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리아나 제도에는 한국인 눈물을 쏙 빼는 섬 여행지가 있다. 그 주인공은 티니안.
가로는 약 8㎞고 세로는 약 16㎞인 티니안은 사이판의 이웃 섬이다.
하루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작은 섬에 한국인 여행객이 오기만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발길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의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다. 두 번째는 이곳에서 나는 고추인 핫 페퍼가 눈물 나게 매워서다.
세 번째 이유는 티니안이 한국인과 관련한 비극적인 역사 사건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돌아볼수록 매력적인 섬인 ‘티니안’을 여행플러스가 다녀왔다.
01 티니안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진풍경 블로홀 & 타가 비치 |
본격적인 티니안 여행 얘기 시작에 앞서 놓칠 수 없는 풍광 명소 ‘타가 비치’와 ‘블로 홀’을 먼저 소개한다. 타가 비치에서는 왕족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이곳은 과거 고대 차모로족의 족장이었던 타가와 그의 가족만 들어갈 수 있었던 왕족 전용 해변이었다.
해변의 고운 백사장 앞으로 쪽빛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맑다 못해 밝은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산호초의 석회 성분이 적절히 섞여 푸른빛과 초록빛이 감도는 타가 해변은 현지인이 짚어준 티니안의 제일가는 풍광 명소다.
일정을 동행한 베테랑 여행 기자 한 명은 “여기가 그 유명한 몰디브 바다보다 물빛이 아름답다”며 “전 세계를 여행했어도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은 처음 본다”고 감탄했다.
타가 해변은 물이 맑고 앞바다의 수심이 3~4m 정도로 얕아서 물놀이하기 좋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작은 동굴은 자연 더위 쉼터다. 맑은 수질 덕에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어 스노클링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곳에 있는 전망대는 총 두 곳으로 모두 과거 차모로족이 집을 짓는 데 썼던 주춧돌을 형상화한 ‘라테스톤’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 전망대에는 다이빙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시간이 흐르며 낙하 방지용으로 만들어 놓은 라테스톤 기둥도 현지인 아이들의 다이빙대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타가 해변은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한낮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해변 입구쪽에 기념사진 찍기 좋은 티니안 표지판이 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티니안섬의 북동쪽에 있는 ‘블로 홀(Blowhole)’이다. 이곳은 자연이 만든 천연 분수라는 별명이 있다. 블로 홀은 물이 바닥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듯한 현상을 뜻한다.
고래의 숨구멍도 영어로 블로 홀이라고 불리는데 고래가 숨구멍으로 물을 뿜는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통상 해안 동굴 등에서 발생하는데 강한 파도가 해안을 강타하면 물이 동굴 틈으로 몰려들며 강한 압력을 발생시켜 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티니안의 블로 홀은 파도가 거셀 때 솟아오르는 물줄기의 높이가 거의 1m에 달해 더 특별하다. 운이 좋으면 블로 홀에 무지개가 뜨는 희귀한 장면도 볼 수 있다. 블로 홀로 물이 뿜어져 나오며 공기 중에 있는 물방울이 햇빛 등을 받아 굴절이나 반사하며 무지개가 뜨는 것인데 흔치 않은 현상이다.
이곳은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지질학적 구조 덕에 사진작가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다만 주의할 점은 블로 홀에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 센 파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곳이기에 얕잡아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현지인 가이드 데보라는 “이 진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삽시간에 파도에 휩쓸릴 수 있다”며 거리를 유지한 채 관람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블로 홀에 있는 초록색 풀이 자라난 지대를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초록색 풀은 구멍이 많은 산호초 위에서 자라난다. 이곳은 지반이 약해서 잘못 밟았다가는 산호초가 부서져 미끄러지며 다칠 수 있다. 주변이 석회암이라 넘어지면 피부가 긁히기 쉬우니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도 챙겨가자.
02 “맵찔이 눈물 쏙 빠지네” 비싸도 불티나게 팔리는 티니안 핫소스 |
매운 라면에 김치 올려 먹기. 풋고추에 고추장 찍어 먹기. 매운맛을 즐기기로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게 대한민국이다.
그런 한국인조차 티니안의 명물인 ‘돈니 살리(donni’ sali)’ 고추를 맛보면 눈물이 핑 돌고 만다. 돈니 살리 고추는 약 2㎝ 안팎의 길이에 불과한 앙증맞은 크기지만 무지하게 매운맛이 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옛말이 딱 어울린다.
맵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라면 ‘불닭볶음면’의 스코빌 지수가 4400SHU인데 돈니 살리 고추의 스코빌 지수는 자그마치 5만SHU에 이른다. 매운맛의 척도인 스코빌지수로 따졌을 때 10배가 넘는 수치니 말 다 했다.
돈니 살리는 나무에서 나는 야생 고추로 통상 연한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띤다. 이 고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매운 소스인 타바스코를 만드는 데 쓰이는 캡시컴 프루티센즈(Capsicum frutescens)의 변종이라고.
돈니 살리는 북마리아나 제도의 선주민인 차모로족의 전통 언어다. 고추를 뜻하는 돈네(Donne)와 검은 깃털이 특징인 미크로네시아 찌르레기 살리(Sali)가 합쳐진 말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살리라는 새의 주식이 돈니 살리 고추여서다. 새가 이 고추를 먹고 여기저기 배변을 한 뒤 그 안에 있던 씨가 싹을 틔워 티니안 전역으로 퍼졌다. 티니안 고추는 현재까지도 야생에서만 채취할 수 있기에 야생 고추 500g에 약 25달러(3만4000원) 정도로 값이 비싼 편이다.
이 티니안 고추로 만든 ‘핫 소스’는 지역민의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티니안의 핫 소스 문화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에 머무르던 미국인들이 가져온 타바스코소스를 비슷하게 흉내 내며 생겨났다. 그 덕에 가까운 괌 등 지역에서도 핫소스를 즐겨 먹는 식문화가 발달했다.
티니안 수제 핫소스 전문점 중에는 산호세 지역에 있는 6-팩(6-PAC) 가게가 유명하다. 이곳의 주방장이 알려준 수제 핫소스를 만드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야생에서 채취한 고추를 뜨거운 물로 삶아 세척한다. 이후 레몬 가루, 마늘, 소금, 식초를 넣고 믹서기로 곱게 간다. 이 재료는 알싸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나도록 간을 맞추는 용도이면서 동시에 보존제 역할도 수행한다.
이곳의 수제 핫소스는 한 통에 약 80달러(약 11만원) 정도로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리는 기념품이다. 소스는 티니안 전역의 식료품점과 상점 등에서 기념품으로 살 수 있다. 개봉 후 냉장 보관 시 최대 2달까지 두고 먹을 수 있다.
일정을 함께 한 기사이자 티니안 현지인인 톤은 “프라이드치킨에 그냥 찍어 먹어도 맛있고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이들은 파스타나 볶음밥에 넣어 먹는 걸 추천한다”며 요리 조언을 건넸다.
아울러 매년 2월에는 티니안 고추 축제(Tinian Hot Pepper Festival)도 진행한다. 축제일에는 매운 고추 100개 먹기 대회, 고추 콘셉트 의상 입기, 티니안 유명 음식점인 JC 카페에서 만든 핫 버거 먹기 대회 등 이색 행사를 진행한다.
03 “이곳에서 한국인 5000명이 죽었습니다” 당신은 이 역사를 아십니까 |
재미난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 무게를 잡아볼까 한다. 질문은 이거다. 당신은 과거 티니안과 사이판에서 50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그저 ‘관광지’로만 알려진 이곳에서 몇천 명의 우리 국민이 죽었다. 그럼에도 이 역사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티니안과 사이판에서 눈물을 훔치는 마지막 이유이자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다.
이 얘기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원히 기억해야 할 전쟁의 참담함…티니안 원자폭탄 보관소
제2차 세계대전의 후반 태평양 전쟁 기간 티니안 비행장이 있어 일본군과 미국군 모두에게 중요한 기지였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 일본 땅과 가까운 티니안은 일본에 공습 작전을 펼치기 완벽한 곳이었다.
그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미군은 티니안을 목적지(Destination)라는 코드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본래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티니안을 미군이 공습으로 뺏어온 뒤 이곳의 비행장을 확장했다.
공사 이후인 1945년 초, 티니안섬 북부의 비행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장으로 변모했다. 티니안을 차지함으로써 일본 땅과 한층 더 가까워진 미국은 이 비행장으로 핵 폭격기인 B-29 등을 옮겨와 일본에 더 많은 공격을 했다. 결과적으로 티니안에서 발진한 미군의 강력한 B-29 폭격은 일본 국민들의 전의를 상실케 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미군의 원자폭탄도 이곳에서 발진했다. 1945년 8월 6일에 전쟁에 사용한 최초의 핵분열 무기인 ‘리틀 보이’의 히로시마 출격과 9일에 내파형 핵무기 ‘팻 맨’의 나가사키로의 출격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현재도 티니안 북쪽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와 ‘팻 맨’을 보관하던 장소가 터로 남아있다. 이 터는 사다리꼴 모양의 투명한 돔으로 덮여 있다. 터 안에서는 전쟁 당시 찍힌 생생한 사진을 관람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현재 이 주변에는 평화의 상징인 플루메리아를 심었다. 방사성 물질에 관한 걱정은 덜어도 좋다. 현지인 가이드 데보라에 따르면 이 근처에 있는 과일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따서 분석했는데 방사성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울러 연료 저장소와 군사 기지 등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티니안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함께 돌아보는 걸 추천한다.
누구도 제대로 수습해 주지 않은 유골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1977년 5월 이용택 추모사업회장과 이태영 당시 대구대 총장은 티니안에서 5000여 구의 한인 동포 유골을 발굴하고 수습했다.
김홍균 사이판 한국문화원장은 “두 분이 티니안에서 유골을 발견했을 때는 참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군정과 오키나와현인회 등이 우리 동포의 시신을 한데 묻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고 안쓰러워 그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했다“고 전했다.
이 유골의 주인은 대부분 전쟁 기간 조선총독부 등의 주관하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감언이설에 꿰어 군속(軍屬)으로 온 한국인이었다. 일본군에 혹사당하다 일본에 패색이 짙어지자 자살을 강요당해 희생한 한국인 동포의 유해인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 동포를 살피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성진호 티니안 한국문화원장은 “이때 온 한국인은 말이 군속이지 모두 징용병이었다”며 “전시 체제의 정확한 인적 수탈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인이 첫째고, 오키나와 지역민이 둘째고, 차모로족이 셋째고, 돼지가 넷째인데 그 돼지는 조선인이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동포가 당했을 수모가 눈앞에 훤한 문장이다.
현재 사이판과 티니안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이곳에서 희생당한 한국인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두 곳 모두 민간인이 앞장서 만든 곳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티니안의 한국인 추모비는 타가 비치에서 차량으로 8분만 이동하면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대구대학교의 설립자인 故 이영식 목사 주도로 만들어졌다. 그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까지도 사이판 한인회 등이 추모비를 깨끗하게 유지보수 하고 있다.
이 추모비에는 태극기·북마리아나 제도 연방 깃발·성조기 등이 걸려 있는데 티니안은 바람이 강해 이 깃발이 끝에서부터 헤진다. 헌 깃발을 갈아주기 위해 한인회 동포가 한국에 갈 때마다 매년 수백 개의 태극기를 사서 실어 온다는 후문이다. 추모비 앞은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이 짝을 지어 지키고 있다.
사이판 한국인 위령탑은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 패망 직전 미군의 체포를 피하고자 일본군이 민간인과 함께 자살한 ‘일본군 자살 절벽’과 마주하고 있어 더 묘하다. 이곳은 1981년 사이판 한인회와 해외 희생 동포추념 사업회가 모금해 만들어졌다. 슬픈 혼을 달래기 위해 사이판 위령탑 꼭대기에 있는 새가 대한민국 땅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신비의 섬, 티니안…그래서 어떻게 가는데?
티니안을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유여행으로 가려면 티니안 노선을 매일 운항 중인 현지 항공사인 스타 마리아나스 에어를 이용하는 게 좋다. 또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에 차량 대여가 필요한 점도 잊지 말자.
또는 하나투어·모두투어·노랑풍선·교원투어·인터파크 등 여행사에서 사이판 여행 상품 구매 후 선택 관광으로 티니안을 방문할 수 있다. 사이판에서 티니안까지는 경비행기로 15분 정도 걸린다.
(사이판·티니안)=김혜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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