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10년차 직장인도 잘 몰랐던 숨은 명소

어느덧 회사생활이 10년이 되어 갑니다. 집-(술집)-회사-집-(술집)-회사만 반복하다 보니 회사 근처는 등잔 밑처럼 희미합니다. 집과 회사 사이에 있던 ‘술집’도 코시국이라 거의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 멀리 떠나기 부담스러워서 회사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바로 을지로입니다.

우선 간략히 을지로를 설명하겠습니다. 을지로(乙支路, Eulji-ro)라는 이름은 1946년 해방 이후 일본식 동명을 정리하는 사업에서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성씨인 을지(乙支)를 따왔습니다. 또한,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97-3에서 시작하여 중구 신당동 224-2에 이르는 도로이자 법정동 이름입니다. 왕복 6차로 도로이며 총 길이는 3km에 달합니다. 이 도로 전체 구간에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을지로역, 을지로3가역, 을지로5가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무려 4개 역을 통합니다. 접근성이 좋아서 오랜 점포와 힙한 가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부터 시작한 거 같네요. 주머니 가볍게 을지로 인근을 유람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봤습니다. 마침 서울관광재단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해 봤습니다.


예술통

충무로역 4번 출구를 나서면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 지도가 있지만, 실상 가보면 관리가 부실한 곳이 많다. 이 곳은 건너 뛰시길.

해설사 선생님과 충무로역 4번 출구 앞에서 만나서 충무로 예술통이라는 거리의 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 모두 7곳인데, 5곳은 충무로 뒷골목에 있고, 2곳은 남산골 한옥마을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곳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백남준의 뒤를 잇는 미디어 예술가로 평가받는 이이남 작가의 작품도 있습니다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거나 전시 준비 중이라는 안내판만 보고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치 못하시더군요. 하루 이틀 일이 아닌가 봅니다. 설혹 표지판에 현혹되어 허튼 발길 하실까 걱정되어 알려드립니다.

홍과홍 한지 1996 / 홍과홍 갤러리

서울 중구 수표로 1 2층

홍과홍에서 예로 보여준 한지에 인화된 사진 작품.

을지로 옆 동네 충무로에는 인쇄 골목이 있습니다. 요즘 선거철이라 선거 공보물이 집으로 속속 배달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포함해 각종 전단, 대학 학보나 기업 사보, 그리고 연말연시에 주고받는 달력을 만드는 한국 인쇄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특이하게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는 가게가 있습니다. 2만 5천 원에서 8만 원 사이 가격으로 한지에 사진을 인화할 수 있습니다. 장점은 만져도 손상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건희 화가를 비롯해 많은 예술인이 찾는다고 합니다. 웨딩 사진을 인화하는 신혼부부도 많답니다. 가게 이름이 홍과홍인 이유는 홍씨 부녀가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홍과홍1996은 홍과홍갤러리이기도 하다. 마침 미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갤러리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제가 찾아간 날은 마침 미대 학생들이 대관 전시를 하고 있어서 예상치 못하게 재밌는 예술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 3일뿐인 전시라서 지금은 감상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나마 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도카메라

서울 중구 삼일대로4길 16

반도카메라 외관.

충무로에는 숭례문 주변과 더불어 카메라 가게도 많습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관객 대부분을 맡고 있으나, 옛날에는 영화의 중심이 충무로였습니다. 해설사님은 그 영향으로 카메라 가게도 많았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넷 구매도 성행하고, 스마트폰 화질도 좋아져 굳이 카메라를 가게에 와서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가게 숫자가 줄었다고 합니다. 근방에서 가장 큰 3층짜리 카메라 가게 2층은 전시관 겸 쉼터입니다.

2층에서 사진책을 볼 수 있다.

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구매는 불가능했으나, 직접 물건을 보고 사진첩까지 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3층은 전시장이다.

서울 중부경찰서 역사박물관

서울 중구 수표로 27

경찰서 안에 박물관이 있다!

경찰서는 수습기자 때 잠시 기자실에서 잠시 주거한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방문해봅니다. 정문을 통과해 1층에 들어서 왼쪽으로 틀자마자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서울 중부경찰서 내부에 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때는 2015년 경찰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열었다고 합니다. 전현직 경찰관 등이 기증한 41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중부경찰서 역사박물관 내 전시물.

대부분 고위직 표창장이나 정복 같은 물품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에서 봤던 경찰 곤봉의 변천사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경찰 관련 미담 기사도 눈에 띄었습니다.

전태일기념관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05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 외벽에 적힌 글씨는 전태일의 친필 모양이라고 한다.

1970년대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육신에 불을 붙여 스스로 젊은 나이에 불꽃 같은 삶을 마쳤습니다. 그가 남긴 7권의 일기는 조영래 변호사에 의해 <전태일 평전>으로 탄생하여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전태일은 본인도 봉제 공장을 다니며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더 힘든 여공을 위했습니다. 죽음으로 불의에 맞섰습니다. 각자도생인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자니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네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리고자 그가 산화한 자리에 전태일기념관이 들어섰습니다.

전태일기념관 3층에는 1960~1970년대 봉제공장을 재현한 풍경을 비롯해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를 재현해 놓고, 그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

3층 전시실에 가면 본인 잘못이 아닌데도, 열심히 살아가는 데도 늘 약자이고 피해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산화한 전태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세운전자박물관 청계천 메이커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상가 지하1층에는 유적전시실이 있다.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건물이 누적되어 쌓여있다고 한다.

세운상가는 서울 을지로 3가에서 퇴계로 3가까지 주상복합건물 8채가 줄줄이 늘어선 구역입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현재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처럼 핫플레이스였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보존과 재개발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 건물을 헐자 지하에 유적이 나왔습니다.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해 놓은 상태입니다.

세운전자박물관 상설전시관인 청계천 메이커는 작지만 알차다.

3층에 아담한 전자박물관이 있습니다. 1세대, 2세대, 3세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최첨단 기술이었을 라디오 교본 같은 책자나 엄청 커다란 라디오 기계, 작동은 할지 의문이 드는 삼보 컴퓨터, 요즘 친구들은 알까 싶은 플로피 디스켓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3세대 구역입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아기자기한 물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젊은 ‘힙지로’ 기운이 매우 느껴집니다.

크리에이터 타운 을지로

서울 중구 창경궁로 20

크리에이터 타운 을지로.

해설사 선생님과 작별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을지로의 낮과 밤을 온전히 체감하려고요. 호텔이었던 건물을 공유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타운 을지로’입니다. 전망 좋은 18층 라운지에서 일하고, 월세를 내고 거주하는 이들은 을지로 인근 직장인, 대학생, 프리랜서가 다수입니다.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도 많다고 하네요. 정말이지 앉아만 있어도 창의력이 샘솟을 것만 같은 공간입니다.

18층 라운지와 5층에 있는 운동공간인 미러룸. 18층은 언제든 열려 있고, 미러룸은 예약하면 이용할 수 있다.

로컬스티치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지만, 을지로지점에서 처음으로 공유숙박인 에어비앤비를 통해 투숙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투숙객에게도 거주자와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가 제공되며, 예약해 공유공간인 음악감상실, 운동공간, 회의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살아보기 전에 묵어볼 기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17층 숙소는 발코니가 있어서 잠시 밖에 나가서 을지로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창밖으로도 서울 중심가 풍경이 펼쳐졌다.

사실 회사 근처는 휴일에 지나가는 일도 극구 피하는 편인데, 찬찬히 관찰해보니 그동안 모르고 지나친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시 구절이 떠오른 여정이었습니다.

[권오균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