 시장도 일부 존재하지만, 그게 주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라고 보고 있다. 경험에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믿을만한 패키지 여행상품은 생존할 수 있다고 본다.

    가이드라이브에서 시도한 랜선 라이브 투어는 코로나 19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것은 맞다. 이 와중에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취지다. 가이드라는 뛰어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을 빌리자는 것이다. 1990년작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에서 어떤 사무실 문을 열면 문을 통과하면 존 말코비치의 뇌에 들어가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을 간접 체험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잠시 가이드의 렌즈를 끼고 그가 경험하고 그가 공부하고 그가 느꼈던 여행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 관점이 재미없으면 투어가 재미없는 것이고, 그 관점이 재미있으면 잠시 우리가 그 가이드에 빙의해서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직접 보고 싶은 아쉬움을 느낀다면 실제로 가보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갈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

    몽생미셸과 그림자. <제공 = 한주영 대표>

    코로나 이후에도 라이브 랜선 투어가 계속 되리라고 보는가.

    물리적 여행이 가능해진 이후에도 남아있을 거냐는 지적인데,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한 세 가지 이유로 직접 가지 못 가는 경우가 존재한다. 건강상의 이유, 시간상의 이유, 경제적인 이유다. 이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고 불편하신 분들을 위한 VR 여행을 체험하게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복지다. 그런 여행이 있을 거 같다.

    또 하나는 이제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신중하게 갈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2년 동안 여행 못 나간 이유로 보복 소비가 아니라 분노의 소비가 일어날 것이다. 여행을 함부로 가지 않을 것이다. 되게 신중하게 생각을 하실 거란 말이다. 그럴 때 미리 갔을 때 괜찮은지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적, 시간적, 물리적인 이유로

    코로나 후에도 라이브 랜선투어 지속

    가이드 마저 공개되며 진검승부 될 것

    건강과 시간상 이유는 알겠다. 라이브 랜선투어가 경제적으로 이득인 이유는.

    프리퀄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여행상품은 가이드 중심이다. 똑같은 여행 상품을 내놨는데 가이드가 누군지 아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가이드 라이브는 가이드 이름을 걸고 상품을 판다. 저녁에 한 시간 정도 만 원을 내고 그 가이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프리퀄로 맛볼 수 있다면, 500만원 짜리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참가해보는 게 이득 아닌가.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일주일 휴가다. 나라면 그 소중한 휴가를 쓰기 전에 1만 원 내고 한 시간을 쓸 거 같다. 일단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지, 이 가이드가 나랑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가이드 중심주의로 들린다.

    지금까지 여행사가 먹고 살았던 이유가 정보의 비대칭성이었다. 항공권 호텔 등 정보를 독점했다. 근데 OTT가 등장하면서 이게 다 무너졌다. 끝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 가이드다. 우리는 그것까지 오픈을 했다. 진검승부가 될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프랑스 찾는 관광객이 숫자로 세계 1위다. 프랑스가 관광대국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8년 프랑스를 찾은 여행객이 8900만 명이다. 문화 마케팅 같다. 프랑스는 문화재를 참 잘 활용한다. 우리는 너무 고고하게 바라본다. 유홍준 교수가 텔레비전에서 국제 퍼포먼스를 경복궁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프랑스에 시진핑이 방문했을 때 연회를 베르사유궁에서 열었다. 몽생미셀에서도 에르메스가 VIP 대상으로 칵테일 파티를 했다. 1300년 된 수도원, 제1의 성지에서 현악 4중주 연주를 하면서 파티를 한 것이다. 우리로 치면 불국사에서 한 건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문화재가 있는 유적지가 있는 곳을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않는다. 그들도 시행착오를 겪었겠지만 빨리 겪고 바로 잡은 것 같다.

    노을이 지는 저녁 때 몽생미셸의 풍경. <제공 = 한주영 대표>

    몽생미셸도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나.

    대표적인 예가 몽생미셸이다. 연간 300만 명 관광객이 찾는데, 그 주변에 호텔이 없다. 섬 안에 한 서네 개 있는데, 방이 몇 개 안 되고 좁다. 몽생미셸에서 2km 떨어진 장소에 6개 호텔이 있는데, 고도제한이 걸려서 건물이 2층이다. 3층을 못 올린다. 왜냐하면, 몽생미셸 조망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몽생미셸을 더 찾게 하지 않나. 단기적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우리보다 50년에서 100년 빨리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게 힘인 거 같다.

    몽생미셸이 그립겠다.

    10년 산 파리가 그립지는 않다. 여행으로는 가고 싶다. 근데 몽생미셸은 그립다. 1년 반 정도 못 갔다. 보고 싶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는 곳이다.

    10년전 만난 고객과 여행 스타트업 창업

    현장 가이드가 경험의 프리미엄 선사하는

    최저가도 최고가도 아닌 ‘제값’ 상품 추구

    코로나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공교롭게 아침에 보니까 가방 안에 여권이 있었다. 몇 주 전에 만기가 됐다. 근데 굳이 새로 발급받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여권을 처음 만든 이후로 이렇게 만기가 된 것을 모르고 지낸 게 처음이다. 빨리 여권 만들어서 해외로 뛰쳐나가고 싶다. 현장을 보고, 현지에 있는 좋은 가이드들과 다시 투어 프로그램 짜서, 고객들 모시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여행이란.

    제가 요즘 강연을 나가면 여행을 발견이라고 말한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나갔을 때 요리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요리에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호주에서 요리가 즐겁고 사람 만나는 게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재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접하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잡다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어떤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게 여행 가이드를 하는 동력이다. 가이드가 달라지면 여행이 달라진다. 10년 전 고객이었던 지금의 가이드라이브 공동대표도 가이드와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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