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기념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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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태어나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으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방문하게 됐는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평소보다 기념품 욕심을 내게 되더라.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줄루랜드’에서 구매한 쟁반을 소개하고 싶다. 사실 생활용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그림 혹은 작품에 가깝다. 철재 쟁반 위에 그려진 원색의 그림도 예술이지만, 부족만의 고유한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사파리 투어를 위해 갔던 크루거에서 구입한 동물도감 책도 빼놓을 수 없다. 초원 위에서 마주한 수많은 야생 동물들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꽤 비싼 돈을 주고 샀다. 아직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책장에서 ‘KRUGER’라는 글자만 봐도 게으름을 피우며 낮잠을 자고 있던 사자 가족 무리가 떠오르곤 한다.

    코로나 때문에 화나는 요즘, 꽤 든든한 녀석이다. 파란 눈알을 부라리는 괴상하게 생긴 아이템은 터키에서 왔다. 이름하여 ‘니자르 본주’다. 한국말로 옮기면 ‘악마의 눈 구슬’ 정도 되시겠다. 굳이 왜 악마의 눈으로 장신구를 만든 걸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다면! 악은 악으로 맞서라는 뜻이다. 보시다시피 악마가 커다란 파란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고 지켜보는데 감히 침탈할 엄두가 날까. 무서워서 멀리멀리 도망치라는 거다. 터키 어느 시장에서도 걸이 형태를 비롯해 귀걸이 등 장신구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다. 터키인들은 집에 악귀가 스며들지 않도록 니자르 본주를 집안 곳곳에 장식한다. 지긋지긋하고 화딱지 나는 감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제발.

    결국에는 손때 묻은 물건에 정이 가더라. 우리집에는 구성원 모두가 애용하는 기념품이 있다. 에디터가 극진히 모시는 고양이들을 위한 간장종지다. 타이베이 중심가에 있는 송산문화공원의 한 소품샵에서 구매했는데, 로컬 아티스트들이 만든 공예품들이 한 데 모여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두 고양이들을 쏙 빼닮은 종지는 집사가 매일 주인님들께 바치는 조공용 식기로 손색 없다. 임무를 저버리고 여행을 떠난 집사들이여. 간식도 좋지만 식기에도 눈을 떠보시길. 여행지에서 사온 멋드러진 술잔보다 더 자주 애용하는 잇템이다.

    매번 여행 때마다 지역 특산물이며 ‘꼭 사 와야 할 잇템’ 등을 캐리어에 바리바리 채우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남은 건 별로 없다. 꼼꼼한 성격이 못 돼 영수증이나 티켓을 깔끔하게 챙겨두지도 못하니 결국 가장 실용적인 것들이 가장 곁에 오래 남는다. 중고 물품 판매 사이트에서도 몇만 원대로 거래되곤 하는 스타벅스 시티 머그가 그 주인공. 지역마다, 도시마다 다른 디자인의 잔이 나오는데 가뜩이나 무거운 캐리어에 큰 머그잔을 채우자니 부담스럽고, 작은 데미타세 잔이 낑겨넣기엔 알맞다. 또, 집에서 에스프레소 샷을 내릴 때 예술같이 2샷을 딱 채우는 사이즈다 보니, 정말 실용적이고 자주 쓰이는 기념품이 되었다.

    그다음 아이템은 방콕에서 유명한 ‘망고 비누’다. 가격도 저렴해 선물용으로 여러 개를 집어 오기 좋고, 몇 개는 방문에 걸어두면 진한 망고향이 방을 가득 메울 정도. 망고 모양 외에도 코코넛, 리치, 파인애플 등 다양한 종류의 비누가 있다. 망고와 함께 구매한 것은 동남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릴라와디 꽃 모양의 비누로, 릴리와디는 향도 모양도 예뻐 좋아하는 꽃이다. 망고 비누는 손을 닦는 용도로, 꽃 비누는 가끔 향을 맡으며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해외에 다녀올 때면 비행기 티켓부터 교통패스, 관광지 입장권 등을 파일에 모아둔다. 나라별로 인덱스를 만들어 분리하고 하나씩 채워 놓는데 어느새 2권이 되었다. 이중에서 손이 가는 한 장을 꼽으라면 호주 시드니 여행 중 받은 ‘스카이다이빙 인증서’이다. 업체에서 기념품격으로 발급해준 종이인데 이것을 볼 때면 스카이다이빙 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경비행기에서 들었던 오만가지 생각과 아찔한 점프 뒤에 마주한 장면들. 거센 바람이 가득 했던 구름 길을 통과하니 한없이 푸르른 울릉공의 바다가 펼쳐졌다. 그리고 무사히 착륙한 끝에 인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얇은 종이 한 장이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추억들이 집약된 것이다. 점점 두꺼워지고 있는 나의 여행 파일들은 이렇게 기억을 담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인생 머스터드를 만났다. 핀란드 투르쿠(Turku)에서 말이다. 투르쿠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옛 수도였다. 현지인들에겐 미식 성지로 통한다. 북유럽 물가가 비싸다지만 투르크 지역에서 생산되는 머스터드는 1유로(약 1200원)가 채 안 됐다. 처음 맛본 곳은 루이살로섬. 투르쿠 남서쪽 아키펠라고(다도해)에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중세의 향기를 간직한 그곳에서 불멍(장작불 보면서 멍때리기)시간을 가졌다. 간식으로 머스터드에 찍어 먹는 소세지. 유유자적 완벽한 힐링이다. 그때 쟁여온 머스터드로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유럽여행에서 사모은 엽서는 한 장에 2유로 남짓. 하지만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전시 중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기억하고 미술관 샵에서 엽서를 찾아 구매한다. 마치 그 작품을 소유한듯 대리만족까지 느낄 수 있다. 보관만 잘 한다면 ‘영구 소장’도 가능하니까. 가장 좋아하는 모네의 ‘해돋이’ 엽서는 파리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찾아가 구매했다. 원화의 쨍한 색감을 100%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정만큼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조용한 미술관 안에서 강렬하게 타고 있던 작품 속 태양을 한참 바라봤었다. ‘1873년 작품인데 어떻게 형광색을 구현했을까’ 하는 궁금증부터 자연에서 느끼는 편안함까지. 여행 중 구매한 명화 엽서를 볼 때면 머릿속을 비우고 몰입했던 그 시간의 나로 돌아간 듯하다. 당장 떠날 수 없는 요즘, 여행 대신 사무실 책상 위 엽서로 헛헛함을 채워본다.


    여행은 커녕 외출도 무서운 요즘,

    기념품을 꺼내보며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봅니다.

    여러분의 추억이 가득 담긴 여행 기념품은 무엇인가요?

    글 = 권오균, 권효정, 나유진, 박지우, 배혜린, 이지윤, 정미진

    디자인 = 정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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