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이동시간이 짧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내에서 오랜 시간 불편하게 앉아 있지 않아도 되고, 시차에 시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행 기자 또는 회사 CEO는 금방 해외 출장도 다녀올 수 있다.
마하의 속도로 하늘을 가르는 여객기. 비행기 개발 이후 인류가 끊임없이 도전해 온 과제다. 과연 아침은 서울 집에서, 점심은 LA 해변에서, 저녁은 파리 에펠탑을 보며 먹는 여행이 가능할까.
뉴욕타임스는 초음속 여객기의 등장, 시련, 그리고 미래를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 소닉 붐, 초음속 여행의 신호탄
“인류가 최초로 소리보다 빨라지는 순간입니다.”
벨 X-1 비행 중계방송 중
1947년 10월 14일 고요한 모하비 사막.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뒤이어 ‘펑’하고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인류가 최초로 소리보다 빨라지는 순간이다.
굉음의 정체는 소닉 붐. 비행기가 빨라질수록 주위 기압에 변화를 주는데, 음속(마하 1)에 다다르는 순간 폭음을 낸다. 마치 폭탄 터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소닉 붐(Sonic Boom)이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었다.
미 공군 시험조종사 척 예거(Chuck Yeager). 인류 최초로 ‘소리의 벽’을 넘은 주인공이다. 벨 항공의 X-1 기종을 타고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렀다. 마하 1을 넘어서기 위해 로켓 엔진을 장착했다. 시속 1130km로 하늘을 비행한 그는 초음속 여행의 신호탄을 쏘았다.
척 예거 이후 인류에게 소리의 벽은 낮아졌다. 군용 제트기들이 잇따라 음속을 넘어섰고, 1961년에는 ‘더글러스 DC-8 (Douglas DC-8)’ 기종이 시험 비행 도중 마하 1.012의 속도를 기록해 여객기 최초로 음속을 넘어섰다.
1969년 6월 소련이 세계 최초 상업용 초음속 여객기 투폴레프 Tu-144를 개발한다. 같은 해 10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대망의 콩코드 여객기도 세상에 나왔다.
2. 가장 빠른 여객기, 또는 가장 빨리 단종 된 여객기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
Arrive before you leave
영국 항공이 내건 콩코드 여객기 슬로건이다. 콩코드 여객기의 최대 속도는 약 마하 2(시속 2180km), 음속보다 두 배나 빨랐다. 시속 1670km인 지구 자전 속도도 추월했으니, 콩코드를 타면 서쪽에서 해가 뜨는 색다른 현상을 볼 수 있었던 셈이다.
1970년대 콩코드 여객기는 뉴욕에서 런던까지 불과 3시간 반 만에 비행했다. 2021년 현재 뉴욕에서 런던까지 무려 7시간이나 걸린다. 46년 전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보다 두 배나 빨리 여행했다.
하지만 두 배로 빠른 만큼 불편함도 두 배로 커졌다. 공기저항을 덜 받기 위해 기체 디자인이 매우 얇고 낮아졌는데, 비행시간 내내 비좁은 좌석에서 소음을 견뎌야 했다. 처음에 탑승객들은 “소음도 진귀한 경험”이라며 좋아했지만, 두세 번 이상 타는 여행객은 드물었다.
더 큰 문제는 지상 사람들이다. 비행기 탑승객들이 소음을 견뎌야 했다면, 비행기 밖 사람들은 천둥 같은 소리에 시달렸다. 소닉붐 때문에 주택 창문이 깨지고, 선반이 흔들리고, 심지어 낡은 벽에도 금이 갔다. 결국 1973년 연방항공국은 땅 위 하늘에서 민간 초음속 여객기 이동을 금지한다.
바다 위 항로만 허락된 콩코드 여객기는 경영 지속을 위해 여객기 티켓 가격을 올렸다. 티켓 하나가 6천 달러에서 7천 달러(한화 700만 원에서 825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자, 이용객이 감소한다. 이용객이 줄자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공사는 다시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000년 7월 25일 콩코드 여객기 운항의 종지부를 찍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콩코드 여객기 에어프랑스 4590편이 이륙 도중 추락한다. 엔진에 화재가 발생한 이 사고로 탑승객 1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익성뿐만 아니라 탑승객의 신뢰마저 잃은 콩코드 여객기는 결국 2003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3. 기계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 공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2000년 사고는 트리거였을 뿐,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몰락의 근본 원인은 ‘소음’이다. 탑승객들이 비행 내내 불편했던 이유도, 땅 위 하늘에서 비행이 금지된 이유도 모두 소닉 붐이라는 굉음 때문이다.
흔히 소닉붐을 음속을 넘을 때 한번 발생하는 굉음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소닉붐은 초음속 비행 내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알렉산드라 로브 NASA 음향학자는 “항적, 즉 배가 지나간 자리와 같이 파동은 끝없이 생긴다. 소닉붐도 소리 장벽(Sound Barrier) 통과 때 한번 발생하는 게 아니라 운행 중 끊임없이 생긴다”라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소닉붐은 비행체 주위 기압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 투명한 공기는 사실 조그만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입자들을 옆으로 밀어낸다. 마치 배가 나아가며 물살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이때 공기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주위 기압에 변화를 준다.
비행체가 음속에 가까워질수록 비행체 앞부분은 기압이 높아지고 뒷부분은 기압이 낮아지며 파동을 만들어낸다. 음속을 넘어서면 파동 간 상호작용으로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을 만든다. 물론 매우 간략한 설명일 뿐 실제 원리는 더욱 복잡하다.
빨리 비행하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아니라 인근 공기를 컨트롤할 줄 알아야 했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엔진이 아니라 정교한 기체 디자인이 필요하다.
4. ‘소닉 붐’이 ‘소닉 뿡’으로
소닉붐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체 표면에 변화를 주어 소음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NASA와 록히드 마틴이 최근 ‘X-59 QueSST’를 공개했다. 얼핏 복잡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조용한 초음속 기술(Quiet Supersonic Technology)의 약자다.
외부 기체는 바늘 모양의 앞부리를 가졌는데, 본체 길이 약 30m 중 앞부리가 10m를 차지한다. 운행 중 생기는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지상에서 들리는 소음은 75데시벨까지 줄였는데,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차 문 닫는 소리를 6m 떨어진 거리에서 듣는 것보다 소음이 작다고 한다. ‘펑’하고 고막을 찢던 소음이 ‘뿡’하는 옆 사람 방귀 소리만큼 작아진 것이다.
미국 IT 매체 씨넷에 따르면 록히드 마틴은 2022년 X-59 시험비행에 나선다고 한다. NASA도 2023년에 운행 중 소닉 붐 소음이 줄어들었는지 검증할 예정이다.
NASA는 관련 기술을 록히드 마틴뿐만 아니라 관련 항공업체와 공유하고 있다.
5. 상업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초음속 여행’의 관건은 시장성이다. 연료비, 이용객 수, 티켓 가격, 항공 규제정책 등 수지 타산이 맞아야 초음속 여객기 운항을 지속할 수 있다. 미국이 세금으로 운영하는 NASA가 아니라 비용-편익 계산에 민감한 민간 항공사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다행히 초음속 여객기 회사가 속속 등장하여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 위치한 붐 슈퍼소닉(Boom Supersonic)이 대표 주자다. 붐 슈퍼소닉 대표 블레이크 숄 씨는 단 100달러(약 12만 원)으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4시간 안에 승객들을 태우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항공기 제작회사 걸프스트림(Gulfstream)도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한창이고, 스타트업 회사 스파이크 에어로스페이스(Spike Aerospace)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직 초음속 여객기의 상용화에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미국 엠브리-리들 항공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비잔 바시그(Bijan Vasigh) 교수는 “런던에 초음속으로 여행 가고 싶은 사람들이 매일 50명이나 될까? 설령 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지불할 의사가 있을까?”라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새로운 초음속 여행 시대를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담 필라스키(Adam Pilarski) 항공산업 컨설턴트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로 예를 들었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우주로 나아간다고 했을 때 과연 누가 믿었는가? 모두 그를 사기꾼 취급했다”라며 “요즘 같은 시대, ‘사람들이 얼마만큼 지불할 의사가 있을까?’라는 회계사 같은 질문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라고 지적했다.
[이동흠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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