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은 모순적이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지만 설레고, 설레지만 두렵다. 두려움 때문에 초보 여행자는 서툴다. 경험이 적은 여행자가 애써 판을 크게 벌려 새로운 여행지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여행지와의 낯가림 기간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그 간극을 채워나가면 된다. 스크린으로만 접했던 여행지의 모습을 실제로 조우했을 때의 반가움은 여행지에 빠르게 스며들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준비한 스페인 예습 시간.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봐두면 좋을 영화 BEST를 선정해 소개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복잡한 감정을 그린 작품.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인데 정작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국문 제목으로 번역돼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오해를 사기 쉽다. 우디 앨런 감독은 그동안 ‘미드나잇 인 파리’(프랑스 파리), ‘매치 포인트’(영국 런던) 등을 통해 유럽 도시들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감성과 가우디의 건축, 등장인물들의 뜨거운 열정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배우 라인업도 볼거리다. 마블의 블랙 위도우로 유명한 스칼렛 요한슨, ‘바닐라 스카이’ 페넬로페 크루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듄’ 등으로 유명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단한 서사를 다루는 작품은 아니라 가볍게 보기 좋다. 낭만주의자 크리스티나와 현실주의자 비키 두 친구는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떠난다.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던 두 사람은 매력적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를 만나고, 셋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비키는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남은 크리스티나와 후안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때 후안의 전처인 마리아가 나타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네 사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잘 담아낸 작품. 안토니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미로 미술관,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산파우 병원, 타비다보 놀이공원 등 바르셀로나 곳곳의 모습들이 담겼다.
바르셀로나 썸머 나잇
수백 년을 주기로 발견되는 로제 혜성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모여드는 전 세계의 연인들.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섯 커플의 위기와 시련, 사랑을 담은 영화다. 스페인판 ‘러브 액추얼리’로도 잘 알려진 작품으로, 자유로운 유럽 정서가 가득 묻어있는 만큼 LGBTQ 커플의 이야기까지 잘 다루고 있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힘듦을 안고 가기도 한다.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 작품으로 각 커플의 이야기는 관객의 공감을 사기 충분하다.
엘리트들
스페인판 ‘가십걸’로도 유명한 작품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스페인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최상류층만 다니는 학교에 빈민가 출신의 세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고, 이들로 인해 벌어진 틈으로 상류층 사람들의 비밀이 드러난다. 시즌1은 마리나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내용이 전개된다. 화끈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공개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이다.
사실 스페인 여행 예습용으로는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하이틴 영화라 대부분의 사건들이 학교를 배경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스페인의 랜드마크라 할 명소들도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만 사용해도 스페인을 여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간단한 스페인어 회화정도는 익히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어 입문용으로 선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젊은 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스페인어를 쉽게 익힐 수 있다.
열일곱
스페인어로 숫자 17을 뜻하는 Diecisiete. 영화 주인공 엑토르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다. 그는 알아주는 문제아로 소년원에서 지내다 교화 과정의 일환으로 유기견 ‘양’을 교육시키게 된다. 성심성의껏 양을 돌보던 그는 정이 들고, 양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느 날 양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는 그가 입양이 된 탓이다. 엑토르는 소년원을 탈출해 할머니와 형을 데리고 유기견 ‘양’을 찾으러 캠핑카에 몸을 싣는다.
캠핑카를 타고 이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스페인의 자연 풍경과 함께 그려진다. 화려한 도심과는 거리가 있지만, 아기자기한 소도시와 한적한 풍경 덕분에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성장, 가족영화라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2019년 9월 스페인 국제영화제 SSI-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영화로 현재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고야의 유령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암울했던 스페인의 모습을 스페인 3대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가 그린 ‘나체의 마야’와 ‘옷 입은 마야’는 세계적인 명화로서 지금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고야는 환락과 욕망의 덧없음을 과감한 터치로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궁중화가이면서도 그 당시 정치와 종교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거침없이 대중들 앞에 선보이는 화가였다.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고야의 뮤즈 ‘이네스’를 통해 그가 바라보는 당대 시대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고야의 작품들은 후기로 갈수록 그 색채가 점점 어두워지는데, 이는 암울했던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는 고야만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고야의 작품을 보러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인 만큼 아직까지도 그를 향한 관심은 뜨겁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프라도에서 실제로 조우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8천점이 넘는 회화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미술관만으로는 세계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건물을 1787년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다. 프라도 미술관은 자국 스페인의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주목해야 할 화가들로는 엘그레꼬, 고야, 벨라스케스가 있다.
엘그레꼬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모 마리아의 승천’, 고야의 ‘나체의 마야’,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냐스’등은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 작품이다. 이 중 ‘나체의 마야’의 경우 카톨릭의 전성기였던 당시 인간 여성의 나체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종교 재판에 넘겨졌던 바 있다. 프라도 미술관을 100배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영화 ‘고야의 유령’을 추천한다. |
글= 맹소윤 여행+ 인턴기자
감수= 홍지연 여행+ 기자
사진= 출처 개별 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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