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산업 매출은 연간 30조원이 넘는다. 롤렉스(ROLEX), 파텍 필립(Patek Philippe), 오메가(OMEGA) 등 수많은 명품 시계 브랜드의 본사가 스위스에 있다.
가죽은 이탈리아, 자동차는 독일, 향수는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는 시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위스 시계가 최고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스위스가 시계 강국이 됐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시계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스위스가 시계로 유명해진 이유와 가볼 만한 명소를 정리해 보았다.
‘똑딱똑딱’ 어디선가 초침 소리가 들리는 듯한 스위스 시계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스위스가 시계 강국이 된 이유
<스위스 시계 기술의 비밀>
스위스는 어떻게 시계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웃 국가인 프랑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시계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대부분 위그노(Huguenot)였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로 칼뱅주의를 따르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왕가는 가톨릭을 믿었고 개신교를 믿는 위그노를 탄압했다.
이후 여러 갈등과 문제가 겹치며 위그노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수만 명의 위그노가 학살당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이 공포되며 한숨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루이 14세(Louis XIV)가 칙령을 철회했고 위기를 느낀 위그노들은 유럽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시계공으로 일하던 위그노들은 대부분 스위스 제네바(Geneva)로 이주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칼뱅(Jean Calvin)과 츠빙글리(Ulrich Zwingli)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네바는 보석 세공업 같은 정밀 수공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하지만 칼뱅은 사치품 착용을 금지했고 검소한 삶을 강조했기 때문에 각종 장신구와 귀금속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오직 바른 생활 습관과 예배 시간 엄수를 위한 시계 착용만 허락했다.
이에 세공업자들은 시계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아름다운 디자인에 일가견을 가진 보석 세공업자와 시계 제작 기술을 가진 위그노가 함께 일하며 스위스엔 품질이 뛰어난 시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명품 시계는 다 스위스?>
잘나가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현대에 들어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바로 쿼츠 파동(The Quartz Crisis)이다.
쿼츠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시계를 말한다. 당시 대부분의 스위스 시계는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기계식 시계였다. 하지만 일본 회사 세이코(SEIKO)가 쿼츠 시계를 대량 생산하며 시계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사실 기계식 시계는 직접 태엽을 감아야 하고 오차가 종종 생기는 등 여러 불편함이 있었다.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시계였다. 쿼츠 파동 이후 시계가 대중화되며 고가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시계를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됐다.
이후 스위스 시계 산업은 고급화 전략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스위스 정부 역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스위스에서 만들었음을 인정하는 표식인 ‘SWISS MADE’ 표기 조건을 법으로 제정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스위스산이라고 부를 수 있었기에 스위스 시계는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굳건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이기 때문에 사실상 시계의 본 기능은 상실한 상태다. 주로 패션용이나 시계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스마트워치까지 나와 시계 산업의 입지는 좁아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 기술을 집약한 스위스 명품 시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스위스에서 가볼 만한 시계 관련 명소>
국제 시계 박물관
국제 시계 박물관은 시계 산업 중심지인 라쇼드퐁(La Chaux-de-Fonds)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초 라쇼드퐁은 큰 화재를 겪었다. 이후 시계 제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도시로 재건됐다. 라쇼드퐁은 시계 제조의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국제 시계 박물관에서 손목시계, 회중시계, 벽시계 등 4500점이 넘는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다. 골동품 시계 복원 작업실이 유리로 되어 있어 일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인 기준 15프랑(약 2만 7000원)이다.
파텍 필립 박물관
파텍 필립은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와 함께 스위스 3대 시계 브랜드로 꼽힌다.
파텍 필립은 억 단위의 제품이 흔한 브랜드다. 시계 제조와 관련해 가장 많은 특허 기술을 보유했으며 손목시계도 최초로 만들었다.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희소성을 큰 가치로 두고 있다. 일부 모델은 고객이 시계 구매 이력을 제출하고 심사에 통과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대기 명단이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제품임에도 희소성을 이유로 단종한 적도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세계 최고 시계 브랜드라 불리는 파텍 필립의 명성을 확인해 보자.
아쉬운 점은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어 눈으로만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인 기준 10프랑(약 1만 5000원)이다.
오메가 박물관
오메가는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늘 차고 다니는 시계 브랜드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착용한 브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오메가 박물관은 규모가 상당히 큰데 스와치(Swatch) 박물관도 같이 있다. 쿼츠 파동 당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저가 시계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와치다.
1층은 오메가 2층은 스와치 박물관이니 함께 관람해 보자. 무료입장이며 스위스 수도 베른(Bern)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다.
꽃시계
제네바에 있는 세계서 가장 큰 화단 시계다. 아름다운 호수 앞에 만 송이가 넘는 꽃을 심어 꽃밭을 만들고 그 위에 시계를 설치했다.
시기별로 다른 꽃을 심어 한 해 동안 다양한 디자인의 꽃시계를 감상할 수 있다. 위성과 연결해 놓아 항상 정확한 시간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비싼 시계를 보다 보면 죽기 전에 사서 써볼 기회가 있긴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좋은 시계보다 더 중요한 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닐까.
글=강찬미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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