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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 보고, 점도 보고’ 가을을 가장 먼저 즐길 수 있는 담양 다미담길 탐방기

박한나 여행+ 기자 조회수  

실처럼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와 피부를 간질인다.


담양 하천 오리배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고 보니, 머리를 태울 기세로 지글대던 태양 빛도 한층 누그러졌다. 뜨거워 바라볼 엄두가 안 나던 하늘을 몇 달 만에 제대로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해진 날씨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슬슬 거리가 북적이는 이때, 즐길 거리가 풍성한 전남 담양의 한 거리를 찾았다.

가을의 정취를 한 발 먼저 맘껏 누릴 수 있는 다미담 길이다.


1) “늦게 오면 다 팔리고 없어부러요” 활기찬 전통 시장의 매력이 가득한 오일장

담양 오일장은 숫자 2와 7이 들어간 날짜에만 열린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담양 전통 시장은 잔잔히 흐르는 하천 옆에 자리해 ‘천변 오일장’이라고도 불린다. 오일장은 장날을 놓치면 무려 5일이나 기다려야 하니 장이 열리는 날짜마다 이곳 일대에는 물건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소리 높여 광고하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가게마다 더위를 피하고자 설치한 천막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담양 오일장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시장에 들어서니 익숙한 냄새가 난다.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닭튀김 냄새다. 닭다리 3개에 5000원. 지글지글 끓는 기름 속에서 바삭하게 튀겨진 닭튀김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아직 둘러볼 것이 많아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가게 주인은 “늦게 오면 없다”며 짐짓 겁을 준다.

담양 시장 먹거리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기름만큼이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투리도 구수하다. “언니, 뭐시 필요할까? 말만 해” 손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건네는 말이 친근하다. 어림잡아 50개는 돼 보이는 반찬을 깔아 놓고 팔고 있는 가게에 들러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찬을 구경해본다.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반찬을 마주하니 반갑기까지 하다. 직접 기른 듯한 투박한 모양새의 채소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구부정한 애호박부터 남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가지까지 도심 속 마트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채소들이 가득이다. 자랑하듯 정성을 다해 키운 채소들을 소쿠리 가득 내놓은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다. ‘없는 게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전통 시장의 풍요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담양 시장의 채소들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시장’하면 떠올릴 수 있는 향토적인 풍경은 물론이고 이색적인 경험도 즐길 수 있다. 시장 한편에 반지, 팔찌 등 수공예 액세서리 상점이 있어 방문해 봤다. 코끼리 상아에 구멍을 뚫어 만든 목걸이와 이국적인 문양이 가득한 색색의 반지가 눈에 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같은 문양과 색을 지닌 액세서리가 없었다. 구매해보려고 사장님을 부르니, 키가 훤칠한 케냐 출신 사장님이 손님을 맞는다. 인종, 국적과 관계없이 모두가 모이는 시장의 매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오일장 케냐 반지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반지를 구매하던 중, 귓가에 들려오는 경쾌한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경하던 관객에게 오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지역 동호회에서 간소한 공연을 진행한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담양 오일장 공연 / 사진= 여행+ 조형주 PD

오일장을 놓쳤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지난 5월, 전통 시장 옆으로 상설 시장인 ‘담양 시장’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깔끔한 현대식 건물 내부에서 전통 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물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상설 시장 내부에는 대나무로 만든 수공예품과 가구, 신선한 채소와 직접 담근 장 등 다양한 물품이 입점해 있어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이더라도 쇼핑을 즐길 수 있다. 화장실을 비롯한 여러 편의 시설도 갖추고 있어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쾌적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담양 상설 시장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쾌적한 실내에서 카트를 끌고 쾌적하게 쇼핑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북적북적한 전통 시장 안에서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장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장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선다.

2) “여기, 비빔 하나 추가요” 관광객 발길 사로잡는 국수 거리

오일장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국수 가게가 즐비한 ‘국수 거리’가 등장한다. 이 가게고 저 가게고 하나 같이 국수를 파는 것이 독특하다. 가게마다 판매하고 있는 메뉴도 비슷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내내 어디서 국수를 맛봐야 할지 고민이 더해진다. 오일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음식은 조리 시간이 짧으면서도 뜨끈하게 속을 데울 수 있는 ‘국수’였다. 세월이 흘러 가게가 하나둘 늘어나며 지금의 음식 문화 거리를 형성했다. 국수 거리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거리에 늘어선 가게를 드나들었을 옛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국수 거리 전경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국수를 주문하기 전에 반드시 맛봐야 하는 에피타이저가 있다고 한다. 한방 약재를 넣어 달인 물에 천천히 익힌 약달걀이다. 입맛을 돌게 하는 갈색빛의 계란을 베어 물자 희미하게 퍼지는 약재의 향이 매력적이다. 퍽퍽한 달걀을 먹고 나니 후루룩 들어가는 국수가 생각났다. 멸치를 우린 시원한 국물의 잔치 국수와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중독적인 비빔국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희대의 난제를 풀어야 했다. 저렴한 가격이니 다양하게 시켜 동행자와 나누어 먹는 것도 좋다.

약계란(왼쪽), 비빔국수(오른쪽)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국수 거리는 하천을 끼고 쭉 늘어서 있다. 어느 가게에 가더라도 하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근사하다. 햇빛은 쨍하게 하천을 비추지만, 국수 거리는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덕분에 시원하다. 야외석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국수를 먹는 사람들은 모처럼의 여유에 신이 난 듯 밝은 표정이다. 국수 거리 아래로 흐르는 하천 바로 옆에 ‘지구 공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니 참고하자.

하천과 국수 거리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3) “오늘의 운세는?” 다미담길 이색 체험 ‘운세 상담소’

국수 거리 옆에 위치한 다미담길은 마치 50년 전의 담양 거리를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붉은색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해 80년대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다미담길, 일명 쓰담길은 근현대 건물들의 원형을 보존하고 다양한 종류의 인문학 상점을 마련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명목아래 조성한 복합 문화 거리이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도자기 공예방, 라탄 공예방을 비롯해 전통 찻집까지 다양한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담양 다미담길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여러 상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 있었다. 가게 입구에서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까이 다가서자, 줄을 선 사람 사이로 건물 내부에서 상담을 진행 중인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뭐 하는 곳이에요?” 묻자, 단돈 1000원으로 운세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00원이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대기 줄에 합세했다.

신단수 운세 상담소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상담소에 들어서자마자 벽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980년대의 담양 재래시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라는 설명이 들려왔다.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기 전, 대나무로 만든 담양의 물품들이 크게 각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정영신 작가의 사진은 재래시장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의 광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정영신 작가의 사진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사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신단수 명상가는 매일경제신문을 비롯해 다양한 신문사에 16년째 운세 칸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적지 않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단돈 1000원으로 운세를 보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신단수 명상가는 “5000원을 받으면 5000원짜리 점쟁이가 되는 것이고, 1000원을 받으면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이죠”라고 답했다. 자신이 예견한 미래를 바탕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고객의 인생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말했다.

신단수 명상가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주 고객 층에 대해 묻자, 다미담 길이 오일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보니 시장에서 물건을 팔러 나온 어르신이 자주 방문한다고 답했다.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며느리와 고부 갈등을 겪는 어르신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복을 물고 왔다”며 “앞으로 평생 행복할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담긴 말을 건넬 때 밝아지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행복이라고 답했다.


쌓인 복채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행운이 오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길 가다 주운 네잎클로버에 간절히 소원을 빌 듯,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물품을 몸에 지니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는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신단수 명상가의 사무실은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기발한 상품들이 가득했다.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명상가의 염원을 담은 부적을 자그마한 라벨로 만들어 맨투맨과 양말에 부착했다. 은은한 향을 내는 자작나무로 만든 펜던트 목걸이도 있었다. 신 명상가는 “모두가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내는 법을 알려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단수 상담소의 굿즈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옛 정취가 가득한 담양 거리 / 사진= 여행+ 류한나래 PD

관방제림, 죽녹원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다미담길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그에 못지 않다. 오일장, 국수거리, 다미담길은 각각의 장소로 이동하는데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 남들이 다 가는 흔한 여행 말고 특색 있는 ‘담양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장도 보고, 점도 보고’ ‘국수도 먹고 희망도 얻는’ 1석 2조의 매력이 가득한 다미담길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 보자.

담양(전남) / 박한나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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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나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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