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투어Ⅰ]100년 적산가옥은 카페로, 30년 병원은 여행자 아지트로

제주 원도심 투어Ⅰ : 한짓골&칠성로

100년 넘은 적산가옥은 카페로

30년 된 병원은 여행자 아지트로

제주 원도심은 칠성로·중앙로·남문로 주변을 이야기한다.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삼도 2동, 이도1동, 건입동 등이 포함된다. 90년대까지 제주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최근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목욕탕과 여관 등에 갤러리·카페 같은 상업 공간과 문화시설이 자리를 잡았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생경한 풍경에 호기심을 느낀 젊은 층들이 원도심에 하나둘 자리하면서 잊힌 줄로만 알았던 동네 원도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차 없이, 두발로도 충분한 제주 원도심 여행에서 빼놓지 말아야할 스폿 8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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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2동: 한짓골과 칠성로

Point 01.

고요산책

중앙로 12길 5

책과 여행을 접목한 복합문화공간. 1층은 북카페 컨셉 라운지, 2층은 사무실, 3~4층은 숙박 시설, 지하 1층은 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작년 8월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지금 모습으로 꾸몄다. 본래 건물은 80년대 산부인과 건물로 지어졌다. 원도심 공동화가 심각해지면서 산부인과도 문을 닫게 되고 이후 채식 식당, 카페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사회적 기업 제주착한여행이 이곳을 운영 중이다. 공정여행을 표방하는 제주착한여행은 제주 원도심에 터를 잡고 제주의 문화·생태·역사를 담은 마을 콘텐츠를 발굴하고 공정여행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Point 02.

순아커피

관덕로 32-1

제주목관아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작은 적산가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00년 넘은 옛집을 개조해 문을 연 순아커피다. 상호명 ‘순아’는 지금 주인장의 큰어머니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순아 할머니는 한국전쟁과 4.3사건을 겪은 후 자식들과 함께 일본을 건너갔다. 일본에서 성공을 이루고 나서 고향 제주 땅에 집을 하나 사들였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순아커피다. 순아 할머니는 제주에 올 때마다 좋은 호텔 마다하고 이 작은 집에서 며칠씩 묵다 가셨다.

순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장님의 어머니께서 ‘숙림상회’라는 이름으로 잡화상을 운영했다. 무려 50년 동안 이어온 숙림상회가 6년 전 문을 닫게 되었고 1년 동안 공간을 방치하다가 카페로 바꿨다. 건물은 105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카페를 준비하면서 집을 수리했는데 그때 건축가가 ‘100년 전쯤 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단다. 건물 생김새 때문인지 코로나 이전엔 일본인 손님이 많았다. 다다미가 깔린 2층 방으로 올라가려면 가파른 나무계단을 타고 가야 한다. 100년 가옥이 품은 건 아름다운 사연뿐만 아니다. 공간 곳곳에 손때묻은 소중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1층 순아 할머니 사연이 적힌 종이 아래 궤짝은 지금 사장님 지인 할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구한 물건이다.

Point 03.

김영수도서관

중앙로8길 18

제주 최초의 학교에 자리한 제주 최고의 도서관. 2019년 5월 정식 개장한 김영수도서관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북초등학교 20회 졸업생 김영수씨가 어머니 구순 생일을 기념해 2층짜리 도서관을 지어 기부체납했다.

50년 만에 리모델링된 김영수도서관은 도시 재생 우수사례로 꼽혀 전국 지자체와 기관에 알려졌다. 도서관 하나로 학생 수가 줄던 학교가 되살아나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제주 북초등학교는 제주 최초의 학교다.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겼다. 1907년 제주관립보통학교로 시작했는데 1896년 제주목 공립소학교가 설치됐다는 기록이 발견되면서 학교 역사가 더 늘어나게 됐다. 한창 전교생이 많을 때는 2000명까지도 갔던 것이 지금은 200명이 안 된다. 학원가가 밀집한 신제주 쪽으로 아이들과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북초등학교 역시 다른 원도심 학교와 마찬가지로 위기를 맞았다.

학생 수는 점점 줄지만 학교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은 아직 있었다. 중앙지하상가, 동문시장 등 학교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학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학교밖에는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 안에 돌봄 공간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도서관 건물과 그 옆 숙직실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마을 도서관으로 꾸민 것이 지금의 김영수도서관이다. 김영수도서관은 학교 도서관이자 마을 도서관 기능을 같이한다. 오후 5시까지는 재학생들이 사용하고 돌봄교실도 운영된다. 학교가 끝나는 오후 5시부터 9시까지는 마을 도서관으로 운영된다.

도시재생, 교육청, 시에서 예산을 투입해 총 9억원을 들여 리모델링 했다. 김영수도서관 운영주체는 학부모들이다. 도서관 교육을 수료한 사람 12명이 모여 돌아가면서 관장직을 맡고 있다. 김영수도서관은 재작년 5개 부처에서 도시재생 최우수 사례로 상을 받았다. 김영수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실제로 학생 수도 늘었다. 1학년이 1개 반에서 2개 반으로 늘었다. 한해 입학생이 30명 정도였다가 도서관 리모델링 이후 38명이 됐다. 주변 학교들은 20명이 채 안 된다.

2018년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재학생과 교직원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학교 같지 않은 공간’ ‘나만의 공간’을 원했고 교직원은 ‘목관아 바로 건너편, 원도심의 의미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제주 느낌, 한옥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견을 반영해 한옥 한 채를 도서관 안으로 집어넣은 구조로 만들었다. 오래된 참나무 구해서 내부 한옥 구조 만들었다.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층고를 높이고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툇마루도 만들었다. 자투리 공간은 다락방 분위기의 공부방으로 꾸몄다. 2층 벽 대부분을 가리고 있던 책장을 치우고 벽을 터 창 크기를 키웠다. 2층 열람실에서 창문을 통해 목관아 뜰이 내려다보인다. 도서관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학교 앞 가로수는 온통 벚꽃이다.

한실은 전부 다섯 칸이 있다. 칸마다 제주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이 적혀있다. 방은 1평 정도 크기로 창호지를 바른 반투명 문으로 서로 연결된다. 창호지에는 북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얇은 한지가 구멍이 나거나 못쓰게 될 때쯤 다시 그림을 그려 보수를 한다. 창문을 열면 테라스로 연결된다. 여름엔 테라스에 돗자리를 깔고 빈백을 설치한다. 봄바람 살랑이는 날에 벚꽃비 맞으며 책 읽는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아쉽게도 현재 김영수도서관은 제주도민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교육청의 코로나 대응 방침에 따른 결정이다.

Point 04.

리듬

무근성7길 11

제주의 연남동이라 불리는 동네 삼도동 ‘무근성’. ‘묵은 성’이 있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 무근성에 위치한 카페 리듬은 구도심 최초의 목욕탕 ‘태평탕’을 개조해 지금 모습으로 꾸몄다. 10년 넘게 방치됐던 목욕탕 건물은 1층은 카페 2층은 전시 공간과 쇼룸으로 변신했다. 1층에는 여탕 2층에는 남탕이 있었다. 카페 리듬의 전신은 쌀다방이다. 2015년 오래된 쌀가게를 개조해 시작한 카페 쌀다방이 ‘효리네민박’에 출연하면서 방문객이 더 늘었다. 임대 계약이 만료돼 새로운 장소를 찾다가 지금의 태평탕 자리로 오게 된 거다. 베이지색 건물엔 파란 색 글씨로 적힌 ‘태평탕’ 상호와 목욕탕 표시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건물 옆에는 작은 마당도 있다. 쌀다방 시절 간판과 태평탕 간판이 사이좋게 놓여있다. 가게에는 개 두 마리가 있다. 큰 흰색 개 너구리와 작은 강아지 코코다.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