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가 품은 보물 부석사 _ 거리를 두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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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친근한 장소들이 있다. 주변에서 하도 추천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언론을 타고서인지, 어떤 경우는 그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아마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쳤을 거다. 나에겐 영주 부석사가 그렇다.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부석사는 내 머릿속에 꽤 단단한 이미지로 박혀있다. 부석사를 떠올리고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오감으로 부석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절간을 감싸는 공기와 분위기마저 그려진다. 환상보다는 추억에 가깝다. 신기하다. 어째서 가보지도 못한 공간을 추억으로 느끼는 걸까. 눈부신 봄날 영주 여행은 수수께끼처럼 시작됐다.

    내가 완성하는 부석사 여행

    부석사로 가는 길은 설렜다. 부석사를 처음 알게 된 건 꽤 오래된 기억이다. 학교에서 배웠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최순우씨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등장하는 무량수전이 바로 부석사에 있다. 멋진 책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술·문화재의 전문가답게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에 대한 해설을 적은 인문서인데, 어느 장르의 책에도 어울릴만한 제목이다. ‘기대서서’로 끝나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미완이다. 여운을 남긴다. 언젠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만의 무언가를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행은 한 장의 사진 하나의 문장에 동해 떠나기도 하는 거니까.

    2012년 영주 옆 마을 봉화 취재를 갔을 땐 이런 일도 있었다. 가을 문턱에 들어선 청량사를 한 시인과 함께 취재를 갔다. 정취에 흠뻑 빠져 ‘좋다 좋다’를 연발하고 있는 나에게 시인은 “혹시 부석사를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청량사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그에겐 청량사로는 성에 안 찼나보다. 궁금했다. “틈만 나면 부석사에 간다”는 그 시인의 말. 그때부터 부석사에 기대감을 품었던 것 같다.

    부석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사찰이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했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국내 절 7곳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부석사를 포함해 야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7곳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부석사 주차장 앞에는 커다란 인공폭포를 조성해 눈길을 끈다. 여느 관광지처럼 식당과 특산물을 파는 매대도 있었다. 그 앞을 지나자 곧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부터 일주문까지는 일자로 쭉 뻗은 은행나무 길이다. 노랗게 물들 가을 풍경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걷는다.

    일주문에 보면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라고 적은 현판이 걸려있다. 거리로 보면 소백산에 가까운데 왜 태백산 부석사라고 했을까. 김금순 부석사 문화관광해설사는 “태백산 마지막 자락에 봉황산이 있다.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도 크게 보면 태백산에 속한다. 그래서 부석사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한다. 일주문은 70-80년대 문화재 조성사업을 하면서 새로 지었다.

    부석사는 친절하지 않다. 천왕문을 지나고부터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폭이 일정하지 않아 걸음걸음에 조심하고 집중한다. 그렇게 관광안내소에 닿으면 드디어 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건물들이 가로로 놓인 것과는 달리 요사채 대부분 세로로 배치돼 카메라 앵글을 잡기에도 힘들다. 어쩐지 명성에 비해 규모도 작은 느낌이다.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다. 속세가 어떻든 개의치 않은 그런 담대한 모습을 가진 절, 부석사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먼저 부석사라는 이름부터 설명하자면, 부석浮石, 붕 떠오른 돌이라는 뜻이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부석의 이름에는 의상과 선묘(善妙)의 설화가 담겨있다.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떠난 의상대사. 중간에 원효대사는 ‘해골물 사건’으로 신라로 돌아오고 의상대사는 당나라로 갔다.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한 신도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그 집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게 됐다. 선묘는 존경하는 의상을 따라 불자가 됐고 의상은 당나라가 신라를 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귀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선묘는 의상대사가 무사히 신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됐다. 신라에 도착한 의상은 왕에게 당의 침략 계획을 이야기했고 문무왕은 의상에게 나라를 지키는 절을 지으라고 했다. 절터로 봉황산 기슭은 점찍은 의상에게 걸림돌이 있었다. 명당으로 소문난 이곳은 이미 이교도들의 차지였다. 의상이 “나라를 지키는 절을 만드려고 하니 자리를 내어달라”고 했더니 들은 척도 안하더라. 그때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가 큰 바위를 공중부양시켰다. 이것을 보고 이교도들이 마음을 바꿨다. 무량수전 왼편에 전설을 품은 바위가 있고 오른쪽엔 선묘 낭자를 기리는 선묘각이 있다.

    멀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

    올라오시느라 힘드셨죠.

    무량수전까지 오는 길에 문 말고는

    거의 모든 요사채가 세로 형태로 놓여 있어요.

    걸리는 거 없이 쪽 한번에 부처님께로 가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김금순 해설사가 말했다. 안내소와 석탑 사이 공터에 불러세워서 꼭 봐야 할 것이 있다며 무량수전 앞 안양루 처마를 가리켰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지붕 사이 구조물을 공포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보시면 공포와 공포 사이 공간이 마치 부처님이 좌선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우리 요즘 거리두기 하잖아요. 부석사에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 봐야 부처님 형상이 보입니다. 특히 늦가을에서 초봄까지 잘 보여요. 빛의 방향 때문입니다.” 해설을 안 들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포인트다.

    지장전 앞으로 난 경사로를 따라 범종루와 안양루 사이 ‘야단법석’에서 멈췄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뜻하는 ‘야단법석’은 사실 불교 용어다. 야외에 세운 단 이라는 뜻의 ‘야단’과 불법을 펴는 자리를 뜻하는 ‘법석’이 합쳐졌다. 좁은 법당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야단법석. 그 앞엔 범종루가 서 있고 계단을 오르면 무량수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안양루가 있다.

    “범종루 지붕을 한번 자세히 보시겠어요. 우리가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 이렇게 구성된 지붕을 팔작지붕이라고 부르고 용마루와 내림마루만 있는 건 맞배지붕이라고 하는데요. 범종루는 독특하게도 앞쪽은 팔작 뒤에는 맞배로 돼있어요. 뒤쪽지붕을 간결하게 해서 야단법석 하는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예요.

    천천히 스며드는 곳

    여행 전 주인공은 당연 무량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석사는 뜯어볼수록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해설사님의 설명에 젖어 자연스럽게 부석사에 스며들고 있었다.

    범종루를 지나면 안양문이다. 범종루 누각 밑 계단에 서면 액자에 담긴 안양루와 무량수전 지붕 그리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안양문은 ‘극락의 문’을 뜻한다. 안양문 누각에 부석사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뜰 부(浮) 자를 눈여겨 보시길. 삼수 변이 마치 스님이 합장하고 옆으로 선 모습처럼 보인다. 안양루는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천천히 오르셔야 돼요. 그리고 여기!

    안양루 계단에서 시간을 끄는 김금순 해설사. 이번엔 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자 여기서 석등 안을 바라보시면

    공민왕이 적은 ‘무량수전’ 현판이 보여요.

    계단을 오를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부석사. 마치 새로운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쯤 되니 계단이 고맙다. 온전히 부석사에 스며들도록 몰입을 도와주는 특수장치같다.

    드디어 만났구나, 석등을 뒤로하고 무량수전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1376년 중건했다고 하니 지금 모습은 아직 1000년이 되지 않았다. 소담한 건물은 물이 잔뜩 빠져버린 모습이었다. 명성에 비해 규모도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건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 세 가지 색뿐인데 그마저도 새로 칠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박제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돈으로는 꾸며낼 수 없는 효과다. 자연스레 시간이 흘러가면서 빚어낸 것이니까.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 위에 웅장한 팔작지붕이 얹어져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은 칸과 칸을 구분하고 지붕과 기단을 이어준다. 무거운 지붕을 받친 기둥이 불안정해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러 배가 볼록한 배흘림기둥을 썼다는 무량수전. 지붕과 기둥을 이어주는 공포 역시 묵직한 힘을 준다. 현판에서 멀어질수록 기둥 높이가 조금씩 높아진다. 이 역시 건물의 안정감을 위해서다.

    부석사의 마지막 반전은 무량수전 안에 있다. 아미타여래좌상이 희한하게 법당 정면이 아닌 측면에 앉아있다.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며 왜구를 처단한다는 의미도 있고, 신도들이 법당에 더 많이 앉을 수 있도록 측면으로 모셨다는 말도 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종가집 같은 곳이다. 화엄종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대적광전을 지어야 하지만 부석사에는 없다. 김금순 해설사는 “소백산 비로봉이 서남쪽에 있고 무량수전에서 절을 하면 자연스레 비로봉을 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쓸쓸한 것도 쓸쓸한대로

    지는 해를 받아들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처럼

    해설은 이쯤 마치고 혼자 카메라를 들고 무량수전 앞을 거닐었다. 여기서까지 각이 안 나올 줄이야. 안양루와 무량수전 사이에 있는 석등이 야속했다. 석등 때문에 정면에서 무량수전을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밀다가 결국 포기. 허탈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이번 부석사 여행을 관통하는 작은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이원근 제공

    카메라 든 손을 축 늘어뜨리고 오롯이 두 눈으로 주변 풍경을 훑었다. 먼 곳 소백산 자락들이 뭐 하나 튀는 곳 없이 유려한 능선을 그린다. 마치 밀려드는 녹색 파도 같다.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니 숨을 헉헉대며 울퉁불퉁한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힘들게 계단을 오를 땐 모르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걸음에 집중하면서 달라진 눈높이에 맞춰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눈에 담고 정진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바라던 그곳에 닿아있다.

    부석사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신기한 곳이었다. 내려가는 마음은 올라갈 때와 또 다르더라.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자리를 대단한 것으로 채워갈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차라리 덤덤했다. ‘아름다운 곳이고 대단한 곳이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 건 아닐까. (그렇다고 이 말이 부석사에 실망했다는 건 전혀 아니다!) 정작 부석사는 인간사 뭐라고 떠들어대든 하등 상관하지 않는 모습인데,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온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진=이원근 제공

    한 가지로는 설명이 안 되는 복합적인 감정 상태로 일주문을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길을 되돌아봤다. 방금 지나온 길인데, 한 치 앞도 모르겠는 건 처음 부석사를 향하던 마음과 꼭 같구나. 확실한 건 앞으로 부석사에 자주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짐인지 깨달음의 단서인지 모르겠는 그 무언가를 안고 부석사를 떠났다. 다음번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풍경을 보게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 부석사 여행정보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경북 봉화와 맞닿아 있는 영주는 경북에 있는 중소도시 중에 서울에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다. 서울시청에서 부석사까지는 차로 3시간이 걸린다. 특별한 영주 여행을 기대한다면 한국관광공사 대구경북지사, 영주시, 영주시관광협의회가 주최하는 ‘영주야 한밤에’ 여행 상품이 있다. ‘반차 내고 영주 여행’을 컨셉으로 오후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영주 부석사에서 일몰을 보고, 해가 진 뒤 소수서원에서는 별을 보고 11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하는 당일 프로그램과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6월 파일럿 상품으로 진행되는 ‘영주야 한밤에’ 모객 및 진행은 승우여행사가 독점한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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