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합창단과 외국 합창단이 무대에 서기 전 듣는 격려의 말이 다르다고 한다. 외국은 ‘즐기자’인데, 한국은 ‘잘하자’다. 무한 경쟁사회의 끝없는 다방면적 ‘잘함 요구’. 피곤의 수준을 넘어 아플 지경이다. 때론 잠시 내려놓고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곳에선 ‘잘한다’라는 게 없어요.”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에 있는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 명상 시간에 들은 말이다. 듣는 순간, 마치 가슴을 옭아매던 줄이 느슨해진 것 같았다.
젠테라피는 2020년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발표한 ‘서울형 웰니스 70선’ 중 힐링, 명상 분야에 선정된 곳이다. 한국싱잉볼협회의 중앙 본부기도 하다. 주로 싱잉볼을 활용한 여러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젠테라피는 서울, 경북 경산, 강원 인제 등 총 3개 지점이 있다. 지난 17일 젠테라피 서울점에 방문해 ‘인요가’와 ‘싱잉볼 뮤직 테라피’를 체험했다.
인요가는 음양에서 음(陰)에 해당하는 요가로, ‘양적인’ 일반 요가에 비해 훨씬 정적이다. 근육보다는 깊숙한 관절 등 부위에 초점을 둔다. 한 동작에 약 3분 이상 시간을 들이며 천천히 수행한다. 몸에 느껴지는 자극을 그대로 인지하며 ‘내 몸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싱잉볼은 ‘노래하는 그릇’이란 뜻의 히말라야 주변국 전통악기다. 보통 티베트 것으로 많이 알려졌다. 불교에서 쓰는 명상용 주발, 또는 좌종(坐鐘)과 비슷하다. 싱잉볼을 두드리거나 문지르면 강하고 지속적인 울림을 몸 전체에 전달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이완되며, 명상하는 상태에 더욱 쉽게 들어간다. 싱잉볼을 활용한 요법은 소리로 몸을 씻어낸다 해 ‘사운드 배스(Sound Bath)’로 불린다.
프로그램은 오후 7시에 시작했다. 늘 힘겹게 타던 지하철이지만 가는 길 내내 여행을 떠나는 기분 같았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떠오른다. 찬바람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젠테라피에 도착했다. 건물 2층 창문에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비치며 연꽃 모양 로고가 보였다.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하얀 바탕에 브라운 계열로 장식된 실내는 명상 용품과 신비로운 소품이 가득했다.
탈의실에 짐을 두고 강의실로 향했다. 먼저 온 수강생이 각자 사용할 매트를 깔도록 일러줬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이 가져온 편한 바지까지 선뜻 건넸다. 그동안 자신도 도움을 많이 받아 나누고 싶다면서 말이다. 시작 전부터 ‘힐링’이 되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인요가 수업이 들어가기 전 선생님은 각자의 참석 계기를 귀담아 들었다. 이어 선생님은 “항상 음양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라며 “평소 자신이 차분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항상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양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생활이 양적인 것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었다.
선생님은 이어 “인요가는 한 동작에서 오래 머문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다음 동작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양적 요가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 동작에 머무르다 보면 잡념이 무수히 떠오른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눈 감고 하는 명상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선생님은 “이때 의식을 다시 호흡과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면 ‘집중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힘을 기르면 일이나 대인관계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회생활과 마인드 컨트롤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인요가란 한마디로 요가, 싱잉볼, 명상이 결합한 ‘힐링 종합 선물 세트’인 셈이다. 다만 싱잉볼의 활용은 가르치는 곳에 따라 다르다. 젠테라피는 싱잉볼 명상이 위주인 곳이라 인요가에 싱잉볼을 포함한다.
지시에 맞춰 여러 동작을 직접 해봤다. 나름 유연성에 자신 있는 기자였지만, 제대로 해보려니 쉽지 않았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저렸다.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오기로 동작을 따라 했다.
선생님은 그보단 ‘알아차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종일관 무리하지 말 것을 부탁하며 그는 “이곳에선 ‘잘한다’라는 게 없다. 그냥 ‘지금 이 동작을 하고 있구나’ 하며 알아차려 주고, 통증이 올라오면 ‘올라오나 보구나’ 하며 내 몸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요가는 ‘관대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동작을 하면 된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갈 수 있다. 똑같은 동작만 하며 평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을 기르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요가가 인요가”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초보 요가 수강생이어일까. 집중은 잠시뿐 온갖 딴생각이 물밀듯이 떠올랐다. 하다하다 요가 마치고 저녁은 뭘 먹어야 할지까지 떠올랐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며 호흡을 집중했다. 그럴수록 잡념은 더욱 빠르게 요동쳤다.
‘댕-’ 이때 싱잉볼 소리가 들려왔다. 싱잉볼의 울림은 아주 길게 이어진다. 처음 타격음이 들린 후 ‘웅-웅-’거리며 귓가에 머무른다. 마치 밀물과 썰물이 오가듯 반복된다. 소리를 듣자 신기하게 마음이 가라앉으며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지만 몸의 느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잡념은 계속 떠올랐지만, 한번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자 전보다 쉽게 머릿속을 비울 수 있었다. 또 느껴보고 싶은 평화였다. 인요가 시간은 오후 8시쯤 마무리됐다.
바로 싱잉볼 뮤직테라피 시간이 이어졌다. 참가자는 요가 시간보다 다양한 싱잉볼의 연주를 누워서 듣는다. 싱잉볼은 크기, 재질, 공법에 따라 종류가 갈리는데, 명상 시 주로 싱잉볼 연주음의 ‘차크라(척추를 따라 위치한 에너지가 모이는 중심점)’에 주목한다.
우리 몸 7개 차크라에 해당하는 7가지 싱잉볼을 연주하면 소리가 몸과 공명하며 치유가 이뤄진다. 각기 다른 울림을 가진 싱잉볼은 효능 역시 각각 다르다. 우리 몸의 70%는 물인데, 소리는 공기보다 물에서 약 5배 빠르게 전달되는 특성이 있으니, 이를 활용한다는 과학적 풀이가 있다. 싱잉볼 소리가 뇌파에 영향을 줘 몸을 이완시켜 준다는 연구도 있다.
선생님은 “애써 소리를 들으려 할 필요가 없다”며 “평소에 애 많이 썼으니 쉬는 시간을 가져주라”고 말했다. 이어 “에라 모르겠다, 하며 마음과 몸을 열어놓으면 소리가 그대로 전달이 된다”고 설명했다.
싱잉볼 테라피를 진행하면 많이들 잠이 든다고 한다. 기껏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갔는데 듣지 못하고 잠들면 아까울 것이다. 선생님은 웃으며 본인도 그랬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그는 “잠이 들어도 ‘몸이 그만큼 휴식이 필요했다’고 알아차려 주면 된다”고 말했다.
싱잉볼 연주가 시작됐다. 눈을 감고, 싱잉볼 소리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으며 그대로 있으려 했다. 이미 한 시간을 이완해서 그런지 금세 몽롱해졌다. 잠은 오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듯 어떤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봤으나 잘 안됐다. ‘애를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소리를 잘 들으려는 마음도 자꾸 생겼다. 인요가의 경우 느리지만 다음 동작이 있고, 선생님의 지시가 있어 집중이 더 수월했다. 생각이 많고 계속 뭔가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기보다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는 명상으로 입문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누워서 소리를 듣기만 하는 싱잉볼 뮤직 테라피는 1단계다. 2단계부터는 싱잉볼과 함께 강사의 지시를 따라 명상을 진행한다. 3단계는 직접 입으로 소리(‘옴’ 등 차크라 관련 발음)를 내보는 ‘만트라’ 과정이 있다. 4단계는 몸까지 움직여 보는 ‘이너 무브먼트’ 과정이다.
젠테라피 관계자는 “단계별로 추천은 하지만 개인 취향이나 일정에 따라 많이들 참여한다”고 전했다. 또한 조금 엄격한 기준을 따르자면 1단계에서 잠이 들지 않아야 2단계로 넘어간다고 한다. ‘잠이 안 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2단계로 넘어갈 수 있나’라고 질문하니 관계자는 “열심히 하면 안 된다”며 웃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열심히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으니 묘한 위안이 됐다.
어떻게 쉬어야 잘 쉬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하는 고민이다. 싱잉볼 체험을 하고 나니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잘 쉬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글=유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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