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남동부에 위치한 그라우뷘덴(Graubunden)주의 주도(州都)인 쿠어(Chur)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로마 시대 때부터 시작된 도시로 해발고도 593m에 자리하고 있다. 총 면적은 54㎢로 서울 서초구(47㎢)보다 약간 작은 편이고 인구 약 4만 명이 살고 있다. 전체 면적 중 절반 이상이 숲이 차지한다. 알프스가 품은 고대 도시 쿠어를 소개한다.
# 래티셰반 행정 건물 Rhatische Bahn AG
래티셰반 철도의 행정 건물이 쿠어에 있다. 1888년 설립된 래티셰반 철도는 스위스 사설 철도 업체 중 가장 방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로 그라우분덴주의 모든 철도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쿠어에 위치한 행정건물은 1907년에서 1910년 사이에 건축된 건물이다. 래티셰반 행정 건물은 지어질 당시 옛것과 현대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졌다. 건물에는 측면 2층과 3층 사이그라분덴주의 상징인 카프리콘(Capricorn, 염소)과 기차 바퀴가 새겨져 있다. 래티셰반의 CEO의 업무 공간도 이 건물 안에 있다.
Bahnhofstrasse 25, 7001 Chur, 스위스
Bahnhofstrasse 25, 7001 Chur, 스위스
# 그라우뷘덴 아트 박물관 Bündner Kunstmuseum
1919년 설립된 박물관으로 번드너 미술관으로 불린다. 박물관 건물은 ‘빌라 프란타(Villa Planta)’라는 이름으로 1874년부터 1876년에 건축된 것이다. 개인 소유의 집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다. 집주인은 자크 앰브로시어스 본 플란타(Jacques Ambrosius von Planta, 1826~1901)로 이집트에서 천을 수입하던 사람이었다. 오리엔탈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대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기둥 디자인을 자신의 집에 도입했다. 건물 입구에 양쪽에 있는 스핑크스 역시 오리엔탈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술관에는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와 아우구스토 자코메티(Augusto Giacometti) 등 그라분덴 지역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유명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아버지와 사촌 지간인 아우구스토 자코메티는 많은 교회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남겼다.
Bahnhofstrasse 35, 7000 Chur, 스위스
Bahnhofstrasse 35, 7000 Chur, 스위스
# 쿠어 시청 Stadtverwaltung Chur
번드너 미술관에서 큰길을 건너 골목길로 쭉 직진하면 왼편에 쿠어 시청이 있다. 건물 외관에는 스위스 국기와 그라우뷘덴 주기가 걸려있어 눈에 쉽게 띈다. 타운홀 1층은 누구나 오갈 수 있는 뚫린 공간으로 시청 건물 앞뒤에 있는 길을 연결하는 통로다. 거대한 문이 있는데, 옛날에 말과 마차가 오갈 수 있도록 큼지막하게 만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옛 쿠어는 독일과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이었다. 각종 물건을 들고 수많은 상인들이 이곳을 지나갔는데, 바로 시청 근처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당시 정해진 곳에서만 물자를 교환할 수 있도록 했는데, 쿠어 시청이 바로 그곳이었다. 지금 쿠어의 모습은 중세시대 때 재건된 모습이다. 1464에 큰불이 나서 도시가 전부 불에 타버렸다. 사람들은 가장 먼저 복원해야할 건물을 정하고 도시 재건에 나섰다. 급한대로 병원 채플이었던 공간을 타운홀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해서 현재 쿠어 시청 1층 통로 공간에는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기다란 창문이 남아 있다. 건물 뒤편으로 가면 빨간 문이 있다. 문 옆 벽 눈높이 위치에 긴 쇠막대기가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위가 통일되지 않았던 때에 상인들이 이 쇠막대기를 기준으로 길이를 재서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Poststrasse 33, 7000 Chur, 스위스
Poststrasse 33, 7000 Chur, 스위스
# 세인트 마틴 교회 St. Martin’s Church -Chur
쿠어 시청에서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높다란 시계탑이 보인다. 탑이 세워진 곳에 세인트 마틴 교회가 있다. 세인트 마틴 교회는 8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769년에 세워진 교회 역시 화재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고 1481년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됐다. 교회 안 남쪽 벽에는 아우구스트 자코메티가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있다. 세인트 마틴 교회 시계탑에는 작은 방이 있어서 행사를 하거나 하룻밤 묵어갈 수도 있다. 대신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교회 주변은 중세시대 일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쿠어 주교의 영지었던 승모승천 대성당과 길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다.
Kirchgasse 12, 7000 Chur, 스위스
Kirchgasse 12, 7000 Chur, 스위스
# 성모 승천 대성당 Kathedrale St. Mariä Himmelfahrt
세인트 마틴 교회에서 나와 언덕 길을 가다보면 양쪽 벽을 두고 길게 이어진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성모 승천 대성당에 도착한다. 과거 주교의 영지였던 성당 부지 안에는 현재에도 스위스 쿠어 교구 주교 관저가 자리한다. 이곳에 처음으로 건물이 지어진 건 5세기로 추정된다. 현재 건물은 1154년에서 1270년 사이에 지어졌고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복원 공사를 진행해 2007년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성당 내부에 파이프 오르간 2대를 들여놨다. 성모 승천 대성당은 쿠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스위스 정부가 지정한 국가 주요 문화유산 중 하나다.
Hof 18, 7000 Chur, 스위스
Hof 18, 7000 Chur, 스위스
# 기거 광장 Gigerplatz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나와 다시 구시가지로 향한다. 구릉지대에 위치한 성당 근처에는 옛 주교의 포도밭이 펼쳐져있다. 성당을 왼편에 뒤고 너른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옛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이 나타난다. 쿠어 사람들은 구시가지 골목에 ‘로맨틱 앨리(Romantic Alley)’라는 별명을 붙였다. 골목에는 나무로 만든 집이 없다. 화재 이후 도시 안에 목조 건물을 짓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다음 목적지는 기거 광장이다. 기거 광장은 쿠어 출신 예술가 한스 루에디 기거(Hans Ruedi Giger, 1940~2014)에서 따왔다.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기거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1979년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SF 영화 에일리언에서 특수 효과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 효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거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기거 광장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는데 분수 안쪽 바닥에 그의 작품을 상징하는 알루미늄판이 놓여 있다.
Gigerplatz, 7000 Chur, 스위스
Gigerplatz, 7000 Chur, 스위스
그라우뷘덴의 주도 쿠어는 아직까지 한국 사람에게 낯선 도시다. 중세 모습을 간직한 쿠어를 거닐면서 옛날 정취에 흠뻑 빠져들어 보자.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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