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면 어때요?”라는 물음에 “여기 최고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도시가 있다.
그 주인공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통영 시민들은 입 모아 통영살이가 참 좋다고 한다.
여행하다 보면 절로 이곳에 눌러 앉고 싶어지는 통영의 구석구석을 여행플러스가 찾아왔다.
1.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이 직접 소개한 ‘통영케이블카’
통영케이블카는 이곳을 관광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통영 미륵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길이만 1975m에 이른다. 푸른 미륵산과 도심 전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 덕에 47대의 곤돌라는 연중 관광객으로 꽉꽉 차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 수만 1년 중 100만 명에 이른다.
통영케이블카의 역사가 궁금해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실을 찾아갔다. 역사를 설명해 주다 호쾌히 직접 안내해 주겠다며 케이블카에 함께 오른 김용우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은 지난 2022년 취임했다. 통영 토박이인 그가 취임 후 첫 번째로 한 일은 사장 관사를 처분하고 전용 차량을 반납한 일이다.
김 사장은 “여기서 나고 자란 나는 통영에 집도, 차도, 요트도 있으니 굳이 관사와 차량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통영 관광 활성화를 위해 오랜 공직 생활 은퇴 후 사장의 자리에 앉은 그의 진심이 엿보인다.
곤돌라는 사방이 통유리창으로 이뤄진 덕에 360도로 통영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통영케이블카를 타는 가장 큰 이유는 힘들게 등산하지 않고도 미륵산 정상 부근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1초당 4m로 이동하며 약 10분 만에 상부역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10여 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산 정상인 미륵봉이 나온다.
미륵산 탐방로에는 신선대·한산대첩·한려수도·통영 상륙작전 등 각기 다른 풍광을 볼 수 있는 7개 전망대가 있어 정상에 도달하기 전부터
눈이 즐겁다. 그밖에 하트 모양 나무뿌리, 이순신 조형물, 거북선 모형과 같은 상징물도 곳곳에 숨어 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놓치지 마시라. 자존심 상하지만 피식 웃고야 마는 썰렁한 개그가 칸마다 적혀있다.
‘미륵산 461m’라고 적힌 거대한 석탑과 마주했다면 그곳이 미륵봉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8경 중 하나인 한려수도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사천·남해 등을 거쳐 전라남도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의 연안 수로를 일컫는다.
그뿐만 아니라 산의 정상에서는 비진도·욕지도 등 통영의 크고 작은 섬들을 전부 눈에 담을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고. 정상 부근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인공 폭포와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는 매점도 있다.
김 사장은 “이다지도 훌륭한 케이블카지만 통영 관광은 더 이상 케이블카 하나만 바라보고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며 “사실 통영에서는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 등 수많은 문화예술가가 태어났는데 이런 부분이 비교적 조명이 덜 됐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김 사장은 “통영의 문화예술을 탐닉하는 감성 여행에 향토 음식인 빼떼기 죽이나 멍게 비빔밥 등을 더한 매력적인 관광 상품을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고 전했다.
2. “철거 예정지에서 필수 데이트 코스로” 동피랑 벽화마을
동피랑 벽화마을은 초행자도 지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재밌는 관광지다. 통영 시내 골목골목에서 우연히 마주한 벽화만 따라가면 이 마을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흰 담장 그려진 창문 모양 그림을 훑고 해바라기 그림도 지나면 푸른 바다의 색을 한 거대한 외벽이 나온다. 이 벽이 마을의 초입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철거 예정지에서 필수 데이트 코스로 기적처럼 운명이 바뀐 곳이다. 2006년 통영 안에서 낙후한 지역으로 손꼽히던 이곳은 재개발하기 위한 철거 예정지였다. 철거 날만을 앞두고 적막이 감돌던 어느 날, 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페인트 통을 들고 이곳에 나타났다.
낡은 담벼락에 형형색색 페인트를 칠해 꼬까옷이라도 입히면 이곳의 운명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마을 곳곳을 꾸몄는지 여기에서 잠시라도 한눈팔면 아름다운 벽화 한 점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벽만 주시할 일도 아니다. 바닥에는 땅따먹기 그림이 있고 높다란 담장 위에는 새 동상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마을 전체에 있는 150여 개 벽화는 색이 바랠 틈이 없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벽화를 새겨 넣어 늘 참신함을 유지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동피랑은 재개발하지 않고도 주말이면 인파가 구름같이 몰리는 관광 명소로 변모했다.
벽화를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오면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누각 동포루가 늠름한 자태로 서 있다. 언덕 위에 올라서면 통영의 오밀조밀한 주택가와 너르고 푸른 통영 바다가 와락 품에 안겨 온다. 동피랑과 마주한 또 다른 벽화마을 서피랑의 자태도 절로 궁금해지는 풍광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 목마를 때쯤 전망 좋은 집이라고 쓰인 건물 2층의 ‘꿈 카페’를 발견한다면 꼭 들러 보시길 권한다. 카페에서 음료 두 잔을 시키면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맛이나 좀 보고 가라며 음료 네 잔을 손에 쥐여준다. 평일에는 마을에 있는 대부분 가게가 일찍 장사를 마치기에 오후 5시 전에 오는 게 좋다.
과거의 아픔 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통영까지 먼 길 찾아온 여행객을 귀히 여긴다. 다만 이곳이 태초 관광지가 아닌 거주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관광객은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니 말이다.
3. 날것은 못 먹지만 해산물은 좋아해, 통영 식탁
회와 같은 날 음식은 호불호가 강하다. 싱싱한 해산물 천국인 통영에서 날것을 못 먹는다면 식당 선택지가 상당히 줄어든다. 날것은 못 먹지만 조리한 해물은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동피랑 입구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통영 식탁’에 가보길 권한다.
이곳의 메뉴는 워낙 강렬해서 그 자체로 통영의 추억이 될 수 있다. 대표 메뉴인 ‘이순신 선로 파스타’와 ‘오징어먹물리소토’ 등은 이름부터 무언가 남다르다.
홍준표 통영 식탁 사장은 27년째 요식업에 몸담고 있을 정도로 요리에 정통한 이다. 서울 호텔에서 일하다가 한 웨딩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게 그와 통영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통영살이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2019년에 아예 가족과 함께 이곳에 내려온 뒤 자신만의 가게를 열었다.
해산물의 도시 통영에서 파스타 가게를 내기 전까지 홍 사장에게는 많은 고충이 있었다. 어디에도 없는 특색 있는 메뉴로 승부를 보고자 밤낮으로 연구 끝에 개발한 게 ‘이순신 선로 파스타’다.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뒀던 한산도 대첩의 배경인 통영. 한산도 대첩의 주 무기인 거북선. 그 거북선의 뱃길인 선로(船路). 그리고 한국의 궁중 요리 신선로(神仙爐)에서 영감받아 만든 메뉴다. 수율 좋은 통영산 해산물과 면이 뜨끈한 신선로 안에 어우러진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오징어먹물리소토 역시 양념부터 음식 구성까지 홍 사장이 직접 개발한 메뉴다. 먹기 좋게 익은 오징어를 통째로 올려 손님이 잘라 먹는 재미를 더했다. 홍 사장은 한번 통영 식탁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오랜만에 통영에 오면 감사하게도 꼭 이곳에 들러 식사하시고는 안부를 묻고 간다고 귀띔했다.
홍 사장은 “구미에서 식사하고 간 손님이 이곳에서 제대로 된 첫 끼를 먹고 갔다고 식당까지 편지를 보내주셨다”며 “그때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한결같이 장사하겠다”고 말했다.
4. 통영중앙전통시장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통을 닮은 꿀빵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면 부리나케 통영중앙전통시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장의 끝물에는 맛있는 통영 현지 음식을 더 싸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 먹거리가 가득한 시장을 본격적으로 탐방하기도 전에 입구 쪽에서 시선이 사로잡힌다. 꿀빵이다.
이름처럼 달짝지근한 꿀을 표면에 잔뜩 바르고 그 위에 깨를 솔솔 뿌린 빵이다. 안에는 보통 팥소가 들어있으나 요즘은 유자, 밤, 완두, 크림치즈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통영의 여느 관광객 손에서 볼 수 있는 이 작고 동그란 빵은 누군가의 머리통을 생각나게 한다. 작고 따뜻하고 통통한데 윤기까지 흘러서 한입 베어 물고 싶게 만드는 그런 뒤통수를 가진 누군가가 말이다.
먹음직스러운 자태 덕에 꿀빵은 통영 관광객들의 필수 기념품이다. 통영 꿀빵의 창시자이자 원조집인 ‘오미사 꿀빵’은 오전에 빵이 동날 정도로 인기다. 원조 가게 외에도 우유 반죽을 넣어 말랑한 멍게하우스 꿀빵 등 수많은 가게가 정정당당하게 시식 후 구매를 권하며 경쟁하는 모습도 정겹다.
한눈은 이쯤 팔고 시장으로 들어가 보자. 시장 안에서 충무김밥·쌀 떡볶이·순대·족발 등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통영까지 와서 해산물을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 물을 내뿜는 개불부터 팔딱이는 오징어까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구경거리가 넘쳐난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곳의 핵심인 ‘중앙활어시장’이 등장한다. 활어 등 해산물을 덤까지 얹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해산물 애호가라면 이곳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곳에서 횟감을 샀다면 곧장 활어 집의 사장에게 ‘초장집’을 추천해 달라 물으면 된다. 초장집은 소비자가 횟감을 가져오면 회를 떠주고 맛볼 수 있는 자리를 내준 뒤 상차림 비용만을 받는 가게를 말한다.
활어를 판매하는 곳과 횟집이 갈라지는 체계로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서로 비교적 진실하게 장사를 하게 된다고. 쫀득한 활어회에 칼칼한 매운탕까지 제값에 맛볼 수 있다.
5. ‘디피랑’에서 피어나는 통영의 밤
통영의 밤은 오후 8시부터 디피랑에서 은밀하게 피어난다. 디피랑은 2020년 남망산조각공원에 문을 연 디지털 테마파크다. 이곳의 콘셉트는 벽화마을인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지워진 벽화가 살아 움직이는 빛의 정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드리우면 마을에서 지워져 잊힌 줄로만 알았던 벽화가 이곳에서 깨어나 저마다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를 테마파크의 미디어 아트에 담았다.
생명의 벽·숲 속 출구·캠프파이어·반짝이 숲 등 총 15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각 구간에 안내원이 상주해서 밤길을 헤매지 않고 안전히 돌아볼 수 있다. 관람 소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송정원 디피랑 주임은 “관광객분들의 반응이 좋은 곳은 동피랑 벽화를 기반으로 한 구역인 오래된 동백나무와 반짝이는 나무를 볼 수 있는 반짝이 숲이다”며 “이곳은 꼭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빛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 특성상 다른 관광객의 원활한 관람을 위해 사진 촬영 시 휴대전화 플래시 등을 꺼야 한다. 아울러 테마파크가 산자락에 있다 보니 오르막 구간이 다수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방문 시 운동화를 신고 오는 게 좋다.
디피랑의 마지막 구간은 이곳과 동명인 ‘디피랑’이다. 운이 좋다면 이곳에서 종종 나오는 특별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숲속 출구까지 지나면 긴 여정의 끝이다. 음악이 끝난 후 조명이 꺼지고서야 비로소 통영의 밤이 잠든다. 낮부터 밤까지 연신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 통영이다. 통영 시민의 통영 자부심이 비로소 이해가 간다.
끝으로 통영은 대중교통이 편하지만은 않은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본인 차가 없으면 통영 관광은 택시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다. 통영에서 택시를 부르고자 한다면 통영시의 공식 택시 애플리케이션인 ‘온정 택시’를 까는 게 좋다.
통영 시민들은 모두 이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데 이유가 있다. 온정 택시로 차를 부르면 다른 앱과는 달리 제일 가까이 있는 택시가 잡히기 때문이다. 혹여 ‘택시가 잡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넣어두시길. 통영 택시는 부르기만 하면 3분 안에 올 정도로 많고 신속하다.
글=김혜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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