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세종시를 ‘행정복합도시’를 줄인 ‘행복도시’라 부른다. 그런데 단순히 말장난 같은 이 별칭은 의외로 과학적 근거가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그룹 연구팀의 2021년 논문에 따르면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는 도시의 녹지 면적이 늘어날수록 시민의 행복도가 높아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8000달러(약 5000만원) 이상인 도시에서는 경제력보다 녹지 공간이 행복에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세종시가 국내에서 가장 녹지율이 높은 도시라는 점이다. 세종시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의 녹지율은 52.3%로 36.3%인 판교, 41.7%인 광교 신도시를 크게 웃돈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통계청이 짝수년마다 조사하는 전국 시도별 녹지환경 만족도 통계에서 세종시의 만족도는 69%로 강원, 전남에 이어 전국 3위에 달한다. 여기에 가족관계 만족도나, 소비생활 만족도 등의 수치가 전국 1위로 나타나는 등 세종시는 ‘행복도시’라는 별명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세종시는 탄탄한 녹지산업 기반을 통해 ‘세계 정원수도’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정원도시 세종’ 로드맵에 따르면 시는 2025년 국제금강정원박람회를 발판삼아 세종호수공원과 중앙공원 일대를 2030년까지 국내 3호 국가정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여기에 캐나다 소재 비영리 단체 CIB(Communities in Bloom)의 국제 정원도시 최고등급 인증까지 얻겠다는 목표도 있다. 국가정원 타이틀에 정원도시 인증까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원수도로 거듭날 기세다. 그런 세종시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여행플러스팀이 세종시가 자랑하는 녹지 공간들을 담기 위해 직접 다녀왔다.
국내 최초 도심형 수목원의 위용, 국립세종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은 65만㎡의 방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형 국립수목원이다. 2020년 10월 개관해 일반에 공개된 지 3년이 채 안됐지만, 작년 5월 누적 방문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세종시의 명소로 우뚝 섰다.
국립세종수목원을 대표하는 사계절온실은 높이 32m, 넓이 1만㎡의 국내 최대 규모 온실이다. 붓꽃을 형상화한 특징적인 건물 내부에 열대 온실, 지중해 온실, 특별전시 온실 세 개의 개성 있는 실내온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먼저 향한 특별전시온실에선 동화 ‘피터 래빗’을 주제로 하는 전시 ‘피터 래빗 빌리지’가 진행 중이다. 온실은 부산꼬리풀, 금꿩의다리, 큰각시취 등 국내 자생식물 12종과 수목원에서 재배한 여러 식물로 꾸몄다. 여기에 귀여운 토끼 캐릭터들의 입간판, 붉은 벽돌 건축물 등이 더해져 찍는 곳마다 인생샷이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정원 한쪽에는 포토존과 함께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6종의 국내 꽃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공간도 있다. 특별전시 ‘피터 래빗 빌리지’는 오는 7월 2일까지 계속된다.
다음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식물들을 모아놓은 지중해온실로 들어갔다.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 파인애플을 닮은 카나리아 야자를 비롯해 이름조차 생소한 식물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실제 지중해 휴양지에 온 듯 온화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겨보자.
지중해 온실 2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어 푸르른 수목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마지막 열대온실로 들어서자마자 고온다습한 공기가 밀어닥쳤다. 식물원 측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했을 당시 이곳에서 동남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간 방문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폭포와 연못, 주변을 둘러싼 식물들로 인해 실내 공간이 아니라 진짜 열대우림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열대온실의 나무들은 아직 최대 크기로 자라지 않은 어린나무들이다. 그런데도 이미 웬만한 건물 2층 높이까지 오는 모습을 보면 향후 5년, 10년 뒤에는 정말 하늘을 올려다 봐도 유리천장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온실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창덕궁 후원을 재현한 궁궐정원이다. 세종식물원은 궁궐 정원과 민가 정원, 별서 정원 세 곳을 묶어 한국전통정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궁궐 정원은 소나무, 매화나무, 배롱나무, 향나무 등 다양한 나무로 꾸며 놓았으며, 솔찬루, 도담정에 앉아 햇살을 피해 풍류를 즐길 수도 있다. 도담정 앞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에 ‘세종으로 온 창덕궁’이라는 해설 프로그램도 열린다.
이날 세종수목원에서의 마지막 목적지는 분재원이었다. 분재원은 건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넘친다. 분재 식물과 여러 지피식물을 조화롭게 배치해 산을 축소 시킨듯한 ‘석가산’부터 간결한 형태의 상설·특별전시원 건물까지 실외에서 바라보는 모습부터 매력적이다.
세연문화재단이 기증한 200여 점의 분재 작품이 건물 내부와 정원을 채우고 있다. 나무에 인공물을 더해 자신이 원하는 풍경 구현에 초점을 맞춘 중국식 분재와 나무 자체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중시하는 한국식 분재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세종수목원은 이밖에도 청류지원, 양서류관찰원, 후계목 정원, 작약원, 무궁화원 등 수많은 시설이 가득하다. 법적으로 수목원 내부에는 자전거, 킥보드와 같은 이동수단을 반입할 수 없다. 두 발로 곳곳을 돌아보다 보면 하루가 언제 갔는지 모를 것이다.
낮과 밤의 반전매력, 세종호수공원 & 세종중앙공원
세종시가 추진하는 국가정원 계획의 핵심에는 도시 중앙에 자리한 세종호수공원과 세종중앙공원이 있다. 이곳은 부지 면적 69만 7246㎡, 호수 면적 32만 2,800㎡로 자타공인 우리나라 최대의 인공 호수공원이다. 낮에는 공원 곳곳에 놓인 정원 작품과 꽃들을, 밤에는 꽃들에 지지 않는 형형색색의 불빛이 수놓는 야경을 만날 수 있다.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시민, 작가, 기관, 학생들이 조성한 정원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이라고 해서 멀찍이 바라보기만 할 필요는 없다. 정원 본연의 모습대로 작품 안을 거닐고 설치된 의자나 조형물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보자. 밖에서 정원 전체를 바라볼 때와 정원 안에서 주변을 봤을 때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이날 가장 기대한 곳은 ‘세종 가든쇼’가 열리는 장미원이었다. 8000㎡ 넓이의 장미원은 올해 초 공모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확정하고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열리는 세종 가든쇼는 본래 18일부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날은 아쉽게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현재는 변화한 모습으로 방문자들에게 아름다운 장미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장미원을 뒤로하고 ‘가족예술숲’을 돌아봤다. 이곳은 하지, 동지, 처서 등 각 절기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건축물이 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부터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거나 사진 배경으로 쓰기 좋을 것 같은 것까지 여러 종류의 건축물이 있어 돌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통해 호수 북쪽으로 건너가 호수공원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호수 중앙에 떠 있는 ‘무대섬’은 멀리서부터 그 독특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생각 이상으로 컸다.
밤이 되면 다리와 구조물 전체에 화려한 조명이 켜져 낮과는 또 다른 반전매력을 보여준다.
호수 부지가 워낙 넓어 걸어 다닐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공원 곳곳에 놓인 공유 자전거 ‘어울링’을 이용해보자. 이용요금은 90분에 1000원이며 이후 30분당 비회원은 1000원, 회원은 500원이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전동 킥보드나 전기자전거 등 동력장치가 있는 이동수단은 공원 전 구역에서 금지한다.
세종시 야경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금강수변공원
세종시는 크게 도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금강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뉜다. 이 금강을 따라 서울 한강시민공원과 비슷한 여러 수변 공원이 이어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금강수변공원이다.
수많은 수변공원 중 이 공원이 유독 유명한 이유는 바로 세종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도시 야경 대표명소인 금강보행교가 있기 때문이다. 금강보행교는 강 남북을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잇는 독특한 형태 때문에 ‘이응다리’로도 불린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하여 둘레를 1446m로 정해 국내에서 가장 긴 보행 전용 교량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울의 반포한강공원을 떠오르게 하는 금강수변공원에 도착하면 바로 정면에 금강보행교가 그 거대한 위용을 뽐낸다.
공원에 도착한 건 오후 7시 40분 즈음이었지만 해가 길어져서인지 하늘이 아직 노을에 물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다리 초입에서 건너편을 바라본 풍경은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었다.
다리는 지대가 높은 보행자도로와 낮은 자전거 도로의 이중 구조로 되어 산책하기에 편했다. 보행자도로 곳곳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참을 걸어 전망대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올라가는 계단이 꽤 높았다. 계단 중간마다 ‘쉬어가는 곳&포토존’이라는 팻말이 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여기서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끝까지 올라 뒤를 돌아보니 장관이 펼쳐졌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아름다운 야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첫인상은 익숙했건만, 끝에 가니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강유진 여행+ 기자
댓글1
세종보나 헐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