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를 포함한 조선 전기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문화재청과 수도문물연구원은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중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과 물시계의 주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 8점, 동종을 찾아냈다고 29일 밝혔다. 조사 지역은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금속활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다양한 금속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사례다. 동국정운은 세종 때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다.
그 외에도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하여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도 10여 점 출토되었다. 연주활자는 매우 희귀하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도 큰 성과로 평가된다.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됐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용도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최상부에서 발견됐고, 완형의 총통을 인위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파악됐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됐다. 총통은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을 붙여 발사하는 무기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 용 모양의 손잡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했다. 종신의 상단에‘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588년 이후에 묻힌 뒤 오늘날까지 긴 세월 자리를 지킨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 중”이라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예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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