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차박] 솔직히 차박 누가 가나 했다
…얼떨결에 2박3일 다녀온 진짜 후기①
아차, 늦었다. 웬만해선 약속에 늦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대놓고 늦어버렸다. 학창시절 집이 가까운 친구가 지각이 잦은 것과 같은 이치다. 무슨 소리냐, 캠핑 그것도 차박을 떠나려 준비한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좀 달랐다. 카셰어링 기업 쏘카가 차박을 떠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차량공유를 넘어 차박 전용 차량까지 서비스한다는 것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콜사인을 보냈다.
여기서 늦장부린(?) 이유가 있다. 자신이 사는 집 앞 주차장까지 차를 데려다 주고 또 가져가는 ‘부름’이란 서비스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월 24일 화요일 오전 8시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 주차장이라고 지정을 하면 최소 20~30분 전에 타고 갈 차량이 와 있다. 반납할 때도 마찬가지다. 날짜와 시간, 장소만 알려주면 예정한대로 가져간다.
이렇다 보니 여유를 부리고 부리다 결국 약속 시간을 놓친 것이다. 물론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늦은 만큼 여유 있게 여정을 즐기면 되니 말이다. 우리의 2박 3일을 책임질 차량은 현대차의 스타리아 캠퍼. 최근 캠핑차량으로 인기가 높은 차종이다.
기아차의 레이도 캠핑카가 있었으나 딸 둘의 금메달 가족에게는 레이보다는 스타리아가 낫다는 귀띔에 고민 없이 바로 선택했다. 더구나 평소 운행 중인 차량이 SUV인 덕에 스타리아 운전대는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스타리아 캠퍼는 요청사의 주문에 따라 구성을 달리 한다. 쏘카의 스타리아 캠퍼는 수전이나 테이블, 샤워시설 등은 없다. 대신 그 공간을 전부 평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선루프 자리에 팝업 루프 시스템을 구비해 2층 침대처럼 즐길 수 있어 색다르다.
본격적으로 생애 첫 차박여행의 시동을 걸었다. 놀랍게도 최종 목적지는 출발 전까지 정하지 못했다. 첫 차박이라 더 고민에 빠져서다. 풍경도 환경도 두루 괜찮은 곳을 블로그나 유튜브로 뒤져도 어느 하나씩 꼭 모자라 보였다. 결국 동해가 있는 강원도, 바다를 마주하는 해변으로 떠나기로 했다. 부딪혀보는 재미, 이 또한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일 테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꼭 챙기려는 것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차박 여행인 만큼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가 있을 법한 보고 즐길거리는 한 가지씩 챙기자였다. 첫 경유지는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곳이다. 2시간여 달렸을까. 강원 인제에 다다랐다. 이곳에선 강원세계산림엑스포와 인제가을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꽃대궐이다. 국화, 코스모스 등 가을꽃은 물론 이름 모를 여러 꽃이 수십만, 아니 수백만 송이는 족히 돼 보였다. 우리가 갔을 때가 가을 초입이라 만개 전인데도 불구하고 총천연색 컬러바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했다. 더구나 마치 미로찾기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지루함이란 있을 수 없다.
꽃밭 한 가운데 노란 문을 열고 나가면 소설 어린왕자를 만날 것 같고, 보라색 전망대 위로 내달리면 꽃바다 내지는 꽃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사랑을 담뿍 담은 전시물이나 거대한 물레방아 등도 가족과 인증샷 추억 남기기 좋았다.
이벤트 참여도 아이들의 흥미를 돋웠다. 포춘쿠키를 뽑아 들면 다양한 경품을 준다. 꽃축제답게 제법 큰 소국 화분과 5000원 상당 인제사랑상품권을 받았다. 화분의 소국은 만개해 집 거실을 가을 분위기로 바꾸는데 한 몫하고 있고, 상품권으로는 당일 맛있는 황태해장국 한 그릇 먹는데 보탰다.
차박 전용 차량으로 다니는 장점은 여기서도 발휘됐다. 배가 든든해지니 6살 둘째가 잠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투정이 사라질 때까지 버텼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단 안전을 위해 졸음 쉼터에 정차했다. 전 시트를 눕히기에는 부담이 있어 루프톱 팝업텐트를 펴서 올렸다. 버튼 조작 몇 번이면 차량 천장에 오목하게 성인 두 사람이 충분히 누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흡사 새 둥지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늑했다. 더구나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라는 것에 애들은 덩달아 신나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왔다. 잠투정마저 날려버리는 팝업텐트가 신통방통했다.
아이들이 넉넉히 꿀잠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최종 목적지에 대한 검색을 마무리했다. 대한민국 최북단 고성으로 낙점했다. 상대적으로 인파가 적고, 그러다 보니 맑고 쾌적하고, 아울러 차박 관련한 인프라도 제법 잘 갖춰져 있다는 정보가 많았다.
낮잠도 잤겠다, 온 가족의 컨디션 역시 최상으로 올라온 만큼 동해를 향해 달렸다. 설악산을 마주하는 뷰도 좋았지만 바다, 깊고 푸른 동해가 어서 빨리 보고팠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바다를 실컷 보려 속초IC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무엇보다 바다를 곁에 두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사계절 막론하고 진리다.
시간이 훌쩍 흘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때가 다가왔다. 빨리 차박지를 정해야 했다. 고성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송지호 해수욕장을 먼저 둘러봤다. 대형 주차장이 있다는 것은 평소에 얼만큼 인파가 몰리는 지를 방증하는 것 아닐까. 주차장에서 바다 사이에 소나무 군락이 이어지다 보니 조금 멀리 떨어진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바다뷰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에게는 감점 요인이다. 더구나 이곳은 화로금지다. 나무가 많아서일 테다. 물멍과 불멍을 동시에 기대하는 차박러에게도 적절하지 않은 장소이다. 하지만 화장실이나 편의시설 등은 아주 잘 갖춰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안전도 걱정할 필요 없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 반암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차박하기에 이곳보다는 반암낚시공원이 더 낫다는 후기가 있어 공원 쪽에 차를 세웠다. 낚시공원답게 방파제를 마주하고 낚시를 위해 터를 잡은 강태공들이 제법 보였다. 한 밤에도 충분히 안전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화장실이 최근에 지어져 조금 과장하면 호텔급이다. 어린이를 위한 보조 시설까지 갖춰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곳 역시 화로금지에, 낚시인들에 좀 더 친화적이라고 할까. 차박 분위기를 내는데는 2% 부족함이 느껴졌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화진포해수욕장. 이곳은 가장 기대를 많이 했다. 화진포 호수와 동해 사이에 해안도로와 산림욕장 등이 갖춰져 있어 운이 좋으면 호수 쪽으로는 일몰을, 바다 쪽으로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지호에 버금갈 만큼 유명한 해수욕장답게 주차장도 상당히 넓었다. 또 주변의 화진포 해양박물관도 차박러들의 후기가 제법 있었다. 모래사장에 천국의 계단도 만들어져 있고, 주차장 역시 널찍했다. 다만 이곳에는 곳곳에 차박이나 캠핑 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물론 화로 사용은 금지였다.
마지막으로 반암과 화진포 중간에 있는 거진해수욕장으로 갔다. 이곳엔 벌써 차박에 들어간 이들이 꽤 있었다. 스타리아 캠퍼 같은 승합차량부터 지프, 일반 SUV, 중형 버스 등 차량 종류도 다양했다. 거진해수욕장의 최대 장점은 주차 자리만 잘 잡으면 바로 모래사장과 바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공용 화장실이나 편의점이 도보로 1~2분 내였다. 아울러 주변에 차박러가 많다 보니 초보자로서 위안이 되는 부분도 생겼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최초 차박지는 거진해수욕장으로 정해졌다.
차박지를 좀 더 신중히 고르려다 적색경보를 울릴 뻔 했다. 애들의 배꼽시계에 알람이 켜진 것이다. 첫 차박에 캠핑도 거의 처음이다 보니 어설프지만 최대한 장비를 끌어 모았다. 이제 그것을 맘껏 발휘해보자며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뿔싸. 스타리아 캠퍼는 모두 USB 형태의 전원인 점을 몰랐다. 분명 전원 공급이 충분히 잘 되는 차량이다, 곳곳에 전원공급 장치가 있다란 문구를 봤는데 그 공급원이 모두 USB포트일 줄은 상상을 못했다. 그것만 믿고 가스버너조차도 챙기지 않은 초보 차박러의 실수 연속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한 음식의 조리는 불가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편의점이 근처에 있었다. 규모도 꽤 컸다. 전자레인지나 온수 공급 장비도 여러 개인 것 보니 우리처럼 이곳에서 사서 먹는 경우가 많은 듯 했다. 컵라면부터 즉석밥과 국 등을 양 손 가득 들고 공수했다. 정말 십년감수 순간이다. 최대한 캠핑 느낌 물씬 풍길 수 있게 테이블 세팅에 들어갔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차박러들의 장비가 월등해 우리에게 도움을 줬다. 그들의 밝은 조명이 우리에게까지 비춰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차량 외부 점등 기능이 있었지만 켜자마자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날벌레에 항복하고 말았다.
임기응변 음식들이 전부였지만 차려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더구나 이곳은 동해다. 검푸른 파도가 철썩철썩 귓전을 때리고, 비리지 않은 향긋한 바다내음도 기분을 좋게 했다. 모래사장도 많이 곱지 않고 입자가 성근 편이라 지지하는 맛도 있어 만족스러웠다. 사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차박성공’이라는 성취감이다. 많이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란 걱정은 막상 도전해보니 해볼 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아직 하룻밤도 보내기 전의 설레발이지만 대체적으로 차박에 대한 두려움은 깨졌다.
처음 맛보는 컵라면도, 치킨도 즉석국과 밥도 아닌데 아이들이 맛있다고 난리다. 역시나 분위기가 한 몫 했다. 여기에 방점을 찍어줄 차례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멍이다. 큼직한 돌멩이 4개를 구해 화로대를 잘 세웠다. 번개탄 위에 잘 마른 참나무와 신문 몇 장을 찢어 불을 붙이니 금세 그럴싸한 불꽃이 펼쳐졌다. 이를 본 아이들의 환호성에 어깨 으쓱이다. 캠핑 의자에 앉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불 관리하다 맥주 한 모금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 맛에 캠핑, 차박하는 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밤이 가까워지기 전 잘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의자를 다 눕히니 꽤 평평해졌다. 그 위에 에어매트를 펼치고 펌프를 연결해 열심히 공기를 주입했다. 옆 차박러들이 왜 전동기기를 쓰는지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발길질하다 보니 우리 매트도 탄력 있는 자태로 변신했다. 이불과 베개 등을 놓고 눕고 뒤척이고 굴러보고 다해봤다. 은근히 편하고 넓다. 어른 둘, 아이 둘이 여유 있게 누웠는데도 꽤 공간이 남는다. 혹시 좁으면 2층 팝업텐트에서 자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 재우고 얼마나 흘렀을까. 한밤에 창문이 빼꼼 열리더니 “아빠”하고 첫째가 부른다. 어째 뱃속에 암모니아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다. 빨리 배출했으면 하는 표정도 연기상감이다. 하지만 아빠는 짙은 보리향 알코올의 유혹에 빠져든 지 오래다. 엄마에게 SOS 요청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결국 세 모녀는 룰루랄라 요산배출을 시원히 하고 왔다. 다시 한 번 화장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 (==> 2편에서 계속) <==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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