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를 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3년 김장 문화에 이어 두 번째 등재다. 이번 발표에 전통주 업계도 관심을 보였다. 장 담그기와 함께 ‘일본의 코지(koji) 누룩을 활용한 전통 사케 제조 기법’도 유네스코에 이름을 올리며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이에 다음 등재는 막걸리 빚기를 비롯해 떡, 비빔밥 등 우리 식문화이길 바라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한국의 막걸리 빚기 문화는 더 주목할 만하다. 삼국시대부터 기록이 있으며 △식품영양 △역사 △민속 등에서 의미가 높아 202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장 담그기와 함께 유네스코 등재 조건을 고루 갖췄다는 의견이다. 현재 유네스코에 올린 술빚기는 △조지아의 와인 △벨기에의 맥주 △일본의 사케로 총 3개다.
정부는 현재 전통주 진흥 정책에 한창이다. 그중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최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이 있다. 지역 우수 양조장을 선정해 전통주 만들기 및 시음을 하는 지역 관광 연계 사업이다. 2013년부터 시작해 ‘2024 찾아가는 양조장’엔 △밀과노닐다 △민속주 안동소주 △갈기산포도농원 △다도참주가 4곳을 추가했다. 여행플러스는 그중 전남 나주 특산물을 활용한 막걸리 양조장인 다도참주가에 다녀왔다.
햇빛에 비춰도 부끄럽지 않은 술, 다도참주가
영산강 줄기의 나주호를 따라 들어가면 6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다도참주가 양조장이 나온다. 3대째 이어진 다도참주가는 현재 3형제가 똘똘 뭉쳐 운영 중이다. 나주 특산물을 활용한 4가지 종류의 막걸리를 선보이며 나주 막걸리 시장의 70%를 점령하고 있다.
다도참주가는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 과정에서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설비를 앞세웠다. 회사명 ‘참주가’도 햇살 비칠 참(旵), 술 주(酒), 집 가(家)를 사용했다. ‘밝은 곳에 비추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술’이라는 의미다.
장연수 다도참주가 대표는 “막걸리를 60년 넘게 연구한 결과 온도나 습도 하나 차이에도 맛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며 “공장 내의 청결과 미세한 온도 조절로 안정된 맛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약 65년 역사를 가진 구 양조장이 옆에 있어 전시, 체험 공간으로 활용도도 높다는 평가다.
나주의 특산물을 활용한 대표 제품도 한몫했다. 제품은 모두 나주 쌀을 원료로 해 나주의 특산물을 살렸다. 나주 한라봉과 설향 딸기를 활용한 과일주인 ‘라봉’과 ‘딸링’이 대표적이다. ‘라봉’은 작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탁주 부문 대상을 받은 바가 있다.
떡이 술이 된다고? 백설기로 만드는 막걸리 체험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이곳에선 떡이 술이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백설기를 이용한 막걸리 빚기 체험에 참여했다. 다도참주가에선 체험을 위해 단맛을 첨가하지 않는 백설기를 따로 제작했다.
막걸리 빚기에 앞서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장연수 대표가 막걸리의 역사를 설명했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민들의 삶과 함께했으며 농사지을 때 새참으로 가장 많이 먹었다. 예능 ‘무한도전’ 벼농사 특집 때 개그맨 정준하가 먹고 녹화 중에 잠들어버렸던 술도 막걸리였다. 장 대표는 서민들이 집에서 막걸리를 빚던 과정부터 현재의 막걸리 제조 원리까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려줬다.
막걸리 체험은 △물 △누룩 △백설기만 준비한다. 막걸리 빚기는 쌀과 물의 비율이 생명이다. 막걸리 양조장에선 대부분 1대 1.5의 비율을 맞춘다. 체험의 경우엔 1대 1의 비율로 진행한다. 백설기에 수분이 있는 걸 감안해서다.
백설기를 작게 뜯어 통 속에 넣어주면 본격적인 시작이다. 누룩은 쌀 중량 대비 5% 정도 넣는다. 준비한 숟가락의 한 스푼 정도 넣으면 알맞다. 누룩을 물과 함께 저으니 뽀얗게 당화효소 성분이 배어 나온다. 누룩과 물을 절반 정도 꺼내 떡 사이사이에 넣어준다. 떡 사이의 공기층을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백설기를 펴준다. 같은 과정을 반복해 두 겹으로 만들면 수제 막걸리 완성이다.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건 이후의 온도 관리다. 평균 13℃에서 15℃ 사이에 보관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아이스박스 안에 넣고 야외에 보관하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약 한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저어주면서 곰팡이가 필 경로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2010년에 농수산부가 공모했던 ‘막걸리 영문 애칭’에 1위를 차지한 이름은 ‘드렁큰 라이스(술 취한 쌀)’였다. 만든 막걸리를 집에 보관하며 쌀이 취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발효과정에서 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막걸리 발효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과유불급’이다. 공장에서 제조하는 술들은 3단 잠금을 통해 안정된 맛을 유지하지만, 수제의 경우엔 맛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계속 맛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술맛이 나온 즉시 발효를 멈춰야 한다.
청주 형태로 먹고 싶다면 분리된 층의 윗부분만 따라서 먹으면 된다. 물을 더 넣어 연하게 마셔도 좋다. 막걸리의 걸쭉한 형태를 원한다면 채반에 걸러 물을 더 추가한다. 전통 수제방식에선 채반 대신 한복의 나일론 속치마를 이용해 걸러낸다고 한다.
10분에 한 번씩 “온도 췍”을 해야 하죠
“사람도 더우면 땀 냄새가 나듯이 막걸리도 온도에 따라 냄새가 달라져요.”
발효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맛이 시시각각 변한다. 과거엔 사람이 직접 10분에 한 번씩 온도를 조절했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말 까다로운 술이라 할 수 있다. 업계에선 술의 신 디오니소스도 포기할 만한 ‘초 예민 술’이라 부른다. 양조장 견학을 통해 막걸리 제조 과정을 둘러봤다.
공장 내부에선 한창 쌀들이 발효 중이다. 숨죽이고 들어보니 톡톡 소리가 들린다. 술의 원래 이름은 ‘수불’이었다고 한다. 물이지만 불처럼 끓는다는 의미다. 보글보글 공기가 올라오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장은 스마트 설계를 통해 공간별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한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확인하며 수고를 덜었다는 것이다.
장연수 대표는 “특정 미생물이 숙취를 유발한다고 추측한다. 공정 과정에서 청결을 중시하니 막걸리의 숙취가 확연히 줄어들고 맛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양조장은 나쁜 미생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벽면은 전부 스테인리스강, 바닥은 항균 살균 바닥재인 크리트로 시공했다. 막걸리 제조 과정에서 미생물들이 가장 많이 기생하는 곳은 배관 밸브다. 밸브를 전부 분리형으로 주문 제작해 물리적으로 청소가 가능하도록 시설에 변화를 줬다. 완벽에 가까운 위생에 다도참주가는 2017년과 2023년에 식약청 표창장을 받았다.
막걸리가 이렇게 맑아도 되나요? 탁주인데 탁하지 않다
체험이 끝난 뒤엔 막걸리 시음 시간을 가졌다. 다도참주가에선 △라봉 △딸링 △참주가생막걸리 △참주가솔막걸리 등의 제품을 맛볼 수 있다.
다도참주가의 막걸리는 ‘맑은 탁주’의 맛이 난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조합이지만 그 맛을 구현했다. 불필요한 미생물을 제거해 맛에 변화를 준 것이 그 이유다. 목 넘김이 깔끔해 술을 잘 못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막걸리는 부산물이 있어 흔들어 먹어야 한다. 과일주인 라봉과 딸링을 흔들면 마치 카멜레온처럼 예쁜 과일색으로 변한다. 상큼한 과일 향과 막걸리의 탄산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다. 생막걸리 안에는 효모가 있어 흔들 때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세게 흔들면 콜라가 뿜어지는 듯한 참사가 생기니 부산물이 섞일 정도만 앞뒤로 흔들어줘야 한다.
막걸리는 양조장에서 자체 제작한 잔에 담아준다. 다도참주가에선 각 막걸리와 어울리는 두 개의 잔을 제작했다. 장연수 대표는 “막걸리도 예쁜 잔에 담아서 마실 수 있다. 와인을 마실 때처럼 눈으로 먹고 입으로도 먹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막걸리가 파전이랑만 어울린다는 편견은 버리자. 떡볶이나 마라탕 같은 매운 음식과 조합도 좋다. 다도참주가에선 치맥 대신 ‘치막’의 신박한 조합을 추천한다. 막걸리의 탄산이 기름을 잘 잡아준다는 이유다.
장연수 대표는 다도참주가 대표와 함께 전남 전통주 협회 협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전남의 다른 전통주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시음에선 △진도홍주 △숙희59 △추성주 △수도원 맥주와 같은 전남 전통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전남의 중심, 나주의 풍경을 담아보자
다도참주가는 나주호를 끼고 있어 방문길부터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한다. 견학을 마친 뒤 나주호를 따라 나주의 관광지 두 곳을 방문했다.
나주 ‘불회사’는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동진 태화 원년(366년)에 창건한 절이다. 덕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봄과 가을엔 단풍과 벚꽃에 둘러싸여 장관을 보여준다. 특히 절 뒤편에는 덕룡산에서 자생한 차나무들이 심겨 있다. 불회사는 산속에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덕룡산은 현재 불회사 방문객을 위한 데크길을 설치 및 템플스테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나주 배’는 나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나주 배에 진심인 ‘3917 마중카페’에 들렀다. 마중 카페는 나주 향교 옆에 위치한 한옥 카페다. 카페의 메뉴엔 나주 배로 만든 ‘배시시 음료 시리즈’가 눈에 띈다. 나주 배 드링크부터 파르페까지 음료 종류만 5개가 넘는다. 마중은 카페뿐만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 체험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카페 한편에는 나주 다도참주가의 막걸리와 함께 나주의 특산품을 전시했다. 나주 관광사업이 얼마나 끈끈하게 서로를 응원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주변엔 나주의 또 다른 명물인 나주 곰탕거리도 있다.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 기준 중 하나는 ‘근처의 풍부한 관광자원’이다. 지역 전통주를 직접 만들고 시음해 보면서 지방의 아름다운 장소도 들려보길 바란다.
나주 / 문서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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