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섹시해지는 ‘파주 ART 트립’ 1탄

서울에서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 드라이브 코스, 왠지 매섭고 거친 칼바람 그리고 자유로까지. ‘파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책도 그렇다. 책을 떠올릴 때 빠뜨릴 수 없는 지역이 바로 파주다. ‘파주출판도시’는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출판 공동체를 꿈꾸던 출판인들이 모여 1989년부터 조성을 준비해 완성한 이 공간은 이제 ‘책’ 뿐 만 아니라 ‘아트’ 그 자체로 재도약하고 있다. 지난 19일, 영화, 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없을 당일치기 여행 코스 파주출판단지로 가봤다.

1. 스튜디오 KKI

배우 이광기가 2018년 설립한 파주의 스튜디오로 촬영과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이광기 대표는 스튜디오 사업 외에도 최근 유튜브 채널 ‘광끼채널’을 개설해 ‘비대면 미술품 경매쇼’를 진행하는 등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스튜디오 끼’를 통해 작가들에게 홍보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튜디오 kki

현재는 극사실주의 화가, 김강용 작가의 ‘벽돌미감, 극사실과의 조우’ 전시가 진행중이다. 김강용 작가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극사실적’ 벽돌을 그린다. 그는 우리나라 1세대 극사실 하이퍼 작가로, 벽돌 작품만 50년 가까이 그렸다. 오래 벽돌을 그린 탓에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했다. 김강용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벽돌은 작가가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모래가 물감과의 조우를 통해 작품으로 환원된 것이다.

김강용 작가의 작품들

김강용 작가는 스스로를 ‘그림자만 그리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그림자로 그림에 생명력만 불어넣는 거고, 나머지는 모래알이 하는 것이라 했다. 그림자만 그렸다기에는 작품이 주는 실재감이 엄청났다. 그의 작품 속 그림자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완전히 다른 그림자를 그려 넣었다. 극사실주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스스로에게 ‘추상화’에 더 가까웠다.

그의 작품은 ‘다시점’이다. 한 작품이지만 왼쪽, 가운데, 오른쪽에서 바라봤을 때 벽돌의 모양이 다르다는 점이 포인트다. 작품의 옆면도 인상 깊었다. 그의 벽돌은 수많은 모래알들이 모인 결과다. 그는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작품에 담으려 했다. 층층이 넓게 펴 바른 모래들이 겹쳐져 지층을 이룬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앞면에 대비되는 거친 옆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 날은 김강용 작가 본인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벽돌 전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스튜디오 끼. 화이트 톤의 넓은 전시공간과 적당한 조명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이광기 대표를 만나 간단하게 인터뷰를 나눠봤는데, 그 중 여행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했다.

Q. 이광기에게 파주는 어떤 곳인가.

이광기 대표 = DMZ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권한대행을 하면서 파주라는 공간이 북한과 상당히 근접한 접경지역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앞으로 남북 간 소통의 시간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믿고, 교류의 첫 시작은 결국 문화라고 생각한다. 파주 출판도시는 문화교류의 거점이 될 만한 곳이다. 요즘은 출판도시에 출판사 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영화사 등 여러 예술 사업체들이 들어오고 있다. 문화예술의 르네상스를 열기에 인프라가 아주 좋은 지역이라 생각한다.

Q2. 작년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책 발간을 하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석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함께 한 여행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여행지가 있다면?

이광기 대표 = 아들 석규와 떠났던 마지막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전라도를 거쳐 남해, 거제도로 넘어갔던 여행이다.

비슷한 코스로 다시 방문한 적도 있다.

Q3. 배우 겸 아트디렉터 이광기에게 여행이란?

이광기 대표 = 여행은 힐링이고, 기쁨이고, 추억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연기에 미술 사업에 바쁘지만 2월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아가서, 주변 여행지를 둘러보는 식으로 여행지와 미술 작품을 엮는 사업을 구상중이다.


이광기 대표는 스튜디오 끼가 에이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가와 전시 공간을 매칭해주고, 홍보를 담당하고 싶다고 했다. 엔터테인먼트와도 결합할 계획을 밝혔다. 이제는 베테랑 ‘아트 디렉터’로서 인생의 제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이광기 대표. 까다로운 그의 눈에 든 보석같은 전시들을 앞으로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굵직한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김강용 작가의 ‘벽돌’ 전시는 2022년 2월 20일까지 열린다.

2. 명필름 아트센터

배우 전도연 주연 ‘접속’, 비인기 종목인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대한민국에 첫사랑 신드롬을 일으킨 ‘건축학개론’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을 탄생시킨 영화사, ‘명필름’ 내에 위치한 아트센터는 영화와 전시 애호가라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지난 2015년에 파주에 사옥을 마련해 신진 영화인 육성을 위한 제작시스템인 ‘명필름랩’, 영화관, 북카페, 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한 공간 안에서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명필름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에 참여해 더욱 유명한 곳이다. 지상 4층, 지하 3층, 연면적 7900㎡(약 2400평) 이상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명필름 외부모습

3층에는 명필름 아카이브 전시를 하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마지막 입장은 오후 6시다. 1층 카페에서 이용권을 구매한 뒤에 들어갈 수 있다. 1996년 영화 ‘코르셋’을 시작으로 2019년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까지, 명필름의 영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3층 명필름 아카이브전, 1996년부터 2019년까지 명필름의 영화들이 한쪽 벽면에 가득 전시돼 있다.

명작과 함께 기억되는 포스터들이 있다. 개봉 당시 홍보용으로 쓰인 포스터는 수차례의 기획 회의와 촬영, 그래픽 디자인, 교정과 인쇄를 거쳐 선택된 행운아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마지막 순간 선택 받지 못한 아쉬운 B컷이 있다. 명필름 아카이브 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전시를 꼽자면 바로 이 B컷 전시다. 저마다의 이유로 A컷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A컷만큼 유명한 B컷들도 볼 수 있었다. 알고 있던 B컷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공개된 A컷에는 송강호, 이병헌 배우만 등장하지만 B컷에는 또다른 주연배우인 이영애가 함께 등장한다. 관점과 취향에 따라 B컷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낼 수도, A컷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낼 수도 있는 코너였다.

영화 ‘해피엔드’, ‘공동경비구역 JSA’ B컷. 포스터 옆에 A컷이 작게 언급돼 있어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명필름 아카이브 전에서만 볼 수 있는 코너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영화에 쓰인 소품 전시다. 영화 ‘건축학개론’ 납득이 (조정석 분)가 주야장천 입었던 초록색 점퍼, 국민 첫사랑 수지가 입었던 분홍색 자켓 등이 사진과 함께 옷걸이에 걸려있어 현장감을 더한다. 영화 ‘접속’에 등장했던 삐삐도 전시돼 있다. 최근 개봉작이 블록버스터 히어로 무비가 대부분이라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면 조금은 천천히 흘러가던 그 시절 그 영화들을 통해 그동안의 피로감을 씻어보면 어떨까. 마치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 의상

사진 왼쪽부터 영화’건축학개론’ 속 이제훈 배우 의상, 영화 ‘접속’에서 사용한 삐삐

대본을 책으로 출판해 전시하고 있다.

대본도 전시하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서연(한가인 분)이 “나 사는게 매운탕 같아”하고 울부짖는 씬이 인상 깊었는데, 대본으로 보니 또 색달랐다.

아카이브 전에 전시된 영화 대본집들

이밖에도 해외 수출용 포스터, 명필름이 제작했던 영화 리뷰 글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인만큼 영화 애호가라면 한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2탄에 계속

[맹소윤 여행+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