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투어 Ⅱ] 제주 토박이들이 지킨 산지천의 보물들

제주 원도심을 구경하는 건 골목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 구석구석 이야기가 넘치는 공간이 한 가득이다. 제주목관아 주변 한짓골과 칠성로에서는 80년대 지어진 산부인과 건물을 리모델링한 ‘고요산책’, 100년 역사를 지닌 적산가옥에 들어선 카페 ‘순아커피’,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칭찬받는 북초등학교 ‘김영수도서관’, 구도심 최초의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카페 ‘리듬’ 등을 살펴봤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칠성로를 거쳐 산지천으로 이동한다. 제주항과 만나는 산지천은 옛 제주의 관문이었고 물류의 중심이었다.

* 제주 원도심

칠성로·중앙로·남문로 주변, 옛날 성이 있던 동네다. 지금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삼도 2동, 이도1동, 건입동 일부가 포함된다. 90년대까지 제주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최근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목욕탕과 여관 등에 갤러리·카페 같은 상업 공간과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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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원도심 투어 Ⅰ

: 한짓골&칠성로 핫플레이스 보러가기

일도 1동: 산지천

⑤ 오각집

관덕로 15길 11-1

2021년 8월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성산에 있는 플레이스캠프 총지배인이 대표로 있다.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칠성로 문화시장의 거점으로 활용된다. 여행 관련 굿즈, 맥주나 와인 등 주류를 판매한다. 주전부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외부 음식 반입을 적극 환영한다. 요깃거리가 필요하다면 근처 식당이나 동문시장에서 직접 사 들고 와야 한다. 주말에는 플리마켓이나 재즈공연이 진행돼 즐길거리를 더한다. 지난해 진행됐던 러닝 모임 ‘런택트제주’ 거점으로도 활용됐다.


일도 1동: 산지천

⑥ 제주사랑방

관덕로 17길 27-1

칠성로 4가와 산지천이 만나는 부근 제주사랑방은 1949년 지어진 옛집 ‘고씨주택’을 업사이클링했다. 제주도는 산지천 일대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고씨주택을 허물 계획이었지만 고씨주택의 가치를 알아본 주민들이 주택을 보존하자고 도에 요구했다. 제주문화재위원회 역시 고씨주택이 일본식 건축기법과 제주 전통 가옥 형태가 혼용된 ‘과도기적 건축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내면서 힘을 더했다.

고씨주택은 제주 전통 가옥의 전형적인 형태인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구성돼 있다. 제주도는 2014년 고씨주택을 매입해 안거리는 ‘제주사랑방’으로 밖거리는 ‘제주책방’으로 꾸몄다. 제주책방은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공간이다. 현재는 장소 정비 중으로 개방을 하고 있지 않다. 방문 전 전화(064-727-0636)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일도 1동: 산지천

⑦ 산지천갤러리

중앙로3길 36

제주사랑방 바로 옆 산지천갤러리 역시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면서 재탄생한 곳이다. 본래 산지천 일대에는 목욕탕과 여관이 많았다. 항구가 가까워 주로 뱃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고씨주택을 보존하면서 녹수장과 금성장 두 곳도 업사이클링하기로 결정했다. 여관 건물 두 개를 잇는 공사를 마치고 2017년 정식 오픈했다. 산지천갤러리는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운영 중이다. 제주 출신 민속 기록 작가 김수남 선생님에게 기증받은 물건과 사진을 상설 전시한다. 갤러리 1층 영상 자료는 놓치지 말 것. 60년대 칠성통 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인터뷰 영상과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를 볼 수 있다.


일도 1동: 산지천

⑧ 갤러리 레미콘

산지로 31

갤러리 레미콘이 있는 곳은 옛 명승호텔 자리다. 명승호텔은 1962년 3월 오픈한 제주 최초 현대식 호텔이다. 1층은 대한민국 공보관 제주 분관, 2~3층은 객실 4층은 연회장으로 사용됐다. 4층엔 산지천과 멀리 제주항까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공간도 있다. 90년대 폐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텔은 30여 년 방치 됐다고 한다. 고성호 제주레미콘 대표가 2년 전 건물을 사들여 갤러리로 꾸몄다. 고 대표는 제주 토박이다. 66년 명승호텔 근처에서 태어나 20여 년 산지천 일대에서 살았다. 그는 스스로를 ‘원도심 키드’라고 소개한다. 고 대표에게 명승호텔은 어릴 때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1층 공보관 제주 분관이랑 호텔은 완전 분리된 공간이었어요. 호텔 입구는 2층에 있었습니다. 입구로 연결된 계단이 호텔 뒤 언덕까지 이어졌는데 매일 그 길을 걸어 유치원을 다녔어요. 언덕길에 유치원이랑 교회가 있었거든요.”

고 대표가 다녔다는 교회 부속 유치원은 철거됐고 그 자리엔 기상청이 들어왔다.

고 대표 기억 속 명승호텔은 별천지였다. 초가집과 적산가옥 사이 우뚝 솟은 신식 건물은 매일 봐도 신기했다. 당시 산지천은 제주 최고의 번화가이자 중심지였다. 94년까지만 하더라도 산지천 주변으로 상가들이 줄지어 있었다. 산지천은 대대로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제주 관문이었다. 모든 생필품이 제주항을 통해 들어왔다. 비행기가 뜨기 전 수백년 동안 사람들도 이곳으로 나고 들었다.

60년대 제주 유지들은 명승호텔에 모여 최신식 파티를 즐겼다. 미군들이 밴드를 불러 파티를 열었다. 당시 제주도를 찾는 유명 연예인, 장·차관 등 정치인들도 전부 명승호텔에서 묵었다. 고 대표는 신성일 엄앵란을 기억해냈다. 명승호텔이 내리막길을 걸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제주 관광 활성화가 시작된 70년대 부터였다. 파라다이스 관광호텔, 칼 호텔 등 대형 호텔들이 생겨나면서 명승호텔은 뒤로 밀렸다. 명승호텔 전성기는 60년대였다.

신제주 생겨나고 상권이 옮겨가면서 산지천 주변은 몰락했다. 명승호텔이 폐업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90년대 호텔이 문을 닫고 이곳은 노숙자들의 차지가 됐다. 고 대표는 건물을 매입했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1층 벽엔 그래피티가, 건물 곳곳에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어요. 심지어 여기저기 분변도 있었어요.” 고 대표는 산지천 일대가 우범지역으로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건물 매입 당시에는 문화공간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루프톱 카페도 생각했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산지천 풍경을 알리고 싶었거든요.

리모델링을 위해 안전진단을 진행했다. 워낙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라 지금의 건축법, 소방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많았다. 손 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철거 업체와 계약을 했다. 철거 3일 전, 구도심 관계자들과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등에게 연락이 왔다. 구도심 살리는 데 관심이 많은 건축가들이 찾아와 건물의 가치를 설명했다. 설득을 당한 고 대표는 건물을 부수지 않고 원형을 살려 리모델링 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옛 명승호텔은 3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원형복원’을 원칙으로 설계를 끝냈다. 새 단장을 마치고 올 연말 복합문화공간으로 오픈할 계획이다. 1, 2층은 제주 작가랑 협업하는 문화공간이자 갤러리 공간으로 바뀐다. 고 대표는 미술애호가다. 특히 제주 출신 작가들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고 대표는 이미 이곳에서 한 차례 전시를 진행했다. 작년 12월 22일부터 2022년 1월 5일까지 ‘시간과 공간의 기억, 산지로 31’ 전시를 진행했는데 전시 기간을 1주일 연장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고 대표는 “산지천에 이런 건물이 있었다는 걸 도민에게 알리고 싶었다. 의미 부여를 위해 제주 작가들과 미술협회랑 같이 전시를 진행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