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듯 아시아인 듯, 이스탄불 대표적 관광명소 5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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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스탄불을 아시아와 유럽으로 가른다. 우리로 치면 철수만큼 흔한 이름인 터키의 여행 가이드 무스타파에게 터키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싱긋 웃더니 무스타파는 유라시아라고 답했다.

    힙스터들의 성지도 좋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전통적인 여행지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문명의 교차로가 빚어낸 5곳을 엄선했다. 유적에 담긴 역사적 의미도 예사롭지 않다.


    아야소피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인 아야 소피아는 제일가는 명소다. 아마 터키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치고 들리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성당이었다가, 이슬람 사원으로 기능을 바꿨다가 박물관으로도 사용되었다. 2020년 8월부터는 다시 이슬람 사원이 되면서 연중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아야 소피아 이 케바르 카미(Ayasofya i Kebir Camii)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한 데에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있다. 아야 소피아는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때 만들어졌다가, 대폭동 등으로 완전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아야소피아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당으로 만들고자 재건축에 들어갔다. 5년간의 공사 끝에 537년 12월, 지금의 아야소피아가 완공되었다. 아야소피아(Ayasofya)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절대적 존재가 허락한 지혜로 완성된 건물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공을 들여 건축한 만큼 아야소피아는 762년까지는 성당으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만, 서로마 제국과 가톨릭이 분리되면서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으로 바뀌었다. 명칭도 자연스럽게 그리스어인 ‘하기아 소피아’로 바뀌었다. 하지만 1453년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된다.

    비록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지만 아야 소피아가 남게 된 사연이 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이슬람 병사들은 동로마제국 수도를 처참하게 파괴했다. 그러다 야야 소피아 앞에서 제지당했다. 술탄은 비록 적국 심장부에 세워진 종교적 상징물이었지만, 아름다운 건축물을 차마 부술 수 없었다. 대신 회칠을 해 덮고, 노란색을 덧칠하고 이슬람교의 다양한 문양들을 장식했다. 성당 밖에 4개의 미나레(Minare)까지 세워지면서 아야소피아는 이슬람 사원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오늘날까지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유지되었다.

    1847년 스위스의 건축가 풋사티(Fossaati)가 아야소피아의 보수를 맡아 일하던 중 석회 속에 가려진 모자이크를 발견하고, 아타튀르크가 1935년에 이곳을 박물관으로 지정하면서, 모자이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198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술탄이 성당 보존의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그 맞은편에는 터키의 대표 사원 블루모스크가 있다. 마치 쌍둥이같이 비슷한 다른 종교의 상징물이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야소피아 내부로 입장하려면 가방 검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본당으로 들어설 때는 두 개의 복도를 지나게 되는데, 외부 복도는 벽돌과 시멘트가 사용되었고, 내부 복도가 시작되면서 장식재가 대리석으로 바뀐다. 외부와 내부의 분리를 시도한 옛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이 복도들을 지나면서 마음속으로 예배를 준비한다. 본당으로 통하는 9개의 문 중에서 정중앙에 있는 가장 커다란 문은 황제 전용문이다.

    아야소피아 본당의 내부는 이곳이 가진 역사만큼 굉장히 화려하고 장엄하다. 엄청난 공간감에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당대 기술력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아야소피아는 지름 31m, 높이 55m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 돔을 만들고 그 아래 ‘천상의 세계’를 구현했다. 아야소피아 건설 이후 유럽 건물들에 본격적으로 거대한 돔을 사용하는 공법이 널리 퍼졌다. 눈여겨 봐야 할 곳은 본당 가장 내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고 있는 미흐랍(Mihrab)이다. 그 오른쪽에는 설교단으로 사용되던 밈베르(Mimber)가 있는데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이맘(imam)이 여기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그냥 지나치면 아쉬움만 남을 장소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편에는 ‘촉촉한 기둥(땀 흘리는 기둥)’이다. 기둥에 뚫려 있는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를 돌리며 소원을 빌었을 때, 엄지손가락이 촉촉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2층은 여성들의 기도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화를 감상할 수 있다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최초로 건설한 궁전이다. 이곳에 정착한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를 거느리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 궁전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심장부였다고 할 수 있다.

    ‘톱카프’라는 말은 터키어로 ‘대포의 문’이라는 뜻인데, 도시 성벽을 무너트리며 새 역사를 창조하게 된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대포의 놀라운 위력을 기념하면서 그들이 건설한 최초의 궁전에도 톱카프라는 이름을 바쳤다. 1467년 메흐메트(Mehmet) 2세 때 완공되어, 19세기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술탄이 이주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톱카프 궁전에는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궁정을 가지고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술탄의 문’이라는 뜻의 ‘바브 휘마윤’인데, 문 바깥쪽에는 궁전의 건축 완공 기록이 적혀있다. 이 문을 지나면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제1 정원이 나온다. 제1 정원은 귈하네 공원 안에 있다. 터키어로 ‘귈’은 장미, ‘하네’는 장소를 뜻한다. 즉, ‘귈하네’는 장미가 있는 곳, 장미정원이라는 뜻이다. 5월이면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정원 곳곳에서 만개하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르 해는 낭만적일 수밖에 없다.

    침엽수와 플라타너스 그늘이 장관을 이루는 제2 정원은 톱카프 궁전의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작된다. 제2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바브 셀람(Bâb-üs Selâm)’이라는 ‘경의의 문’이 있는데, 술탄 이외의 사람들은 이 문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야만 했다. 술탄과 술탄의 측극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세 번째 ‘행복의 문’, ‘바브 싸뎃(Bâb-üs Saadet)’을 지나면 제3 정원이 나온다.

    제3 정원에는 술탄이 외국 사절들과 회견을 하던 알현실과, 내부가 타일과 스테인드 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정원의 오른편에는 보물관이 있는데, 8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가장 유명하다. 86캐럿의 다이아몬드는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감싸고 있는데, 이것을 주운 어부가 스푼 장수의 스푼 3개와 바꾸었기 때문에 ‘스푼 장수의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4 정원에는 3개의 쾨시퀴, 즉 3개의 정자가 있는데 특히 바그다드 쾨시퀴(Ba￰dat Köᄎkü) 가 아름다운 장식과 디자인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곳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2 정원과 제3 정원의 왼쪽에는 술탄의 왕비와 후궁, 그리고 자녀들이 거처로 이용하던 하렘이 있다. 하렘은 당시 술탄이나 거세한 환관들을 제외하고는 남성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었다. 호화로운 타일과 샹들리에 등의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창문마다 붙어 있는 굵은 쇠창살이 하렘에 거주하던 여성들의 폐쇄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내부관람은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해야 한다.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5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i)는 무려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지하 저수지이다. 저수 시설의 규모는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에 이른다. 이곳으로부터 약 15km 떨어진 베오그라드 숲(Beogard Ormani)에서 물을 끌어와 당시 시민들의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예레바탄 사라이의 엄청난 규모와 달리 입구는 아담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대리석 기둥 336개가 줄지어 서 있는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레바탄 사라이가 지하 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기둥은 그 모양과 새겨진 문양이 제각각 다른데, 이는 제국의 각지에 산재하던 신전이나 건물 등에서 건축자재를 징발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면 뱀의 머리를 하고 두 눈을 부릅뜬 ‘메두사의 머리’를 볼 수 있다. 메두사의 머리는 약간 비스듬하게 놓여있는데, 이에 대해 메두사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여러 부조물을 사용하다 보니 높이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비스듬히 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돌마바흐체 궁전

    톱카프 궁전이 너무 비좁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19세기 중엽의 술탄 압뒬메지트(Abdülmecit) 1세는 톱카프 궁전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서양식 궁전으로 아주 우아하고 장중한 모습을 가진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을 지었다. 홀 43개, 방 285개, 발코니 6개, 목욕탕 6개라는 규모를 자랑하는 이 궁전은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금 17톤, 은 40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궁전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접견실로 쓰이던 황제의 방으로, 56개의 기둥과 750개의 전등이 달린 4.5톤의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다. 이 샹들리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궁전의 인테리어와 장식은 모두 서유럽에서 가져왔다.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과 베네치아제 크리스털로 된 계단의 방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서유럽의 명화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이 궁전은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업무 도중 이곳에서 사망하였는데, 때문에 궁전 안에 있는 모든 시계가 그의 사망시각인 9시 5분에 멈춰 있다. 아타튀르크의 방은 평소에는 입장권이 있어야 구경할 수 있지만, 그의 서거일이나 중요한 국경일에는 잠시 개방되기도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하다. 내부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랜드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재래식 시장으로, 약 5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스탄불을 방문한 여행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쇼핑의 중심지인데, 터키어로 ‘카팔르 차르쉬(Kapalıçarşı)’라고도 한다.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카페트, 도자기, 수공예품을 비롯한 터키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약 5천 개의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시장은 메흐메트 2세 때인 1461년 비잔틴 시대의 마구간 자리에 만들어졌다. 그 시절, 콘스탄티노플은 당나라 장안에서부터 시작된 실크로드의 종착역이었다. 처음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실크와 보석, 향신료 등을 거래하는 작은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5천 개가 넘는 규모의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미로를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한 그랜드 바자르의 입구는 20군데가 넘기 때문에, 1번 출입구인 동쪽의 누르오스마니예 문(Nurosmaniye Kapisi)과 7번 출입구인 서쪽의 베야즛 문(Beyazit kapisi)을 외워두는게 좋다. 주로 토산품이나 금은보석, 장식품, 양탄자, 도자기 등의 전통제품들을 판매한다. 거의 모든 점포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고, 생활 한국어에 능숙한 상인들도 많다. 가격 흥정을 통해 쇼핑의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 사진 제공 = 터키문화관광부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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