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중국 버전 ‘탕핑’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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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핑이즘을 보여주는 한 일러스트레이트 / @zhihu

    즘 중국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가 ‘탕핑(躺平)’이라는 말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직역하면 ‘드러눕다’라는 뜻인데, 풀어 설명하면 힘들게 일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비슷하다고나 할까?(그러보니 이 책 표지도 누워있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돌연 이런 단어가 유행하는 이유가 뭘까.

    ‘탕핑이 곧 정의다’ 블로그

    ‘좋은 여행자(好心的旅行家)’라는 블로거가 지난 4월 ‘탕핑이 곧 정의’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올렸는데 이 글이 중국 젊은이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블로거는 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알바로 돈을 벌면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여유로운 삶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삶은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성장 전략과 맞지 않다. 그가 말하는 이른바 ‘탕핑이즘’에는 큰돈을 벌어 반드시 집이나 차를 살 이유가 없다. 결혼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돈을 쓸 필요도 없다.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번 돈을 소비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루는 전통적 성장론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 표지

    중국 정부는 이런 불온한(?) 생각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에서 인기 있는 소셜 플랫폼 ‘도우반(豆瓣)’에 9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던 탕핑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최근 당국 검열에 의해 해체됐다고 전했다. 20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탕핑 커뮤니티에서는 탕핑 관련 게시물이 금지됐다. 중국 정부는 각종 디지털 플랫폼에 탕핑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탕핑 관련 디자인이 있는 상품 판매를 금지시켰다.

    996으로 일하면 중환자실에 간다는 게시물 / 깃허브 캡처

    탕핑이즘 논란 이전에도 중국에서는 장시간 노동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중국에서 일하는 방식을 표현하는 말에 ‘996’이라는 게 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뜻이다. 중국의 대표적 창업가 마윈조차 “하루 12시간은 일해야 한다”며 장시간 노동을 장려했다. 이런 게 바로 중국식 노동 문화다. 그런데 지난 2019년 테크 분야 노동자들 사이에서 ‘996.ICU’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996에 ICU(병원의 집중치료실)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조어인데, 996처럼 일하다가는 중환자실에 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초고속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상하이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모습 / unsplash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중국에서 ‘탕핑이즘’이 확산하는 배경에 996으로 표현되는 혹독한 근로 환경,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열망 등이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중국 노동자들은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요즘 밀레니얼 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하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인데, 이는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중국의 초호화 쇼핑몰 / unsplash

    소비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도 한 배경이다. 중국인들은 지난 10년간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소비자로 부상했다. 정부도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금융을 통한 과도한 소비 풍조도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소비자 금융의 발달로 수많은 청년들이 부채의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데, 탕핑이즘은 이런 과도한 소비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력은 계속될까? / unsplash

    탕핑이즘의 유행은 중국의 일당독재에 의한 경제 성장이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중국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셋째 자녀 출산을 허용하는 출산장려책을 내놓았지만 중국 젊은이들이 이런 국가 시책을 따라줄지는 의문이다. 과거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가 먹혔지만 밀레니얼 세대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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