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8일 오후 10시 15분경 김해공항 주기장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 BX391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항공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등 176명 전원은 비상 탈출에 성공했다.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으나 7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에어부산 화재 여객기는 에어버스 A321-200기종으로 지난 2007년 만들어졌다. 2016년 기준으로 알려진 에어버스 A321 가격은 1억1490만달러(1660억4000만원)에 달한다. 17년이라는 운영 기간을 고려해도 고가의 피해액이다.
현재 에어부산은 해당 여객기를 비롯해 모든 기체를 임대 업체로부터 임대해 운용하고 있다. 통상 기체 1대당 1년 임대료는 40억 원가량이며 사고를 대비해 기체 보험을 필수적으로 든다. 에어부산의 항공기 손상 보상한도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현재까지 이번 화재 사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보조배터리’나 ‘리튬이온 배터리’다. 이번 화재는 항공기 꼬리 칸 쪽 내부의 좌측 기내 수하물 보관함에서 발생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사고기의 날개와 엔진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번 화재 원인이 기내 선반 속 물체에서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한 탑승객은 “기내 수하물을 두는 선반 짐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난 후 조금 있다가 연기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가 발생하자 에어부산 기내 승무원은 기내용 소화기를 들고 선반 쪽으로 향했으나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선반에서 이미 연기가 자욱하게 새어나오고 있었으며 불똥이 튀고 있었을 정도로 화재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기 때문이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승무원이 소화기를 들고 이동했을 때는 이미 연기가 자욱해 화재 진압보다는 비상탈출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소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선반 문도 열지 않고 즉시 기장에게 보고해 유압 및 연료개통 차단 후 비상탈출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진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대피를 우선적으로 시행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 경우 진화 시도보다 비상 대피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항공기 화재는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문이 닫힌 선반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초기 발견이 어려워 진화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선반 문을 열면 화염이나 연기가 확산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보다는 비상탈출을 먼저 하는 것이 적절했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발화 원인 역시 다양하다. 배터리 자체의 결함, 충격으로 인한 배터리 내부 분리막 손상, 기내 선반 과적에 따른 배터리 압착으로 인한 발화 등이다.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리튬 배터리 화재를 진화할 수 있는 소화약제는 없다”며 “시중에 리튬이온 배터리 전용으로 판매되는 형식 승인 D급 소화기는 금속화재용으로 리튬배터리와는 무관하며 현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로 냉각 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 항공사는 기내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발생 시 최초 발견한 승무원이 기장을 포함해 기내 모든 승무원에게 화재 발생 상황 전파, 소화기로 진압, 용기에 물이나 비알코올성 액체를 채워 배터리를 보관, 화장실 등에 물체 격리 조치 등 순서의 행동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이는 초기 발견 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화재 발견이 늦어지면 사실상 기내에서 리튬 배터리 화재를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은 리튬 함량 2g 이하이며 용량 100Wh 이하인 보조배터리는 승객이 1인 5개까지 기내에 휴대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용량 100Wh 초과 160Wh 이하의 리튬 함량 8g 이하 배터리는 항공사의 승인 후 최대 1인 2개까지 기내로만 반입할 수 있다.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4년 8월까지 ‘국적기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 건수는 11건’에 이른다.
직접 손에 쥐고 타세요…보조배터리 휴대 강제화한다
이에 항공 업계에서는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배터리나 전자기기 등을 들고 기내에 탑승 시 승객이 직접 휴대하는 것을 강제화하는 조치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항공 전문가에 따르면 화재 예방을 위해 보조 배터리를 들고 탈 때 비닐 등으로 단자를 감싸 직접 휴대해야한다. 국가인증통합마크(KC)가 붙은 기내용 보조배터리를 사용하는 것 역시 기내 화재 예방책 중 하나다.
에어부산은 7일부터 BX146편 등 특정 노선을 대상으로 휴대 수하물 내 보조배터리 소지 유무를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탑승구 앞에서 휴대 수하물에 ‘노 배터리 인사이드(NO BATTERY INSIDE)’ 스티커를 붙여 별도 표식한다. 기내 선반에는 표식을 부착된 수하물만 보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일부터 보조배터리 기내 선반 보관을 금지했으며 배터리 관련 기내 안내방송도 기존 1회에서 3회로 늘렸다. 대한항공은 지난 5일부터 승객들에게 보조배터리 등을 좌석 주머니에 보관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보조배터리를 보관할 수 있는 투명한 지퍼백을 기내에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제주항공 역시 지난 6일, 리튬 배터리 소지 규정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이용객은 지난 6일부터 탑승 전 휴대전화와 무인 안내 기기를 거쳐 수속할 때 보조 배터리 등 리튬 배터리를 직접 소지해 눈에 보이는 곳에 보관하고 기내 선반 보관을 금지하는 내용에 관해 확인 후 동의를 해야 수속할 수 있다.
끝으로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보조배터리가 의료용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기내 휴대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기내 휴대의 의미를 항공사가 잘 안내하고 승객들이 지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혜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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