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자 지금 뭐 하는 거야?비행기에서 여자 비명소리 들은 썰


“꺄”

칼로 베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잠을 깼다. 안대를 내리고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본다. 한밤과 새벽, 그 어디쯤을 달리는  밤 비행기 안은 미묘한 들썩거림과 함께 약간의 웅성거림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륙한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비행기 안에서 비명소리라니 내가 잘못 들은 걸까?’ 꿈과 현실을 헤매며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있을 때, 검푸른 어둠을 가로지르며 두 번째 비명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비명소리가 들리자 승무원 두 명이 황급히 달려 나왔다. 비명 소리가 나는 곳에는 통로 쪽 좌석에 앉아있는 여자와 그 앞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그 남자를 밀어냈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남자의 몸은 자꾸만 앉아있는 여자 쪽을 향했다. 균형이 있는 듯 없는 듯 기우뚱하는 꼴이 마치 취한 사람 같았다. 나는 두 남녀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목을 길게 뺐는데 그와 동시에 서늘한 공기 사이로 옅은 토냄새가 났다.

새벽 2시 20분. 이스탄불에서 인천으로 가는 TK0090편의 승객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선반 내부는 짐이 가득했고 3칸씩 3분단으로 되어 있는 좌석에 빈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륙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승무원들의 발걸음 사이로 헤드폰을 끼고 잠을 청하는 사람, 앞 좌석에 붙은 작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약 400명의 승객들 모두가 제각각의 방법으로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하나같이 웃음기가 쫙 빠져 피곤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이륙을 위한 비행기의 요란한 발 구르기는 금세 성층권으로 도약했고, 낮게 깔리는 비행기 엔진 소리가 익숙해질 때쯤 파란 눈의 승무원이 터키 억양이 섞인 한국어를 말하며, 은박 용기에 담긴 라자냐(또는 치킨)와 동그랗고 딱딱한 빵을 승객들에게 나눠주었다. “음료는 뭐로 드릴까요?”라는 질문에는 와인 또는 맥주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들려왔다. 나 역시 적당한 취기를 빌려 잠들기 위해 “얼음 잔과 맥주”를 외쳤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람들은 가끔 “공짜”라는 단어에 이성을 잃는다. 필요하지 않아도 값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순간의 욕심에 “하나 더”를 외치곤 한다. 아마 그 남자도 기내 주류 서비스를 이용해 연거푸 술을 마셨을 거다. 아니면 이미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취해 있었을 수도… 국제선은 지상으로부터 1만 m 가량 올라간 높이에서 운행하고 이는 기압과 산소수치를 떨어트리는 반면, 체내 세포는 팽창시켜 유사 고산증 현상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평소보다 3배는 더 빨리 취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한다. 때문에 기내에서는 아무리 공짜 술이라 한들 자신의 평소 주량을 생각해서 마시면 절대 안 된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술에 취한 남자 승객은 10시간이 넘는 비행 속에서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통로를 따라 화장실로 가던 중이었을거다. 끝없이 흔들리는 비행기 속의 유연한 출렁거림은 남자의 위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자극했을 거고 기어코 목까지 올라와 “우웩”

곤히 자고 있던  47G 좌석의 여성은 피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오른쪽 어깨와 가슴으로 낯선 남자의 토를 받아냈다. 잉크가 물을 만나 화선지에 번지듯 역겨운 토 냄새가 무겁게 가라앉아 기내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급히 달려온 승무원들은 자다가 토 벼락을 맞은 여자 승객의 몸과 좌석, 팔걸이 그리고 바닥을 닦았고 탈취제로 예상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뿌려댔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술 취해 낯선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걸 토했던 남자 승객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자다가 토벼락을 맞은 여자 승객은 다른 비어있는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아무도 없는 47G 좌석에서 승무원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상황을 원상복구 시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상한 우유 냄새 같기도, 아기 설사 냄새 같기도 한 쾨쾨한 토의 흔적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주변 승객들의 코를 괴롭혔다. 나 역시 그 냄새에 토를 할 것 같았다. 지하철이었다면 다른 칸으로 피했을 거고, 버스였다면 내렸을 텐데, 약 4만 피트 상공 위 비행기 안에서는 어디 하나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여행하는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