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소재로 인종차별성 코미디쇼를 진행한 칠레 방송이 거센 비판을 받고 결국 사과했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지난 10일 방송된 칠레 공중파 채널 메가TV의 코미디쇼 ‘미 바리오’(Mi Barrio) 중 한 코너다. 5명으로 이뤄진 보이밴드가 토크쇼에 출연한 설정이었다.
진행자가 소개를 부탁하자 한 멤버가 ‘김정은’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김정–도스’(Dos·스페인어로 숫자2), ‘김정–트레스’(Tres·3), ‘김정–콰트로’(Cuatro·4), ‘후안 카를로스’라고 소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름의 영어 표기 중 ‘은’(Un)이 ‘1’을 뜻하는 스페인어와 같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진행자가 진짜 이름이 뭐냐고 재차 묻자 이들은 BTS 멤버들의 이름을 말했다. 뷔, 정국, 제이홉, 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들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느냐는 질문에 멤버 중 한 명만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중국어 억양을 흉내 낸 의미 없는 말들을 길게 늘어놓고, 해석을 부탁하자 “나 백신 맞았어”라는 뜻이라며 엄지를 치켜들고 웃었다.
방송 이후 칠레의 BTS 팬들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방송에 나온 내용은 아시아계를 부적절하게 희화하한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인종차별은 코미디가 아니다(Racism is not comedy)”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프로그램을 향한 비판이 빠르게 확산했다.
칠레의 BTS 팬 ‘아미’는 칠레 방송규제 당국인 국가TV위원회(CNTV)에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민원을 1천 건 이상 제기했다.
방송사 측은 이튿날 SNS를 통해 “칭찬도 비판도 모두 수용하겠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유머는 팬데믹으로 인해 겪고 있는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도록 도와준다”고 해명했다.
성의 없는 입장문에 비판이 더욱 거세지자 방송사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방송사 측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마음 상한 모든 분들에게 공감을 표시하면서 사과를 전한다. 어떤 커뮤니티도 모욕하거나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다”며 “계속 개선하고 배우고 귀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를 보도하면서 “수많은 BTS 팬의 힘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 특히 아시아계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BTS는 지난달 말 공식 트위터에 미국 등에서 번지는 아시아계 혐오에 대해 “슬픔과 함께 진심으로 분노를 느낀다”며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고 호소한 바 있다. BTS는 “우리도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듣고, 외모를 비하당하기도 했다. 아시아인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증오범죄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와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 인종차별 피해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 혐오가 일상이 돼버린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계 거주민들의 우울감과 공포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강예신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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