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인 줄 알면서도 찾아가는 관광명소가 있다. 바로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하이쿠 계단(Haiku Stairways)’이다. 그런데 이 계단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하이쿠 계단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보도했다.
하와이 하이쿠 계단(Haiku Stairways)의 별명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코올라우(Ko’olau) 산 능선을 따라 3,922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하와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발 1000m 위 구름 속에서 여유롭게 해변을 바라보면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 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이쿠 계단은 ‘판도라 상자’와 같은 관광지다. 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찾아가게 된다. 1987년 안전상의 이유로 하와이 주 정부는 이 계단을 폐쇄하고 출입 시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하겠다고 공표했다. 실제로 2012년 한 남성이 이 계단을 오르다 사망한 사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4,000명 넘는 관광객이 몰래 이곳을 오르고 있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이 그들을 유혹한다.
결국 지난 8일 하와이 주 의회는 하이쿠 계단을 아예 철거하기로 의결했다. 백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빠른 시일 안에 계단을 해체하기로 합의했다. 주 의회는 환경을 보호하고, 소음으로 인한 현지인들의 피해를 막고, 미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릭 블랭가디(Rick Blangardi) 시장이 이 예산안에 서명하는 즉시 계단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하이쿠 계단은 오랜 시간 동안 지역사회 첨예한 이슈였다. 계단 유지론자는 하이쿠 계단의 역사적 의미와 관광명소로서 가치를 내세운다. 1940년 미 해군이 통신 기지로 가기 위해 설치한 이 계단은 세계 제2차대전 진주만 공습 때도 버틴 미군의 유산이다.
70년대 잠시 관광지로 개방된 적도 있다. 유지론자들은 관광지로서 개방된 시기도 있는데 왜 지금은 막아놓았는지 불평한다. 한 익명의 제보자는 데일리메일에 “최근 한 사람이 하이쿠 계단에 몰래 올라 찍은 파노라마 사진이 큰 호응을 얻은 적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올라가 보려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굳이 철거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계단 철거론자들은 안전이 유일한 철거 이유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호놀룰루 시민 행동(Honolulu Civil Beat)’이라는 시민단체는 “관광객들이 현지인들에게 주는 피해가 막심하다”라고 전했다. 그들 말에 따르면 80년대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매그넘 P.I.’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는데, 당시에는 매일 2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왔다고 한다. 소음과 쓰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릭 블랭가디 시장이 예산안에 서명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과거 하루에 최대 75명의 방문객만 받거나 계단을 튼튼하게 보수하는 안건이 제안되기도 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이동흠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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