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케이크 한 조각에 297만 원…영국 왕실의 도도한 웨딩 케이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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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에 나온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너비 웨딩 케이크 조각 / 도미닉 윈터 옥션

    늘 ‘이런 여행’ 이야기는 오래된 웨딩 케이크 한 조각에서 시작한다. 지난주 영국 도미닉 윈터 옥션에서 40년 된 웨딩 케이크 한 조각이 우리 돈 297만 원에 낙찰됐다. ‘세기의 결혼식’으로 떠들썩 했던 1981년 7월 29일 영국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너비 결혼식 날 쓰였던 웨딩 케이크 조각이다. 경매품은 결혼식 당일 초대된 손님들에게 증정된 23조각 중 한 조각으로, 화려한 왕실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케이크 조각은 런던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현재 영국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를 위해 일했던 모이라 스미스에게 주어졌던 것이라고 한다. 스미스 사망 후 그의 가족이 2008년 경매를 통해 개인 수집가에게 1,000 파운드에 팔았고, 그 수집가가 이번에 다시 경매에 내놓았다. 당초 추정가는 300~500 파운드(약 48만~80만 원)였는데 실제 경매가는 1,850 파운드(약 297만 원)에 달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너비 웨딩 케이크. 왕립해군요리학교에서 만들었다. / Royal.uk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너비 웨딩 케이크는 5층짜리였다. 높이 1.5m, 무게 115kg의 6각형 대형 케이크였다. 들어간 계란이 150개, 제작에만 두 달 넘게 걸렸다고 한다. 맨 위층에는 찰스와 다이애너 이름 첫 자인 C와 D가 우아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웨딩 케이크가 처음부터 이렇게 다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러 층으로 된 웨딩 케이크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영국 왕실이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작 결혼식.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끄는 군주가 될 것이라는 신호였을까? 이때 나온 웨딩 케이크가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높이 35cm, 무게 130kg이나 되는 3층짜리 거대한 케이크였다.

    빅토리아 여왕 웨딩 케이크 / Royal.uk

    빅토리아 여왕 웨딩 케이크는 높이 외에 몇 가지 새로운 특징을 선보였는데, 그 하나가 미니어처 장식이었다. 하객들은 케이크 위에 꾸며진 정교한 미니어처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신랑·신부 모양은 아니었다. 영국을 의인화한 여성 브리타니아가 로마 복장을 한 남녀를 축하해 주는 장식이었다. 이 웨딩 케이크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후 웨딩 케이크 미니어처 장식이 널리 퍼졌고, 신랑·신부 모양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하객들을 가장 놀래킨 것은 케이크 전체가 순백의 로열 아이싱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도 크기 케이크를 아이싱으로 덮으려면 엄청난 양의 백설탕이 필요했는데, 당시는 정제한 백설탕이 매우 귀한 시절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거대한 흰색 웨딩 케이크는 영국 왕실의 권위와 호화로움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신랑, 신부 장식이 달린 웨딩 케이크 / unsplash

    19세기 후반 설탕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설탕값이 내려가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왕실 웨딩 케이크처럼 고급스럽게 아이싱 데코레이션을 한 다층 케이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식은 가문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였던 만큼 크고 화려한 웨딩 케이크는 필수 품목이었을 것이다. 영국 왕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더욱 커다란 케이크를 등장시키며 왕실의 권위를 내세웠다. 1858년 빅토리아 여왕 장녀인 빅토리아 공주와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 결혼식 때는 높이 1.8m짜리 3층 웨딩 케이크가 나왔다. 1893년 조지 왕자(나중에 국왕 조지 5세가 된다) 결혼식장에 올려진 웨딩 케이크는 2.1m나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공주 결혼식에는 무려 3m 높이에 9층짜리 웨딩 케이크가 나왔다.

    최용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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