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가면 실망할까봐…아끼고 아껴 환상 속에서만 쟁여두는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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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왓챠 캡쳐

    올여름 휴가는 뉴욕으로 떠났다. 코로나 시대에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고. 물론 직접 간 건 아니다. 집에 콕 박혀 왓챠에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정주행하면서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도시’ 뉴욕으로 세번의 여행을 떠났다.

    Scene 1. 대학생 시절로 추억 여행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드라마가 처음 방영을 시작했을 때가 1998년 그리고 2003 시즌6을 끝으로 종영했다. 열풍은 대단했다. 드라마를 본 전세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뉴욕에 대한 환상을 꿈꿨다. 인기에 힘입어 2008년과 2010년에 두 편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장장 12년이다. 잘 만든 드라마 하나가 뉴욕의 홍보대사를 톡톡히 해낸 셈이다. 

    드라마를 처음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06학번이니까 이미 미국에서 드라마는 종영을 한 이후다. 당시엔 OTT 서비스가 없었다. 케이블 tv에서 방송을 해줬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 볼 수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보기엔 민망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아예 못을 박았다. 뉴욕에 사는 30대 여성 4명의 연애사를 주로 다뤘다. 

    처음엔 모든 파일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한편한편 usb에 담아 전달받았다. 당시 usb 용량이 그리 크지 않았다. 4기가 정도가 보통이었으니 겨우 시즌 1개가 담길까말까했다. 지금처럼 외장하드도 일반인들에게 보편적이지 않았다. 결국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돈을 내고 전 시즌을 다운받아 며칠 밤을 새 정주행했다. 

    이미지 출처 = HBO

    한창 ‘된장녀’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었는데,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딱 그 ‘된장녀’ 캐릭터라며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 집세 낼 돈은 없지만 비싼 명품 구두를 신는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를 단순히 ‘된장녀’라고 폄하해버리는 건 너무 편협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작문 수업 과제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와 된장녀를 주제로 글을 썼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드라마의 팬으로서 나름의 변을 늘어놨던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울림을 줬던 대사를 인용하고 그 안에 담긴 인생의 희노애락을 설명했다. 과제를 제출하기 전까지 몇번을 고쳤는지 모르겠다. 드라마를 볼 때처럼 더 열심히 공을 들여 과제를 완성했던 기억이다. 아마도 그때 심정은 캐리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당신들의 우정과 사랑, 인생을 응원한다고. 

    이미지 출처 = IMDb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라마를 두번째 정주행한 2020년 지금 나는 드라마 속 그들의 나이가 되었다. 20년 전 드라마 속 그들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했고(샬롯), 커리어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했으며(미란다), 자유연애를 꿈꾸고(사만다), 완벽한 짝을 찾아(캐리) 뉴욕이라는 매력적인 도시 곳곳을 누볐다. 드라마를 처음 봤던 20대 초반에 이 모든 것들이 나와는 먼 이야기(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도)였다면 어느새 나는 그들의 나이에 들어와버렸다. 

    Scene 2. 뉴욕으로 여행

    이미지 출처 = unsplash

    시간이 흘러 드라마를 2회차 볼 때 내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치기어린 마음은 줄어들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느정도 타협도 한다. 한계를 알고 내려놓는 법도 배웠다. 가치관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내 나이도 드라마를 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었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에 별 감흥이 없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뭐랄까 나에게 있어서 뉴욕은 여행지라는 이미지가 없다. 모래성 같다. 콧대 높은 뉴요커들이 살아가는 이 도시는 모든 게 피상적이고 바쁘게만 흘러간다. 기회가 생긴다면 가겠지만 딱히 갈망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여행지라기보다 사람 사는 곳? 항상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삶의 현장이라는 인식때문인지 (나같이) 어리바리한 여행자가 뉴욕에 가는 건 왠지 민폐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미지 출처 = HBO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내 영역 안의 사람에게는 잘하지만 그렇지 않은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약간은 퉁명스럽기까지한 뉴욕 사람들. 그래서인지 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복잡하고 삭막한 거 싫어하는 (나같이) 소심한 여행자에게 뉴욕은 그야말로 ‘넘사벽’ 여행지다. 맞다, 사실 뉴욕으로 떠날 엄두가 안난다.

    그래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뉴욕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뉴욕을 간접체험했다. 6시즌 동안 주인공들이 뉴욕을 떠난 건 다섯번도 안 된다. LA,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해외는 딱 한번 시즌6 말미에 파리로 무대를 바꾸지만 주된 이야기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에는 당시 가장 핫했던 패션과 미식, 라이프스타일 등 트렌드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미지 출처 = HBO

    캐리의 집 앞 계단은 지금까지도 뉴욕 인증샷 명소다. 최근 후기를 찾아보니 드라마를 보지 않은 요즘 세대도 이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더라. 드라마에 등장했던 컵케이크집과 도넛, 브런치 식당, 상점들은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고 난 직후에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식당이나 브랜드들이 ‘섹스앤더시티의 OOO’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국내에 진출하기도 했다. 더러는 이 드라마의 다섯번째 주인공은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라고 말한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드라마 속 풍경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 
     

    Scene 3.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싶은 마음

    이미지 출처 = HBO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를 보며 가장 크게 공감했던 건 파리에서 캐리가 외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이었다. 

    시즌 6 에피소드 19에서 캐리는 예술가 남친을 따라 파리로 떠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채 오로지 남자를 따라 파리에 갔던 캐리는 바쁜 남자친구 때문에 혼자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카페에 모여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 4명을 보고 뉴욕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나 결국 터져버렸다. 당장 미란다에 전화해 울먹거린다. 소중히 여겼던 ‘캐리 목걸이’(말그대로 carrie 글자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인데, 이 대목에선 캐리라는 인물 자체를 상징한다)를 잃어버려서 너무 슬프다고.

    “너무 힘들어. 다시는 그런 걸(캐리 목걸이) 못 찾을 거야. 여기서는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모든 게 생각보다 힘들어. 불어도 못 하지. 하루 종일 춥고 비가 와.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두 번씩 다 돌았고 길을 잃은 기분이야. 난 거의 혼자야. 점심 먹는 여자들을 보니… 너희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새삼 깨달았어. 정말 이상해. 평생 꿈꿔온 파리에 왔는데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 자꾸 빅(시즌1부터 등장한 캐리의 연인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관계. 빅은 몇번이나 캐리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다) 생각이나. 빅이랑 파리에 왔으면 어땠을까.” 

    돌아오라는 미란다의 말에 “아직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그럴 수 없어” 라고만 반복적으로 답한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그 장면을 보면서 나의 첫 유럽여행이 생각났다. 1년동안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원없이 여행을 했다. 혼자도 다녀보고 친구랑도 돌아다녔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걸 먹어도 어떤 순간엔 공허함이 느껴졌다. 어딜가나 이방인, 심하면 불청객 취급까지 받았다.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었다. 소중한 사람과 공유할 수 없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비오는 파리는 삭막함 그 자체다.) 고작 타지에서 1년을 살았을뿐인데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그때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내 고향 서울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Scene 4. 그리고 2020년 현재

    이미지 출처 = unsplash

    드라마로 배운 뉴욕, 어느새 나는 극중 그들의 나이가 됐다. 

    시즌 6에서 캐리가 38번째 생일 그리고 2008년 개봉한 영화에서 사만다가 5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 이후로도 12년이 흘렀으니 사만다는 벌써 환갑이 훌쩍 넘겼겠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어느새 드라마 속 그들의 나이가 돼버린 나는 그들처럼 싱글이고 스스로 밥벌이를 하면서 뉴욕만큼 복잡한 도시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연애도 한다. 

    이미지 출처 = HBO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내 마음 한켠에선 이런 생각이 든다. 유쾌한 그들이 여전히 뉴욕 어느 식당에 둘러앉아 주말 브런치를 먹으며 한바탕 수다를 떨고 있을 것만 같은 환상. 20년 전 그 시간과 공간에 박제된 채로 말이다. 미드 섹스앤더시티로 배운 뉴욕은 나에게 있어서 환상같은 꿈의 공간이다.

    마음만은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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