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속 파리?’ 굳이 이런 수식어가 왜 필요해? 스스로도 빛나는데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국내 여행지를 꼽자면 반둥이 1순위로 나온다. 자동차로 3시간, 기차로 3시간이 걸리는 이 동네는 쇼핑이면 쇼핑, 역사면 역사 뭐 하나 빠지질 않는다. 자카르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반둥에 대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터. 자카르타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가장 많이 가는 동네가 바로 반둥이다.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하는 반둥의 평균 기온은 23도로 비교적 시원하다. 식민지 시절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이유다. 4~5년 전 대대적으로 도시 미화를 진행한 결과 녹지가 살아나고, 공원과 광장 등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늘어나면서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동네로 거듭났다.

한국인에게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반둥. 실은 낯설어서 더 좋았다. 반둥에서 보내는 1박 2일 동안 한국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최대한 현지인처럼 이 도시를 즐기고자 했다. 기도시간에 맞춰 이슬람 사원도 가보고, 식민지 시절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에도 들렀다. ‘인도네시아 속 유럽’이라 불리는 반둥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양파 같은 여행지였다.

동남아는 전부 덥고 습하다고? 너 뿐짝(Puncak) 안 가봤구나!


뿐짝은 자카르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주말 나들이 장소다. 자동차로 두 시간 드라이브를 즐기며 시원한 고원으로 간다. 우리로 치면 가평 혹은 평창 정도 되겠다. 반둥과 자카르타 중간 지점에 있어 양쪽 사람들이 고루 찾는다. 산 능선 곳곳에 자카르타 사람들의 여름 별장이 있고, 산속 깊은 곳에 럭셔리 프라이빗 리조트가 숨어 있는 동네가 바로 뿐짝이다. 뿐짝에 있는 이스타나 시파나스(Istana cipanas)는 인도네시아 전국에 있는 6개의 대통령궁 중 하나다.


고속도로를 타고 ‘보고르’라는 도시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왕복 이차로 구불구불 산길 따라 어느 정도 갔을까. 차창 밖 풍경이 사뭇 다르다. 둥글둥글 커다란 초록 누에고치처럼 생긴 차나무가 산비탈을 온통 덮었다. 차밭과 경계를 한 하늘이 더 푸르게 느껴진다. 길옆으로는 차와 커피를 파는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다. 고개를 넘기 전 뿐짝의 명물 레스토랑 린두알람에서 잠시 쉬어간다.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청량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렇게 시원할수가? 고산지대 뿐짝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며 편협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동남아라고 습하고 찌는 듯한 더운 날씨만 존재한다는 생각했던 건 참 편협했구나… 해발고도 2000m 이상 올라가면 이렇게 청량한 것을…. (레스토랑 안에는 니트를 챙겨 입은 현지인도 있었다. 이날 뿐짝의 온도는 23도) 린두알람에선 맥주잔 같은 데 차를 담아준다. 차와 곁들이는 건 닭고기 사테(닭고기 꼬치 요리). 통유리창 앞에 자리를 잡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차를 마신다. 닭고기 사테 10 꼬치 5만 루피아(약 4000원), 따뜻한 티 2000루피아(약 160원).

이슬람 사원이 관광 명소가 된 이유, 궁금해?”

마스지드 라야 반둥 모스크(Masjid Raya Bandung)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다. 전체 인구 중 88%가 이슬람을 믿는다. 이 나라를 이해하는데 이슬람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유럽여행에서 성당은 수시로 들르지만 무슬림 국가에선 선뜻 이슬람 사원을 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반둥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이곳 최대 이슬람 사원인 마스지드 라야 모스크는 관광객에게 더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이유는 바로 타워 전망대 때문. 마스지드 라야 모스크에는 높이 19층짜리 탑 두 개가 있다. 이곳은 본래 기도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만든 것인데 현재는 전망대로 사용된다. 참고로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하루 5번 기도를 하는데, 그 시각은 새벽 5시 낮 12, 오후 3·6·7시다.





2004년 사원을 리노베이션 하면서 타워에 관광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사원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햇빛에 달궈진 대리석 바닥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은 반대로 시원하다. 현지인들은 더위를 피해 그늘이 진 사원 바닥에 앉기도, 눕기도 한다. 한쪽이 유리로 돼있는 전망용 엘리베이터를 상상했다면 틀렸다. 말했듯 탑은 종교적 시설물이었기 때문에 일반 빌딩에 있는 철제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꼭대기는 360도 시야가 확보되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반둥 전경을 내려다보면 이곳이 분지 지역이라는 말이 단박에 이해된다. 사원 앞 광장은 본래 주차장이었다. 리드완 카밀(Ridwan Kamil) 반둥 전 시장이 인조잔디를 깔고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광장으로 만들었다. 리드완 카밀은 현재 서자바주 주지사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엔 크고 작은 공원이 많은데 리드완 카밀이 시장 재직 시절에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랬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행복지수 가장 높은 동네로 꼽힌단다. 엘리베이터 이용요금 7000루피아(약 600원).


어, 나 여기 들어본 것 같아!

역사의 현장 알룬알룬 거리(Alun-alun street)

alun-alun은 인도네시아 말로 광장을 뜻한다. 인도네시아 대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찾자면 ‘알룬알룬’이라는 말이 붙은 곳으로 가면 된다. 반둥에도 알룬알룬 스트리트가 있다. 앞서 소개한 마스지드 라야 반둥 모스크가 있는 곳이 알룬알룬 스트리트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아시아 아프리카 스트리트. 길 이름의 유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길이라…. 이 길의 유래를 알자면 학창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한다. 혹시 세계사 혹은 역사 시간 반둥회의라고 들어본 적 있는지. 그 반둥이 바로 인도네시아의 반둥을 말한다. 1955년 반둥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들이 모여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열었다. 당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인도의 네루 총리 등 국가 정상들이 모여 식민지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을 비판하는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국제사회에 반식민주의가 퍼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알룬알룬 거리(아시아 아프리카 거리)엔 당시 역사적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을 비롯해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남아있다. 유럽식 콜로니얼 시대 건물들은 현재 정부와 특별 계약을 맺고 은행이나 보험사 등 상업시설로 쓰인다.

걸으니까 더 좋네.

자바섬의 파리 브라가 거리(Braga street)


알룬알룬 거리 아시아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시작해 반둥시청공원 앞까지 이어지는 약 1㎞ 브라가 거리는 ‘인도네시아 속 유럽’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더러는 브라가 거리를 ‘자바의 파리’라고 부른다. 식민지 시대 지어진 유럽풍의 건축물과 직접 그린 그림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예술가들, 무엇보다 좋은 건 널찍한 인도였다. 자카르타 등 인도네시아 대도시에서 가장 놀란 게 걸어 다니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푹푹 찌는 날씨도 날씨지만, 인도가 터무니없이 좁거나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나 브라가 거리는 달랐다.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가 차도와 확연히 구분됐다.




이 거리엔 오래된 건물이 많다.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되 실내를 고쳐 카페와 갤러리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다. 많고 많은 식당 중 고른 곳은 레스토랑 겸 카페 ‘브라가 페르마이(Braga Permai)’. 애당초 점찍어 둔 곳은 갤러리를 겸하는 레스토랑이었지만 현지인 추천으로 브라가 페르마이로 방향을 틀었다. 브라가 페르마이가 문을 연 것은 1923년의 일. 오픈 당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주로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식사 메뉴는 물론, 커피와 차, 베이커리 등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하루 종일 손님이 많다. 메뉴는 피자부터 현지 음식까지 다양하다. 음식가격은 볶음밥류 6만 루피아(약 5000원), 볶음면류 7만 루피아(약 5500원), 음료 3만루피아(약 2300원) 선이다. 브라가 거리 중간 쯤 위치한 위키 커피 역시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스카이워크 위 신세계

공중에 둥둥 뜬 쇼핑거리 치암펠라스(Cihampelas)



반둥을 여행하면서 여러 차례 편견이 깨졌다. 고산지대 뿐짝에선 동남아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청량감을 맛봤고, 난생처음 이슬람 사원에도 들어가 봤다. 시내에 조성된 쇼핑거리 치암펠라스 역시 센세이션했다. 사계절 더운 날씨가 계속 되는 이곳에, 기념품과 특산품을 파는 공중 쇼핑거리가 있다. 치암펠라스 스카이워크를 기획한 건 리드완 카밀 전 시장으로 이곳은 현재에도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500m 거리로 조성됐지만 연장 공사를 진행해 1㎞로 확장할 계획이다. 모두 11테라스 구역으로 구분되는 이곳엔 길거리 음식점, 기념품 상점, 짝퉁 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주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기념품 쇼핑을 하고 현지인들은 산책로로 이용한다. 치암펠라스 스카이워크에 들어서면 마치 딴 세상 같다. 지상에선 잘 보이지 않던 가로수가 스카이워크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울창한 나무가 주변 건물을 가려주고 번잡한 도로도 보이지 않아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긴다.


PS. 이틀 동안 둘러본 반둥은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유럽의 정취를 나름 간직한 곳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유럽이다’ ‘인도네시아 속 파리다’하는 수식어보다는

나름의 개성을 간직한 여행지로 기억될 듯하다.

동남아에 있지만 서양과 동양의 분위기가 오묘하게 섞여 있고,

여느 동남아 도시들과는 달리 도시 조경과 미화에 힘을 쓴 노력이 역력히 보이는 곳이었다.

반둥 여행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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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v.naver.com/v/5092255

홍지연 여행+ 에디터

※취재협조=한-아세안센터(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간 경제 및 사회 문화 분야 협력증진을 위한 국제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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