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텔가는 아트캉스 열풍이다. 이전까지 단순히 호텔에 머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육체적인 휴식을 취하는 호캉스가 인기였다면, 최근 호텔 투숙객은 머무는 기간 내 차별화된 활동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호텔가도 호텔 내 여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아트캉스도 그중 하나다. 아트캉스는 예술을 뜻하는 아트와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인 호캉스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다. 이미 많은 호텔이 내부에 미술품을 전시하거나 작품 해설을 진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각기 다른 아트캉스 상품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이를 이용한 투숙객의 반응도 뜨겁다. 원하는 전시를 감상하고자 호텔에 방문하고 이 과정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아트캉스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스피커(SPEEKER)가 일상에 예술을 녹이고자 개최한 프로젝트, ‘2023 아트 트랙 제주’에서 역시 아트캉스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아트 트랙 제주에 참여한 호텔은 그랜드 조선 제주, 코사이어티 빌리지, 포도호텔로 총 3곳이다. 모두 다른 작품을 전시하고 있음은 물론 호텔에서 지향하는 분위기가 다르기에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테마도 다채롭다. 물론 해당 호텔에 숙박하지 않더라도 아트 트랙 기간 내 누구나 방문해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이번 달 제주에서 즐길 수 있는 아트캉스를 소개하고 방문한 곳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을 전한다.
오감으로 즐기는 예술, 그랜드 조선 제주
제주에서 즐길 수 있는 아트캉스의 첫 번째 주인공은 그랜드 조선 제주다. 그랜드 조선 제주는 오픈 이래 최정화, 알렉스 카츠, 게리흄, 래리 벨를 비롯해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작품 340여 점을 전시하고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투숙객에게 휴식과 문화 활동을 결합한 경험을 지속해서 선사해 왔다. 이러한 이벤트는 2023 제주 아트 트랙에서도 이어진다.
그랜드 조선 제주에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플라워 브랜드 그로브(GROVE)의 작품을 곳곳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로브는 플라워아트나 플랜테리어 등 여러 식물을 다루는 브랜드다. 이번 아트 트랙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로, 그로브몬(GROVEmon)이다. 얼핏 보기엔 거대한 솜뭉치와 같이 보이는 그로브몬은 꽃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창작물이다. 세상 모든 꽃이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존재 자체로 새로움을 준다는 그로브의 철학을 담고 있다.
본관 5층 로비로 들어서면 크기와 색깔이 다른 그로브몬이 나란히 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과 귀여운 외관 덕분에 아이와 함께 사진을 남기려는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 있었다. 같은 건물 1층에선 더 많은 그로브몬을 볼 수 있다. 공간 내 여러 식물과 조화를 이룬 그로브몬이 더욱 산뜻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라운지앤바에선 이번 아트 트랙 프로젝트를 기념해 그로브몬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저트도 판매한다.
그로브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오름 정원에 있다. 문밖으로 나가면 나오는 완만한 언덕이 오름 정원이다. 9월 한 달간, 이 언덕 가운데에는 거대한 그로브몬 두 마리가 자리한다. 외부 전시인 만큼, 다른 것에 비해 확연히 큰 크기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주의 뜨거운 햇볕이 부담스럽다면, 해가 진 후 오름 정원을 산책하며 그로브몬을 감상해도 좋다. 정원 내 조명을 밝혀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본관 앞 힐 스위트관 6층, 헤븐리 라운지에선 사진작가 안웅철의 전시를 진행 중이다. 헤븐리 라운지까지 가는 복도에 사진이 전시돼 있다. 복도의 흰 벽을 안 작가의 바다 사진으로 채운 점이 인상적이다. 작품 사이로 보이는 창 너머로 제주 바다가 보여 더욱 몰입하기 좋다는 장점도 있었다. 모두 바다를 촬영한 사진임에도 작품별 분위기가 서로 달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날 작품 설명을 진행한 강보라 스피커 컨버전시팀 실장은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한 것이 이번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라며 “그 특유의 질감 덕분에 더욱 생동감 있는 바다를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라운지 내부로 들어가면 사진 외 다양한 전시품을 관람할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공간 가운데에 놓인 여러 음반이 눈에 띈다. 안웅철 작가는 재즈음반 레이블 ECM Records 표지를 장식한 유일한 한국인으로도 유명하다.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보고 영감을 얻은 것도 바로 그의 사진이라고. 강 실장은 “헤븐리 라운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모두 안 작가가 선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랜드 조선 제주는 헤븐리 라운지에서 작품 해설 서비스도 제공한다. 작품을 더욱 집중해 관람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조용한 아트캉스를 원한다면, 코사이어티빌리지 제주
코사이어티빌리지 제주는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워케이션 공간으로 유명하다.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이곳에선 그 분위기를 깨지 않는 고요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그랜드 조선 제주와 달리 유료 전시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 참고하자.
가장 먼저 벨기에 기반 사운드 아티스트 다비드 헬비히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간 벽에 걸린 정적인 작품을 보기만 했다면 이번 전시는 조금 다르다. 방문객은 공연의 관객인 동시에 공연자가 된다. 조용한 곳에서 소리를 만들고 느껴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뉜 공간에서 작가가 설명하는 방식대로 소리를 만들고 느끼다보면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에 몰입할 수 있다.
맞은편 건물에선 드로잉 아티스트 성립의 전시가 이어진다. 성립은 사람의 얼굴에서 발견한 선적 요소로 그림을 그려 대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다. 이번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에선 AOMG 소속 뮤지션과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선으로 그린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표현한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큰 창은 작품으로의 몰입감을 한층 높여준다. 내리쬐는 햇볕과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다른 풍광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참을 머물며 창밖을 내다보면 드넓게 펼쳐진 제주 자연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밖에도 야외 잔디 공간에는 프로젝트 팀 필굿의 작업물이 전시돼 있다. 육체적 쉼을 위해 코사이어티 제주에 방문했다면 작품을 감상하며 정신적 쉼도 채울 수 있다.
호텔 그 자체가 예술, 포도호텔
제주의 오름과 초가를 닮은 외관으로 명성을 얻은 포도호텔. 사실 이곳은 호텔 내 갤러리가 있는 진정한 아트캉스 명소다. 포도호텔은 아트인포도(ART in PODO)라는 프로그램으로 아트 트랙에 동참한다. 이곳에선 투숙객을 대상으로 호텔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이 남긴 예술을 따라가는 ‘건축예술가이드’에 참여해 제주 자연 속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
글=이가영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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