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에 갇혀 홀로 4년을 버틴 선원이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23일(현지시간) BBC는 지난 2017년 이집트 바다에 발이 묶였던 선원 모하메드 아이샤가 바다 위에 버려진 지 4년 만에 모국 시리아로 돌아간 사연을 소개했다.
아이샤는 2017년 5월 5일 바레인 선적 화물선 MV아만호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해 7월 화물선이 선박안전증명서와 자격증명서 만료로 이집트 수에즈 인근 아다비야 항에 억류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억류 기간 동안 선박 계약자인 레바논 화주는 연료비를 대지 못했고, 선박 소유주인 바레인 선사도 자금난에 빠졌다. 결국 MV아만호는 바다 위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 사이 이집트인 선장은 현지 법원에 아이샤를 MV아만호의 법정대리인으로 지정해버렸다. 선장은 아이샤에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배를 떠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시리아 출신이었던 아이샤는 이 명령의 의미를 잘 모른 채 서명했다. 그가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다른 선원들은 모두 떠나고 홀로 배에 남은 뒤였다.
졸지에 4000톤급 거대 화물선의 법정대리인이 돼버린 아이샤는 감옥 같은 배 안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아이샤는 “뱃사람인 형이 탄 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손도 흔들 수 없었다. 전화로 겨우 목소리만 듣는 정도였다”고 밝혔다. 2018년 8월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그는 “그때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듬해에는 전기마저 끊겨 해가 지면 어두컴컴한 유령선처럼 변한 배에서 공포와 맞서야 했다. 그는 “마치 거대한 무덤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관 속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폭풍우가 휘몰아쳤을 때는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섰지만, 결과적으로 폭풍우는 그의 처참한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준 계기가 됐다.
선박이 오히려 해안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는 며칠에 한 번 해변으로 헤엄쳐나갈 수 있게 됐다. 육지로 나가 음식을 사고 휴대전화도 충전할 수 있었다.
같은 해 12월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TF)이 그의 사연을 접한 후 본격적으로 해방의 길이 열렸다. 연맹 도움으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한 아이샤는 억류 4년 만인 지난 23일 풀려나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샤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 드디어 가족과 재회하게 돼 기쁘다”는 입장을 밝혔다.
ITF 측은 아이샤 사건이 해운업계에 만연한 선원 유기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아이샤는 모두에게 잊힌 채 공포에 떤 4년을 보냈다”면서 “지금이 해운업계가 반성해야 할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강예신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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