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1892년까지 미국에서 이탈리아인은 ‘백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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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 인종(In-between race), 견습 백인(probationary white) “

    1800년대 이탈리아계 이민자를 불렀던 속어다. 이탈리아인들은 1892년까지 미국에서 백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남유럽 이민자들은 ‘견습 백인(probationary white)’이라는 멸칭을 들으며 차별받았다.

    미국에서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이다. 단순히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는 날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낯부끄러운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돌아보는 날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9일(현지시간) ‘콜럼버스의 날’ 제정 배경을 보도했다.

    < 출처 : 미국 공화당 트위터(좌), 미국 이탈리아 후손 협회 (우) >

    < 출처 : 미국 국회도서관 (좌), 미국 국립인문재단 (우) >

    뉴올리언스 대학살

    2등 시민의 설움

    ‘콜럼버스의 날’ 뒤에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피눈물 나는 역사가 서려있다.

    본래 콜럼버스는 미국인들이 기리는 위인이 아니었다. 180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 앵글로-색슨족 백인이 주축인 미국 사회는 영국 식민지 시대를 미국 역사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18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조국을 떠난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미국에 쏟아졌다. 하지만 가난한 이민자들은 영국계 백인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의 대상이 됐다. 이탈리아인은 ‘중간 인종(In-between race)’ 또는 ‘범죄의 온상’이라며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 출처 – 보스턴 공공 도서관 >

    그러다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설움이 북받치는 사건이 터졌다. ‘뉴올리언스 대학살’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집단 린치(lynch)로 기록된다.

    1890년 이탈리아인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데이비드 헤네시(David Hennessy) 형사가 살해당했다. 이탈리아계 사람 11명이 용의자로 지목됐는데, 다음 해 모두 무죄로 풀려나갔다. 그러자 ‘진짜’ 백인 군중들이 들고 일어섰다. 8천 명 넘는 시민들이 아직 용의자들이 머무는 교도소로 쳐들어갔다.

    데이비드 헤네시 형사(좌), 뉴올리언스 집단 학살(우) < 출처 – 미국 경찰청, 미국 이탈리아 후손 협회 >

    시민들은 교도소에서 무죄 판정을 받은 용의자 11명을 구타하고, 총을 쏘고, 목을 매 집단 학살했다. 물론 사건과 관련 없는 무고한 이탈리아인들마저 학살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1891년 뉴올리언스 대학살’ 가담자 중에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교 문제로 커지다

    1891년 집단 린치 사건은 미국-이탈리아 간 외교 문제로 커졌다. 이탈리아 정부가 미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화가 난 이탈리아는 곧바로 미국 대사관을 철폐하고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미국도 이탈리아에 똑같은 보복 조치를 행했다.

    이탈리아가 해군 함대 출동까지 고려할 정도로 외교 마찰이 커지자 미국은 결국 꼬리를 내렸다. 미국 정부는 이탈리아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미국 사회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 정책을 펼쳤다. 첫 번째 목표는 ‘동일한 정체성 형성’이다.

    < 출처 – unsplash >

    우선 이탈리아인 항해사 콜럼버스를 공식적으로 미국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줬다. 1892년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맞아 10월 12일을 ‘신대륙 발견의 날(Discovery Day)’로 지정했다. 해리슨 대통령은 “콜럼버스는 미국의 진보와 계몽의 아이콘”이라고 치켜세워주며 이탈리아 정부에 2만 5천 달러를 배상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콜럼버스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1971년 미국 국회는 콜럼버스의 날을 10월 12일에서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바꿨다. 3일간의 긴 연휴로 바꿔 더욱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벤저민 해리슨 (좌), 프랭클린 루스벨트 (우) < 출처 – unsplash >

    역사학자 베네딕트 데샹(Benedict Deschamps)는 “콜럼버스의 날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인으로서 인정받았음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평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콜럼버스를 되새기며 앵글로-색슨족 영국인뿐만 아니라 남유럽 백인들도 미국 사회에 기여했음을 축하한다.


    2021년 10월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콜럼버스의 날’을 ‘아메리칸 원주민의 날’로 변경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조금 더 포용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발표문에서 “아메리칸 원주민들도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했음을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서명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출처 – 백악관 홈페이지 >

    < 출처 – petra jamal twitter >

    이동흠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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