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교통 허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버스로 30분도 안 걸릴뿐더러 대중교통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어 뚜벅이 여행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다.
식물원 산책부터 중세 시대 탑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고, 이색 전시 체험까지 자그레브의 다양한 매력을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코스를 준비했다. 각 장소별로 걸어서 15분 이내에 위치하니 교통비 절약은 덤이다.
자그레브 대학교 과학부 식물원

산책을 하며 여행지에서의 아침을 열어보자. 자그레브 중앙 기차역 인근에 자그레브 대학교 과학부 식물원이 있다.
이곳은 자그레브 대학교 과학부에서 관리하는 식물원으로, 19세기에 지어져 다양한 식물학 연구를 행했던 곳이다. 크로아티아의 토착 식물과 세계 각국의 식물을 약용 식물 구역, 고산 식물 구역, 수생 식물 구역 등 테마별로 나누어 정원을 구성해 두었다.

무엇보다도 나무가 무성하고 꽃이 많아 계절별로 다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정원을 거닐다 보면 연못이 나온다. 이 연못 위에는 빨간색 다리가 놓여있는데, 연못에 떠 있는 수련과 나무의 조화가 마치 프랑스 작가 모네의 그림과 비슷해 유명하다.

많은 이들이 인증샷을 찍으러 이곳에 몰리니 잊지 말고 추억을 남겨보자. 입장료는 2유로(약 2900원)이며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매일 오전 9시에 문을 열며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오후 2시 30분까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식물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에 가보자.

걷다가 이 극장을 마주하게 되면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될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놓인 노란색의 웅장한 건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 특히 파스텔 톤의 노란 외벽 위로 햇볕이 내리쬐면 건물이 금빛으로 빛나 더욱 아름답다.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은 1895년에 설립되어 크로아티아 공연 예술의 중심지로 활약해 왔다.
건물은 바로크와 로코코 스타일 양식으로, 돔 모양의 지붕과 뾰족한 첨탑이 있어 웅장하고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극장 내부는 붉은 벨벳 좌석과 금색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천장과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 자체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건물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유명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Ivan Meštrović)가 제작한 조각상 ‘더 웰 오브 라이프(The Well of Life)’가 설치돼 있다.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팔을 두르고 동그랗게 모여 앉은 독특한 모양의 청동상으로, 이 조각상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니 꼭 확인해 보자.
로트르슈차크 탑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에서 12분 정도 걸으면 로트르슈차크 탑이 나온다. 이 탑은 중세 시대(13세기)에 방어를 목적으로 세웠던 자그레브 성벽의 일부다.

중세 유럽 성벽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이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자그레브의 역사와 로트르슈차크 탑에 대한 작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이를 지나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자그레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로 나서면 자그레브의 붉은 지붕과 자그레브 대성당의 우뚝 솟은 첨탑이 보이고 더 멀리는 자그레브를 둘러싸고 있는 메드베드니차 산맥까지 볼 수 있다.

로트르슈차크는 크로아티아어로 도둑의 종이라는 뜻이다. 성문이 닫히는 밤마다 탑 안의 종이 울려서 이름 붙여졌다고. 지금은 더 이상 종을 울리지 않지만 대신 매일 정오마다 대포 발사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1877년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공포탄을 쏴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자그레브 전역에 울릴 정도로 큰 대포 소리를 들으면 가슴까지 뻥 뚫리는 듯하다.
로트르슈차크 탑은 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 열며 월요일은 휴무다. 입장료는 3유로(약 4400원)이니 참고하자.
녹트르노 레스토랑
오래 걸었더니 허기가 진다.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에서 배를 채워보자. 탑에서 도보 7분 거리에 녹트르노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은 현지 맛집으로 소문난 이탈리아 음식점이다. 양이 많고 가격이 저렴해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하는 뚜벅이 여행객에게 적합한 곳이다.

파스타, 피자, 리소토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메뉴를 판매하는데 그중에서도 오징어 먹물 리소토가 유명하다. 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온통 검은색이지만 오징어의 풍미와 리소토의 고소함을 머금은 그 맛만은 다채롭다. 베이컨이 올라간 녹트르노 라자냐도 먹물 리소토와 함께 인기 메뉴이니 추천한다. 음식이 짜다는 후기도 있지만 주문 시 소금을 적게 넣어달라고 요청하면 들어주니 참고하자. 녹트르노 레스토랑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운영한다.
숙취 박물관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이색 체험을 하러 가볼까.
레스토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숙취 박물관을 추천한다. 자그레브에는 실연 박물관, 쥐 박물관, 환각 박물관 등 독특한 주제의 박물관이 많다. 그중 하나인 숙취 박물관은 술 취했을 때의 기분을 주제로 만든 이색 박물관이다.
술병, 코스터 등 술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유머러스하게 꾸며져 있고 시야를 방해하는 안경을 착용하고 다트를 던지는 게임이나 핑퐁 게임 등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 있지만 이곳의 설립 목적은 음주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다.

음주 후 시야가 흔들리는 상태를 겪어볼 수 있는 VR 체험과 음주 운전 시뮬레이터 등을 체험하며 과도한 음주가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느껴보자. 이곳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는 전 세계 방문자가 기증한 물건들이다. 술을 마시고 나도 모르게 가져온 물건 등 숙취와 관련한 물건을 기증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숙취 박물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8.5유로(약 1만 2500원)다.
자그레브는 다른 유럽 국가 수도처럼 크지 않다. 그래서 도보 여행에 더욱 최적화되어 있다. 도시 곳곳을 걸어 다니며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껴보자.
글=김지은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