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과 대아호, 오성제 저수지
가을 맞은 하늘과 푸른 빛 조화
야생화가 반겨주는 대부산 산행
무궁화 품은 고산휴양림도 매력적
완주는 BTS가 2019년 썸머 패키지 촬영지로 간택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BTS가 방문한 촬영지엔 완주군이 표지를 설치했고, BTS 팬클럽 아미를 비롯해 팬들의 방문이 뒤따랐다. 어느덧 완주는 옆 동네 전주만큼이나 뜨거운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완주 여행의 완주는 BTS 성지 방문에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BTS가 강림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사연과 멋진 풍경이 반기는 명소가 여럿이다. 여름이든 가을이든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만경강 물길과 울창한 숲속으로 떠났다.
▷ 만경강
대부분의 우리 하천이 그렇듯 만경강은 서쪽으로 흐른다. 완주를 감싸 안듯 서해로 흐르는 만경강은 해 질 녘에는 노을이 아름답다. 본래 있던 산길과 마을 길, 둑길, 그리고 자전거 도로로 천천히 강길을 따라 만경강의 물결을 따라 내려갈 수 있다. 만경강의 발원지인 동상면 밤샘에서 삼례읍 해전마을까지 약 44km, 7개 코스다.
출발은 만경강 발원지 밤샘으로 정했다. 밤샘은 소양면과 동상면이 경계를 이루는 밤티 아래에 있다. 밤티는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밤티마을에서 밤샘으로 가는 길은 마을길과 임도로 이어져 있다. 평지에 가까운 길이면서 편도 거리가 1km 정도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다. 도로 사정이 좋아져 밤샘 앞까지 승용차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다. 밤샘 주변을 돌로 쌓은 것을 제외하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흐른 물이 불어나 큰 만경강을 이룬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와닿는다.
▷ 신천습지
졸졸 흐르던 만경강은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회포대교에서 삼례읍 하리 하리교까지 부근에서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만경강의 허파’ 신천습지는 만경강 일대에 형성된 2.4㎞의 하천 습지다. 두 하천이 만나면서 하천의 경사가 완만해지고, 하천의 폭이 넓어져 유속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하천이 운반해 온 자갈과 모래들이 퇴적되어 군데군데 하중도(河中島)를 만든다.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만든 수중보가 안정적인 유량을 유지해 주고 있어, 이곳에 동식물들이 자생하면서 하나의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천습지의 식물군락은 왜개연꽃군락, 노랑어리연꽃군락, 수염마름군락 등 대략 29종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 감소추세종인 통발과 식물구계학적 특정종으로 등급이 높은 긴흑삼릉, 자라풀, 수염마름, 왜개연꽃, 질경이택사 등이 자라고 있다. 환경부는 만경강과 동진강 일대의 하도 습지 26곳 중 유일하게 신천습지를 습지 보전 등급 상(上)으로 분류했다.
인공제방 아래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회포대교에 오르면 신천습지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회포대교는 만경강 본류와 소양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신천습지는 도보로 한 바퀴 도는데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 비비정
기러기도 쉬어가는 명당인 비비정은 BTS가 방문하지 않았으나 유명했다. 현재 건물은 1998년 복원됐다. 사연은 이렇다. 조선 선조 때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었다. 후에 그의 손자 최양이 송시열에게 정자의 기문을 부탁했는데, 이때 송시열이 중국의 명장 장비와 악비에서 두 글자를 따 ‘비비정’이라 이름 지었다. 최씨 가문이 대대로 무인 집안인 점을 고려했다. 풍경이 수려해 비비정은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선비들이 비비정에 올라 한내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긴 것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고 했다. 정자에서 보이는 한내는 우리말로 큰내라는 뜻이다. 호남으로 빠지는 관로의 요충지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마지막 길목이었고, 동학농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장소이기도 하다.
식량 운반 요충지였던 한내에 일제강점기에 만경강 철교를 세웠다.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목적이었다. 당시 한강철도에 이어 2번째로 긴 나무로 만들어져 큰 관심을 받았다. 2011년 근처에 호남선 철교를 새로 놓아 폐철교가 되었다.
폐철교 위에는 비비정예술열차가 멈춰있다. 새마을열차 객차 네 량을 개조해 각각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맨 마지막 칸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만경강의 노을이 예술이다. 늦은 저녁 방문하면 식사와 풍경 감상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삼례읍 비비정길 73-21)
▷ 오성한옥마을
오성한옥마을에는 BTS가 수일간 통째로 빌려 숙박한 아원고택이 있다. 마을 주변으로 종남산, 서방산, 위봉산 등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 호수가 있다. 아원고택 뿐 아니라 높고 낮은 지형의 형태에 맞춰 지어진 전통한옥들과 토석담장, 골목길 등이 고즈넉한 옛 정취와 정겨움을 더해준다.
전통 방식의 시골밥상과 부꾸미 등 먹거리와 마을안길 걷기 및 생태 숲 체험을 즐길 수 있고, 한옥스테이와 오스갤러리, 고택 등 느긋하게 머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가족 나들이로도 매우 인기다.
특히 아원고택은 1층의 현대식 갤러리와 2층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단아한 한옥의 정경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만휴당과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진주의 250년 고택, 정읍의 150년 고택을 이축했다. 기본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서까래와 기와만 교체했다. 아원(我院)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소양고택 역시 최근 새로운 가옥을 들였다. BTS가 머물지 않았을 뿐이지 고즈넉한 분위기와 안락함은 뒤처지지 않는다.
오성한옥마을은 지난 2012년 한옥 관광지원화지구로 지정된 뒤 50가구 중 23채가 한옥과 고택으로 이뤄져 있다.
(소양면 오도길 일원)
▷ 대아호
BTS가 머문 숙소인 아원고택 근방엔 오성제 저수지가 있다. 이 때문에 완주의 대표 호수인 대아호는 다소 소외됐다. 그렇지만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아호수는 인공저수지임에도 자연스럽고 빼어난 경관을 뽐낸다. 이곳에서 시작된 물길은 만경강을 따라 호남평야를 적시고 물길 300리 서해로 흐른다. 특히 가로수가 울창한 20km 호반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동트기 전 군무처럼 펼쳐지는 물안개는 선경이 따로 없는 수준이다.
(동상면 대아리)
▷ 고산자연휴양림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국경일이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신성시하는 건 아닌가 싶다. 네덜란드의 튤립처럼 생활권 주변에 많았으면 어떨까. 완주군은 가로수로 무궁화를 심은 지자체다. 고산자연휴양림을 찾으면 수십 종 무궁화를 뚫어져라 볼 수 있다. 휴양림 입구 고산문화공원에 조성된 무궁화 테마 식물원, 무궁화전시관, 만경강 수생생물체험과학관, 무궁화천문대는 자연 생태학습의 장으로 딱 맞다. 마르고 닳도록 사랑해야 할 우리 무궁화가 이렇게 종류가 많은 줄도 모르고 살았다. 반갑고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산자연휴양림은 숲에서 즐기는 가족 휴양지로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무궁화 뿐 아니라. 낙엽송, 잣나무, 리기다 등이 빽빽이 들어선 조림지와 활엽수, 기암절벽 등이 어우러져 호젓한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다. 봄에는 철쭉, 산벚과 같은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 무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에는 붉은 양탄자를 펼쳐 놓은 듯 온 산을 덮은 단풍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겨울에는 기막힌 설경이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를 제공해 준다.
또한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온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게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웰빙 정자에서 편안하게 한나절 쉬다 갈 수도 있고, 휴양관, 숲속의 집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캐러밴이 있는 오토캠핑장에서는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밤을 보낼 수도 있다. 자연 지형과 지물을 활용한 신개념 레포츠 시설 에코어드벤처에서는 모험심을 키우고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면 고산휴양림로 246)
▷ 대부산 수만리 마애석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수만리 마애석불은 산 아래 자연 암벽에 새겨 놓은 거대한 마애불로, 통일신라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는 이러한 대형 마애불이 유행했다. 얼굴이 크고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생겼으나 귀는 작은 편이다. 목주름은 새기지 않았고, 옷자락은 양어깨에 걸쳐져 있다. 가슴이 넓고 무릎이 두꺼워 당당하고 듬직하게 보인다. 머리 위에 네모난 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간단한 구조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형 불상이면서도 적절한 양감과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마애불상은 천 년을 훨씬 넘겼으면서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마애석불 아래에는 안도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안도암은 동상면 수만리의 동광초등학교에서 약 400m 북쪽에 있는 캠핑장에서 출발하는 산행길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정상을 향해 1~2km 걸으면 안도암에 도착하며 여기서 왼편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대부산의 바위 봉우리들과 함께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마애석불을 만날 수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안도암을 거쳐 마애석불까지 이르는 길이 매혹적이다. 다채로운 야생화가 가을을 재촉하는 듯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손님을 향해 애틋하게 피어 있다.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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