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여행단]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당일치기 전국일주

[비밀여행단]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당일치기 전국일주

죽기 전에 꼭 한 번 타보고 싶었어요.

여행업계에 ‘죽기 전에~’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나라 내지는 도시, 산이나 바다 등을 나열하며 잠재적 여행객의 방랑욕을 일깨웠다. 내게 저 말을 건넨 이도 분명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했지만 헌데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앞으로 비행기 타는 것도 어려울 듯 하고. 내 나이 80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쩌면 이번이 죽기 전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했어요.

그랬다. 코로나19는 여행을 꿈꾸는 이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을 전하고 있다. 여전히 국내 확진자가 세 자릿수를 보이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은 숫자를 확인하기 무서울 정도로 확산세가 거세다. ‘죽기 전에’란 표현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란 얘기다.

그 분의 말은 또 이어졌다. “더구나 ‘하늘 위 호텔’인가 하는 비행기라고 하기에 더 끌리더라고요. 내가 언제 타보겠어요. 그런 비행기를.(호호호)”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에서 언뜻 소풍을 앞둔 소녀의 달뜬 표정이 엿보였다. 여행의 참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느낌에 함께 미소지었다.


‘A380 한반도 일주비행’. 침체기에 빠진 여행업계에 잠시 숨통을 틔게 하는, 마치 아이디어 상품 같은 존재로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관광여행’ 또는 여행하는 척한다며 ‘척여행’, 하늘만 빙빙 돌다 온다고 ‘빙글여행’ 등 부르는 것도 가지각색이다. 주최사에서는 목적지 없는 비행(Flight to nowhere)이나 스카이라인 투어(Skyline tour)로 명명했다.

한 마디로 이 여행은 이륙과 착륙하는 곳이 같다. 되돌아온다는 얘기다. 결국 하늘에 떠있는 동안만이 여행의 전부다. 그런데 이 여행상품은 고작 20분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심지어 ‘비즈니스석+숙박 상품’은 다 팔리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이나 나훈아 콘서트도 아닌데 부지불식간에 티켓이 팔려나간 것이다. 도대체 그 마력에 가까운 매력이 무엇일까.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도전했다.

지난 달 24일. 8개월 만에 찾은 인천국제공항. 북적거려야 할 공항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사실 출발 전부터 이상조짐을 감지했다. 공항버스가 대폭 운행을 줄인 탓에 아침 발 비행기의 시간을 맞추려면 다른 교통편을 찾아야 했다.

정류장까지 헛걸음질을 친 탓에 서둘러 자차를 선택해 인천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면서 조금 더 놀랐다. 좀처럼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덕에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내렸다. 공항 내 상황은 더 했다. 입출국장을 오가는 사람이 몇 명인지 셀 수 있을 만큼 한적했다. 코로나가 가져 온 현실을 실제로 접하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나마 이번 비행을 위해 문을 연 게이트만이 사람으로 북적였다. 관광비행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회사가 힘을 모았다고 하던데 그 노력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은 아시아나항공, 예약진행은 하나투어, 숙박을 겸한 호캉스는 파라다이스시티와 네스트호텔, 그리고 프로모션은 싱가포르관광청이 주관했다.

현장에는 각사에서 준비한 다양한 기념품과 촬영존이 여행객을 맞았다. 특히 싱가포르관광청에서는 ‘열정과 가능성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곳 싱가포르’라는 캠페인 문구가 쓰인 대형 포토존과 캐릭터 멀리를 등장시켜 눈길을 끌었다.

관광청 한국사무소를 담당하고 있는 써린 운(Serene Woon) 소장도 직접 나와 여행객을 환대했다. 써린 운 소장은 “한국은 싱가포르 관광 입국 10위 안에 드는 중요한 마켓인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싱가포르의 다양한 매력이 선보이길 바라고,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많은 한국 관광객이 싱가포르를 찾을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비행기 탑승까지는 평소의 국내선 이용과 별다름 없었다. 장소는 인천이지만 흡사 김포나 제주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느낌과 비슷했다. 여권이 아닌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을 제시하면 됐고, 짐 검사 역시 국내선 탑승 때와 동일했다. 다만 2m까지는 아니지만 어른 팔 너비 만큼의 거리두기를 최대한 유지하고, 2~3차례 체온을 재는 과정 등이 보통 때와는 조금 달랐다.

탑승장에 가까워질수록 비슷한 분위기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 중심에는 A380이 있었다. “어머머!” “우와!” “이야~!” 등의 감탄사가 터졌다. 이게 바로 A380의 위용이었다.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항공기답게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다 한 꼬마의 나지막한 노랫소리에 박장대소했다.

아빠 곰은 뚱뚱해~ ♪비행기도 뚱뚱해~ ♬

아이의 눈은 정확했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A380의 또 다른 별명이 바로 ‘비만 돌고래’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A380에 들어섰다. 매캐한 항공유 타는 냄새와 비행기 특유의 공기 내음이 먼저 코를 자극했다. 평소였다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그 냄새마저 반가웠다. 이내 기내 방송이 귀에 꽂혔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의 기장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장두호입니다.

손님 여러분,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얼마나 지치고 힘드십니까. 오늘 이 비행은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가는 여행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치고 메마른 몸과 마음의 활력을 드리고자 계획됐습니다.

‘잊혀져가는 여행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는 부분에서 순간 울컥했다. 짧다면 짧은 이 순간의 여행이 그토록 사무쳤던 이유가 떠올라서다. 바로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 때문에 목적지가 없더라도, 잠시 하늘만 돌다가 오더라도 이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니 말이다.

이날 우리는 인천에서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강릉 상공을 순회한 후, 기수를 남쪽으로 틀어 포항~김해~제주 상공까지 둘러본 다음 다시 인천에 내리는 2시간의 여정을 함께 했다.

기체가 동해와 가까워질수록 창을 통해 보이는 강원도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매번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단풍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명품 유화를 보는 듯 했다. 단풍 융단은 포항 근처로 갈수록 옅어졌다.

대신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동해의 검푸른 바다와 남해의 쨍한 푸른빛 바다가 대비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남쪽의 바닷물이 좀 더 푸른빛을 띄었다. 하늘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광경이라 더욱 신기했다.

일반 비행 때보다 기내방송이 자주 나왔다. 주요 지역이나 명소를 지날 때마다 살뜰한 소개가 이어졌다. 그 안내의 하이라이트는 제주에 다다랐을 때였다. 방송을 듣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을 정도다. 바로 한라산의 백록담을 마주하는 때였다.

기장입니다. 현재 저희 비행기는 제주 관제 구역에 진입했으며, 제주 관제 기관의 허가를 얻어 남쪽으로 선회해 우측에 성산일출봉, 다음 제주 상공을 지나서 좌측 우측으로 제주 섬을 잘 보실 수 있도록 선회를 할 예정입니다.

바깥을 잘 주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좌측으로 앉아 계시는 손님께서는 한라산 정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이 보입니다.

백두산 천지와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러러마지 않는 한라산의 백록담을 하늘 위에서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다니 영광 또 영광이었다. 정말 찰나로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다행히 한 번 더 백록담을 볼 기회가 왔다. 흡사 한라산을 기점으로 해 한 바퀴 도는 듯 이번에는 오른쪽 창가 쪽에 앉은 이에게 백록담이 보였다.

감동 두 사발을 들이키고 나니 마음마저 훈훈했다. 이날 이렇게 전국 곳곳의 아름다움을 눈에 잘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보다 고도를 낮춰 1만5000~1만피트 고도에서 운항했기 때문이다.

손님여러분. 머지않은 날에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그리고 우리를 떠났던 여행도 일상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날에 손님 여러분을 이 비행기에 다시 모시고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특별편인 OZ8999편의 2시간여 비행은 이렇게 마지막을 알렸다. 국내에서 가장 특별한 당일치기 전국일주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장두호 기장의 말처럼 여행도 일상도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빌며 눈을 감자 두 바퀴가 활주로에 닿으며 “쿵쾅~”하는 소리와 울림을 전했다.

좌석등이 꺼졌는데도 누구 하나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못내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이 아쉬워서인지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이 순간만은 ‘느릿느릿’으로 바뀐 듯 했다.

하차를 하다가 탑승할 때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렀던 꼬마를 만났다. 기분이 꽤 신나보였다. 여행은 역시나 즐거움이다. 희망이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만은 그리움이다.

※ 사진 = 아시아나항공, 공항사진기자단, 유건우 여행+ PD

장주영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