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역사 인물을 만날 수 있는 8가지 명소

    - Advertisement -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임인년(壬寅年)은 60간지 중 39번째 해다. 임이 ‘검다’는 뜻이기에 임인년을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도 부른다. 임인년에는 국내에 많은 역사 인물이 태어났다. 검은 호랑이의 해를 빛낸 인물과 그 흔적을 살펴보자.


    942년생 서희

    이천 서희 테마파크

    경기 이천시 부발읍 무촌로18번길 130

    출처= 장위공 서희 공식 홈페이지

    고려 초기 문신인 서희는 거란과의 담판으로 유명하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입하자 조정은 혼란에 빠졌고, 신하들은 영토를 내주고 평화를 얻자는 ‘할지론’을 주장했다. 이 때 서희는 영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할지론을 비판했고, 직접 소손녕과 담판을 짓겠다고 나섰다. 소손녕은 처음에 거만하게 굴었으나 꿋꿋한 서희의 태도를 비상하게 여겨 담판에 나섰다. 서희는 소손녕의 주장을 반박하며, 협상을 이끌었고 거란의 철군과 강동 6주의 영토를 얻고 낙타, 말, 양 비단까지 선물로 받았다. 경기 이천 부발읍에 서희 테마파크가 있어 그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묘소는 경기 여주 산북면에 있다.


    1482년생 조광조

    화순 조광조 적려유허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출처= 네이버 지도 로드뷰

    조선 초기 조광조는 사림 개혁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중종은 연산군을 반정으로 몰아낸 이후 정치 기반이 약하다고 판단해 조광조와 같은 사림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조광조는 인재를 직접 추천할 수 있는 현량과(賢良科)를 도입했다. 공납제의 폐단을 시정하고, 소격서를 폐지했으며, 향약 보급과 소학 교육을 통해 유교를 통한 중앙집권을 강화했다. 하지만 사림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훈구 세력이 1519년 기묘사화를 일으켰고, 조광조는 유배를 간 후 1520년 사약을 마시고 사망했다. 경기 용인 수지구에는 묘소가, 유배 생활을 했던 전남 화순 능주면에는 ‘조광조 적려유허지라는 유적지가 있다.


    1542년생 류성룡

    안동 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

    출처= 병산서원 공식 홈페이지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재상으로 이순신 장군과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의정이었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의주 피난을 함께 했다. 영의정과 도체찰사(변란 발생시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관직)가 되면서 원군으로 참여한 명나라와 협력했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일본에 맞설 병력을 양성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침략에 무방비했던 조선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내용이 담긴 『징비록』을 작성했다. 『징비록』은 후대에 소중한 자료로 남아 국보 132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 그가 살았던 곳이자 후손들의 집성촌이며, 선비길이라는 산책로를 따라가면 그의 위패를 모시는 사적 260호 병산서원이 있다.


    1902년 박열

    문경 박열의사기념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

    출처= 박열의사기념관 공식 홈페이지

    독립운동가 박열은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3.1운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불령사’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다 1923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폭탄 구매 계획이 덴노 암살 음모로 날조당하며 재판을 받았다. 이 때 두 사람 모두 조선옷을 입고 재판정에 나섰고, 사형 선고가 내려졌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이후 옥중결혼을 했다. 1926년 옥중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사망했고, 박열은 22년을 복역하다 해방 후 출소했다. 그는 6.25 전쟁 때 납북당해 묘소가 평양에 있다. 고향인 경북 문경 마성면 생가 터에는 박열의사기념관이 있으며 옆에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도 있다.


    1902년생 나운규

    종로 단성사영화역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 26

    출처= 네이버 지도 로드뷰

    일제 강점기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나운규는 한국 영화의 시작을 만든 전설이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시작한 그는 18세에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가담했다. 일본군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고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영화계에 뛰어들어, 1926년 『아리랑』의 메가폰을 잡아 주연까지 맡았다. 이 영화의 주제가인 「아리랑」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라는 가사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영화는 나라 잃은 설움에 불을 지피며 큰 흥행을 거뒀다. 서울 종로에 있는 단성사에서 『아리랑』을 상영했다. 현재 ‘단성금속주얼리센터’ 안에 있는 ‘단성역화역사관’에서 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1902년생 정지용

    옥천 정지용문학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관공서(정지용문학관)

    출처= 정지용문학관 공식 홈페이지

    일제 강점기 시인 정지용은 「향수」, 「유리창」으로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1929년 한국으로 돌아와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해방까지 영어교사를 맡았다. 수많은 시를 집필했고,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같은 청록파윤동주, 이상 같은 시인을 등단시켰다. 1950년 6.25 전쟁 중 납북당해 사망했다. 한때, 월북설이 돌아서 그의 작품이 모두 금서가 된적이 있었지만 1998년 해금되며 교과서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고향인 충북 옥천에 그의 생가가 있으며 정지용문학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1902년생 김소월

    증평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노암로 24

    출처=네이버 지도 로드뷰 캡처

    일제 강점기 시인 김소월은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소월은 1915년 오산고보에서 조만식과 김억을 만나 많은 시를 집필했다. 그리고 3.1운동으로 인해 배재고보에 편입해 1920년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돌아왔고, 1925년 김억의 도움으로 시집 『진달래꽃』을 출간했다.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1934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지만 오랜 세월 문학관이 없었다. 그러다 2019년 그의 처가가 있던 충북 증평 도안면에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문학관이 설립됐다.


    1902년생 유관순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유관순열사유적지

    출처= 천안시 공식 홈페이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유관순은 대한민국 대표 여성 독립운동가다. 이화학당 1학년이던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 때 조선인 경찰에게 체포됐고 부모가 만세운동 중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다. 재판장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할지 물어보자 의자를 집어던지며 저항했다. 옥중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저항했지만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1920년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한다. 고향이자 만세운동의 현장 충남 천안 병천에는 사적 230호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이 있다. 여기에는 1972년 건립한 사당과 1991년 복원된 생가와 유관순이 다닌 매봉교회가 있다.

    [서주훈 여행+ 인턴 기자]

    - Advertise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