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고 빵 파는 ‘반전 간이역’

    

낡은 테이블 빼곡한 광양 진상역, 살살 녹는 한우맛에 대합실 시끌


진상역

풋. 웃음부터 나왔습니다. 이름이 ‘진상’이라니요. 게다가 코레일이 숨넘어가도록 극찬한 ‘반전 간이역’입니다. 짜증이 올라옵니다.  ‘전율’느껴질 반전이 있는 여행지를 찾아 광양까지 왔는데 이름부터 꺼려지는 진상역이라니 말이지요. 어쩔 수 없지요. 속는 셈 치고 슬쩍, 역사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뿔사. 정말로 억 소리가 나왔습니다. 아, 반전입니다. 세상에.


■ 고깃집 반전 광양 진상역

진상역

그러니까 예전 대합실, 그 안이 고깃집이다. 마블링 촘촘히 박힌 한우가 연신 석판 위에서 익어가고 있다. 황홀한 반전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린, 시속 30㎞짜리 굼벵이‘경전선’ 노선의 간이역 진상. 이 역사가 한우 식당으로 변신한 건 5년 전이다.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구석 이용객이 점차 줄었고 2004년 무배치 간이역이 됐다가 급기야 2009년 한우 식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역사 안에 앉아 한우를 구워 먹는 ‘반전의 맛’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진상역 대합실

물론 대합실은 남아 있다. 사람 한두 명 겨우 지날 만한 통로, 두서넛 어깨 붙이고 앉을 만한 낡은 나무 의자가 전부다. 기차 시간표가 아니라면 대합실인지조차 모를 좁은 공간이다. 역 광장 앞엔 차량 10여 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목적은 한 가지. 입에 살살 녹는다는 진상역 한우를 맛보기 위해서다.

진상역 정육 판매점

기자 역시 가만있을 수 없다. 한달음에 달려간 곳은 역사 옆 정육 판매점. 심장이 뛴다. 머릿속에 이성이 반응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린다. “아저씨, 반근요.” 맞다. 진상역 고기 구워 먹는 방식, 독특하다. 일단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다. 굽는 곳은 역사 안. 사들고 간 고기를 1인당 차림상 비용(1인당 3000원)만 내고 구워 먹는 식이다. 고기도 끝내준다. 살 통통 오른 광양 일대 한우 암소만 쓴다. 정육점 안에는 소 잡는 날, 도축 일자가 꼼꼼히 적혀 있다. 그리고 믿음이 가는 문구 하나. ‘한우 암소가 아닐 경우 100% 보상해 드립니다’.

지글지글. 어느새 노릇노릇 고기가 익었다. 어디 한 입. 군침 가득한 입에 고기 한 점을 집어넣으려는 찰나, 기적이 울린다. 뭐지? 아, 잊을 뻔했다. 이곳 고깃집이 아니라 역이다, 진상역.


▶진상역 즐기는 Tip 〓전남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 경전선의 노선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기차는 하루에 왕복 5회 운행한다.



■ 기막힌 카페 반전 용궁역

용궁역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리틀위치’>

요즘 간이역의 반전 트렌드는 카페다. 그러고 보니 절묘하다. 낭만의 대명사인 기차역. 거기에 추억 샘솟는 커피향이라니. 경북선 용궁역. 입이 쩍 벌어졌다. 용궁역을 바라보고 왼쪽을 통으로 차지하고 있는 문구 ‘자라(JARA)’. 오른쪽은 통째 ‘토끼간빵’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역사 앞 여의주를 들고 선 용왕님의 동상. 아, 그제야 감이 온다. 토끼와 자라. 용궁이라는 역사 이름. 별주부전이 모티브인 거다.

용궁역 토끼간빵 <사진출처=인스타그램>

내부는 모던하다. 원목으로 감싸 따뜻한 느낌. 가장 궁금한 건 대문짝만 하게 써 있는 토끼간빵. 진짜 토끼간으로? 예상했겠지만 아니다. 순 우리밀, 순 우리팥으로 만든 빵이다. 용왕의 간절했던 심정으로 한 입.

용궁역이 더 마음에 드는 건 주변 산책로 때문이다. 정갈하게 그려진 벽화. 역시나 물속 용궁나라가 테마인데, 아, 한쪽 그림 자라를 타고 있는 토끼다. 그 옆으로 쓰여진 가슴 설레는 문구. ‘빵집 가는 길’이다. 토끼의 손짓을 따라가면 역시나 용궁역이 나온다. ‘토끼간빵’ 말고 이곳까지 와서 꼭 맛봐야 할 먹거리가 용궁 순대다. 미식가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기본 20여 분씩은 기다려야 한다. 부추, 파, 찹쌀, 한약재 등 열 가지 재료에 막창을 넣어 직접 손으로 만들었으니 그 맛이야.

용궁역 벽화 <네이버 블로그 ‘엘레나언니네’>

용궁역 벽화 <네이버 블로그 ‘엘레나언니네’>


인근에 볼거리도 놓치지 말자.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세금 내는 나무 ‘황목근’. 황목근은 현재 1만2232㎡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황목근의 논에는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데 해마다 그 수익금으로 금원리 마실 학생들에게 30만원씩 장학금이 나온다고 한다.


공전역 공예카페 <사진출처= 코레일 네이버 블로그>

카페 역사로 또 유명한 곳이 충북 제천 봉양읍의 공전역이다.

4년여간 방치돼 오다가 2012년 한 목공예가를 만나 우드트레인(Wood train)이라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 우드트레인은 과거 기차역을 최대한 살려 대합실 자리는 카페와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공전역 즐기는 Tip 〓공전역 우드트레인까지 가면 꼭 해봐야 할 체험 프로그램이 자양영당(紫陽影堂) 투어. 이곳에서 봉양읍소재지 방향으로 2㎞를 가면 조선 후기 성재 유중교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고, 유인석 장군이 8도에 통문을 돌려 600여 유림으로 의병을 일으킨 자양영당이 있다.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도 이곳 공전역과 삼탄역 사이에 있으니 꼭 한번 가보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