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이킹 파우더 갑부가 일군 럭셔리 호텔 호텔마다 있는 고양이, 가족 정신의 상징 르 브리스톨 파리, 100주년 맞이 특별 행사 팜비치 ‘더 비네타’로 미국 시장 첫 진출 |
혹시 외트커 컬렉션(Oetker Collection)이라고 들어봤는지? 이름이 낯설다면 이곳의 브랜드 전략이 제대로 먹힌 거다. 대신 걸그룹 블랙핑크가 유럽에서 찍은 호텔 인증샷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블랙핑크 지수가 프랑스 파리의 르 브리스톨(Le Bristol Paris)에서 호텔 마스코트 고양이 소크라테(Socrate)와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됐다.
베이킹 파우더에서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
독일 외트커 컬렉션은 베이킹파우더로 명성을 얻은 가문이 일군 럭셔리 호텔 그룹이다. 1891년 아우구스트 외트커가 독일에서 베이킹파우더를 개발하며 시작한 회사는 닥터 아우구스트 외트커 KG(Dr. August Oetker KG)로 지금은 식품, 음료, 배송, 은행까지 사업을 넓혔다. 외트커 가문은 독일 5대 부호에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에서도 70위권 안에 든다.
우리가 빵을 만들 때 쓰는 베이킹파우더를 만든 사람이 바로 닥터 외트커다. 지금도 외트커 그룹은 식품 사업이 중심이다. 하루에 600만 개의 냉동 피자를 생산할 정도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외트커 컬렉션 호텔 사업은 그룹 전체 매출의 1%도 안 된다. 외트커 가문에겐 호텔이 사업이 아닌 ‘취미’인 셈이다.
럭셔리 호텔 사업, 어떻게 시작했나
호텔 사업은 독일 바덴바덴의 브레너스 파크-호텔&스파에서 출발했다. 닥터 외트커는 어린 시절 휴가를 보낸 추억의 장소를 어른이 되어 통장을 슥 열고 사버렸다. 1964년에는 손자 루돌프가 지중해 배 여행 중에 “저기 절벽 위 호텔 멋지네” 하고 호텔 뒤 캡 에덴 록을 그냥 사버리는 여유를 보여줬다. 1979년엔 결혼기념일 선물로 르 브리스톨 파리 호텔을 샀다. 남들은 꽃다발 주고받을 때 호텔 한 채 선물하는 센스. 이런 게 갑부의 로맨스다.
호텔 사업은 외트커 가문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주로 식품 회사였던 외트커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호텔 사업에 진출했다. 이는 회사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가문의 투자 철학을 보여줬다.
2008년 외트커 가문은 브레너스 파크 호텔의 총지배인이었던 프랭크 마렌바흐에게 그룹 설립을 맡기며 외트커 컬렉션을 공식 출범했다. 현재 컬렉션은 르 브리스톨 파리, 호텔 뒤 캡 에덴 록, 더 레인즈버러 런던 등 세계적 럭셔리 호텔 11곳과 150개 이상의 프라이빗 빌라를 운영하며 ‘마스터피스 호텔’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객실 요금은 평균 2000유로(약 300만 원) 수준. 대부분의 호텔 체인이 브랜드를 내세우지만, 외트커는 정반대 전략을 쓴다. 고객이 좋은 호텔을 경험한 후 “알고 보니 외트커 컬렉션이었네”라고 인식하는 방식이다.
최근 휴 미란다(Hugues Miranda) 외트커컬렉션 세일즈 부사장이 한국을 찾았다. 그동안 미키 마츠야마(Miki Masuyama) 아시아 지역 글로벌 세일즈 총괄이 매년 방한했지만, 부사장이 직접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럭셔리 호텔들이 한국 시장에 눈독 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휴 미란다는 럭셔리 호텔 업계에서 11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2019년부터 아태 지역 영업 부사장으로 일하며 시장 확장을 이끌고 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일즈 수석 책임자를 맡았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르 브리스톨 파리(Le Bristol Paris)에서 유럽 영업 총괄 및 부책임자로 일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호텔 드 크리용, 로즈우드 호텔(Hôtel de Crillon, A Rosewood Hotel)에서 영업 이사를 맡으며 럭셔리 호텔 세일즈 전략을 다졌다.
그를 만나 한국 시장과 럭셔리 호텔 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유럽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유럽에 관심이 높아지니 외트커 컬렉션 호텔들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특히 한국 셀러브리티들이 우리 호텔을 자주 찾으면서 인지도가 올라갔다. 한국 럭셔리 여행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거라고 본다.
현재 아태지역 매출 비중은 5% 정도다. 호주까지 포함하면 최대 6%다. 호주까지 포함한 아태지역 전체로는 최대 6%에 달한다. 시장 순위는 호주가 1위, 인도가 2위다. 그 뒤를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이 따른다. 의외로 중국은 아직 큰 손님이 아니라고 한다.
Q. 신규 호텔 선정 시 고려하는 점은?
입지다. 숫자 늘리기에는 관심 없다. 흔한 호텔 말고,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곳에서 기대 이상의 경험을 선사하는 게 목표다.
외트커 컬렉션의 호텔들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쿠르슈벨·생트로페, 이탈리아 카프리처럼 여행자들이 꿈꾸는 곳에만 있다. 아무 데나 짓지 않는다. 모두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곳,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만 골라 호텔을 짓는다.
Q. 럭셔리 호텔 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와 호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어릴 때부터 호텔은 그냥 잠자는 곳이 아닌 감각을 깨우는 세계였다. 완벽하게 정돈된 테이블, 우아한 서비스, 섬세한 디테일까지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다. 자연스럽게 럭셔리 호텔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외트커 컬렉션은 좋은 호텔 운영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계속 새로워지는 브랜드다. 호텔 뒤 캡 에덴 록은 최근 46개 스위트룸을 새 단장했다. 오래된 가치는 지키되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르 브리스톨 파리에서는 ‘아틀리에’라는 독창적인 공간을 운영한다. 호텔 안에 제분소, 초콜릿 공방, 치즈 숙성고, 와인 저장고를 직접 차려 최고의 식재료를 만든다. 맛뿐 아니라 그 과정까지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호텔 뒤 캡 에덴 록의 지오바니 레스토랑은 기존 방식을 깬 요리로 유명하다. 색다른 조합과 창의적인 접근으로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Q. 외트커 콜렉션만의 차별화된 고객 경험은?
외트커 컬렉션의 철학은 ‘진주 목걸이’와 같다. 각 호텔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진주처럼 다르지만 같은 가치와 DNA로 하나의 목걸이를 이룬다.
르 브리스톨 파리는 파리 감성을, 레인지버러는 영국 클래식을, 브레너스 파크는 독일 자연과 웰니스를 담았다. 진짜 럭셔리는 화려함이 아니라 감동적인 세세한 배려와 진정성에서 온다. 호텔 건물부터 인테리어, 운영 방식까지 손님 기대를 뛰어넘는 게 목표다.
핵심 가치는 첫 번째는 가족 정신이다. 가족 기업의 철학을 반영해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환영한다. 르 브리스톨 파리의 고양이 소크라티, 더 레인지버러의 릴리벳, 브레너스 파크의 클레오파트라처럼 각 호텔마다 상징 동물이 있다. 이 고양이들은 알레르기 없는 품종이라 누구나 안심하고 교감할 수 있다. 아이 생일이나 특별한 날엔 객실에 고양이를 불러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 샤토 생 마르탱에는 모르틴이란 고양이가 있고, 검은 양과 귀여운 거북이도 산다. 동물들은 그냥 마스코트가 아니라 호텔을 따뜻하게 만드는 가족 같은 존재다.
두 번째는 진정한 친절이다. 기계적인 매뉴얼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 취향과 필요를 먼저 읽고 맞춰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지막은 우아함이다. 번쩍이는 화려함보다 적절한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운 품격을 중요시한다. 머무는 모든 순간이 감동으로 남는 공간을 만든다.
Q. 남다른 미식 철학이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럭셔리 호텔이 빵을 직접 굽지만 우리는 밀가루부터 만든다. 유전자 변형 없는 밀로 만든 ‘살아있는 빵(Living Bread)’이 자랑이다. 글루텐 프리 옵션도 가능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호텔 음식은 거의 다 자체 제작한다. 다른 호텔들이 밖에서 사 오는 빵, 초콜릿까지 직접 만든다.
Q. 새롭게 준비 중인 호텔이 있나?
올해는 중요한 한 해다. 르 브리스톨 파리가 100주년을 맞아 두 개의 신규 스위트룸을 선보인다. 브레너스 파크 호텔&스파는 현재 개보수를 진행한다. 독일에서 가장 역사적인 호텔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에 있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글을 쓴 도시이기도 하고 ‘바덴바덴’이란 지명이 ‘물’을 뜻할 만큼 온천과 스파가 발달했다.
미국에도 첫 호텔을 연다. 팜비치에서 외트커 컬렉션의 첫 미국 호텔, ‘더 비네타’를 오는 여름 개관한다. 2027년 4월에는 프랑스 생트로페 근처에 빌라와 인피니티 풀을 갖춘 고급 리조트도 문을 연다.
런던의 더 레인지버러는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에서 영감받은 애프터눈 티를 선보인다. 이탈리아 카프리의 호텔 라 팔마는 기존 호텔 레스토랑과는 다른, 색다른 음식 경험을 제공한다.
Q. 한국 럭셔리 호텔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여행객이 어디를 좋아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 성장 가능성이 크고 럭셔리 여행 수요도 계속 늘고 있어서 한국을 위한 마케팅도 강화할 계획이다.
요즘은 스페인이 뜨는 시장이다. 유럽 내 다른 주요 도시로 확장할 생각이다. 장기적으로 호텔 포트폴리오를 20개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그 이상은 생각 없다. 규모를 키우는 ‘체인’이 아니라, 진정한 ‘컬렉션’으로 남고 싶다.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아시아에 호텔이 없지만, 언젠가는 아시아에도 외트커 이름을 단 호텔이 생길 거다
Q.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외트커 컬렉션 호텔은 어디인가?
르 브리스톨 파리는 파리를 대표한다. 호텔 안에 자체 제분소와 베이커리가 있다. 여기서 먹는 빵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 정원에서 식사하는 경험도 잊을 수 없다. 올해는 100주년이라 클러치, 패브릭 같은 아이템들이 모두 10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나온다. 1년만 팔고 내년엔 안 판다. 소장 가치가 높다.
더 레인지버러는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호텔이다. 클래식한 인테리어, 버틀러 서비스, 런던 최고의 애프터눈 티까지. 화려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런던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브레너스 파크-호텔&스파는 블랙 포레스트 한가운데 있는 조용한 곳이다. 아침에 창문 열면 자연이 펼쳐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파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에게 딱이다.
카프리의 호텔 라 팔마는 섬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데,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럭셔리 호텔이 됐다. 프란시스 술타나가 디자인한 인테리어, 미쉐린 스타 셰프의 요리, 전용 비치 클럽과 루프탑 레스토랑까지. 휴가지에서 원하는 모든 게 다 있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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