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 보겠다고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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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곳을 여행할 때 ’이것만은 꼭‘이라는 단서가 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장소에서 필수로 봐야 하는 것이 ’파리에 가면 에펠탑, 뉴욕에선 타임스퀘어‘처럼 랜드마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림 하나 작품 한점이 될 수도 있죠.

    [출처=반고흐 미술관]

    저에겐 암스테르담이 그랬는데요. 감수성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부터 저에겐 유럽여행 버킷리스트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반고흐에 한참 빠져있었던 터라 언젠가는 꼭 반고흐의 작품을 보러 네덜란드에 가야지, 그가 작품활동을 했던 남프랑스를 여행해야지… 온갖 여행의 테마가 ’반고흐‘를 중심으로 했을 때가 있었죠. 대학교에 들어가 1학년 교양과목으로 ’서양미술사‘를 수강하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납니다. 언젠가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직접 두 눈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말이죠. 이런 열망은 대학 시절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뮤지엄패스를 구매해 틈만 나면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을 찾아갔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같습니다.

    [출처=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교환학생을 하면서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했는데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술 작품도 좋지만 그것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발자취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작품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였습니다. 스페인하면 어떤 화가가 떠오르시나요? 여행을 떠나기 전 저의 최애 스페인 작가는 살바도르 달리였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능력이 부러웠습니다. 사실 스페인하면 파블로 피카소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이 둘을 놓고 봤을 때 제 취향은 달리 쪽이었는데, 스페인에서 직접 둘의 작품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서 ’게르니카‘를 마주했을 때 전율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미술관 한쪽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그림 속 표현된 역사의 비극은 먼 이국 땅에서 온 여행자의 마음에도 큰 울림을 줬습니다.

    예술가라면 마땅히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그림은 아파트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림은 투쟁의 수단입니다.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여행’ 이명옥 지음, SIGONGART 발췌

    그림이 단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힘이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압도 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멍하게 서있던 기억도 나네요.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일정 중에 미술관, 박물관이 빠지지 않습니다. 북유럽 노르웨이에도 이런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입니다. 화가의 이름과 정확한 작품명은 기억하지 못해도 한 번쯤 어디선가 본 익숙한 이 그림. 여기저기서 패러디도 많이 되면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 됐는데요. 이 그림 한 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은 바로 오슬로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입니다.

    [출처=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언젠가 노르웨이 관광청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노르웨이 팸투어를 가면 사람들이 꼭 한 번씩 이야기하는 게 ’뭉크의 절규를 보고싶다‘는 건데요. 일정 중 무리하게 시간을 빼서 미술관에 다녀오겠다는 참가자 때문에 애를 먹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대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렇게까지?‘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기왕 노르웨이까지 갔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출처=구글]

    뭉크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명입니다. 1000크로네 화폐에 뭉크를 넣을 정도죠. 세계적인 경매업체 소더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절규’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두렵거나 불길한 감정,

    느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와 불안, 절망감을

    그림을 통해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여행’ 이명옥 지음, SIGONGART 발췌

    오슬로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

    노르웨이 여행에서 ’절규‘를 꼭 봐야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은 오직 오슬로에 와야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규는 유화, 파스텔화, 판화 등 다양한 버전이 있습니다. 4개 중 대중에게 공개된 건 3개. 나머지 한 개는 개인 소장입니다. (참고로 이 개인 소장품은 2012년 경매에서 전문가들의 낙찰 예상가 8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1억2000만 달러, 약 1500억원에 낙찰돼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1점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2점은 뭉크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당국에서 뭉크의 절규를 나라 밖으로 빌려주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절규를 ’노르웨이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유명세 때문일까요. 뭉크의 절규는 도난도 두 차례 당하기도 했습니다. 1994년 그리고 2004년에 한 번. 다행히 그때마다 그림을 되찾았습니다.

    [출처=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코로나에 여행도 잊히고 ’절규를 보러 오슬로에 가고싶다‘는 마음도 시들해지던 2021년 2월 어느 날 외신을 통해 뉴스 하나가 전해졌는데요. ’절규‘ 왼쪽 상단 귀퉁이에 적혀 있던 의문의 글귀가 해석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893년 완성된 첫 번째 버전의 절규에는 희미하게 적힌 글귀가 있습니다. 문구가 처음 발견된 건 1904년. 그 이후로 미술 전문가들이 글귀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이리저리 분석을 했습니다. 세간은 이를 두고 ’누가 고의적으로 예술품을 훼손한 것이다‘ ’뭉크가 직접한 낙서다‘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최근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공식적 입장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킨 거죠.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공개한 글귀는 ‘미친 사람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Can only have been painted by a madman)’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출처=노르웨이 국립미술관]

    미술 분석 전문가들이 적외선 카메라로 그림을 연구한 결과 뭉크가 생전에 남긴 편지와 일기장 속 글씨체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마이 브리트 굴렝은 “필체, 그림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던 1895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미루어 볼 때 이 글귀는 뭉크 자신이 쓴 게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구를 남겼을까요. 1895년 뭉크가 이 그림을 공개했을 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따르면 뭉크가 절규를 공개하고 난 후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고 대중들은 그의 정신상태까지 의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뭉크는 한 토론회에 참석했는데요. 젊은 의대생이 뭉크의 정신 건강에 의문을 제기했고 절규가 정상적인 정신에서 나온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뭉크는 이 일을 겪고 큰 충격에 빠졌고 결국 자신의 그림에 ‘미친 사람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이라는 문구를 적은 것이었죠. 사실 뭉크의 인생은 불우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아버지와 동생 안드레아스도 죽었습니다.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역시 뭉크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죽음을 경험해서였을까요. 뭉크는 자신도 일찍 죽을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뭉크 역시 1908년 신경 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문제의 글귀가 적힌 그림은 현재는 볼 수 없습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이전을 하면서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인데요. 2022년 재개관 때 뭉크의 대표작 ‘마돈나’ ‘담배를 문 자화상’ 등과 함께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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