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제맛 자작나무숲! 여름 휴가 때 가볼만한 덜 붐비는 ‘비밀의숲’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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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집 걸러 한 집, 24시간 문 여는 편의점이 있고 언제든 원하는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는 복잡하지만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은 왜 이리도 빨리 변하는지 적응하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리는 것을 보고 나이 먹음을 실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 집 앞으로 오는 로켓 배송이나 휴가와 일이 합쳐진 워케이션Worcation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뭐 세상이 그렇게 변해 간다니까… 그게 맞는 거겠지)

    무너진 경계가 혼란스럽고 속도에 뒤처져 어쩔 줄을 모를 때는 차라리 맘 편히 쉬어가는 게 맞다.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것도 좋겠다. 거창하게 ‘일(상)탈(출)’이라 적고 ‘여행’이라고 읽는다. ‘탈출’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여행지를 고심해서 골랐다. ‘대한민국에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다고?’ 국내에서 가장 깨끗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다는 경북 영양군으로 향했다. 여름밤 반딧불이가 불을 밝히고 깊은 밤 은하수 이불을 덮는 곳, 우리나라 오지 중의 오지로 꼽는다는 영양이다.

    영양군 제공

    원시림 속 꼭꼭 숨겨진

    자작나무숲

    영양은 여러모로 신기했다. 나름 오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데 바로 편의점이다. ‘CO’나 ‘세O일레븐’ 같은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영양 읍내에만 딱 5곳 있다. 해가 지기도 훨씬 전 마트는 문을 닫아버린다. (유럽보다 더하네) 대형 버스가 들어서면 밭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외지인을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 금강송 원시림 안에 숨겨진 새하얀 자작나무숲과 아시아 최초, 국내 유일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영양에서 보낸 1박 2일 ‘도피의 시간’을 소개한다.

    죽파리 영양자작나무숲의 가을과 겨울 [영양군 제공]

    영양 북동쪽을 감싸는 수비면은 울진과 경계를 하는 지역이다. 수비면 설명을 보면 ‘전체 면적 중 90% 이상이 산지, 모든 지역이 해발 430m 이상 되는 고랭지대. 지질은 대부분이 사질토양이나 척박한 편. 매년 서리가 일찍 내리는 관계로 작물에 냉해가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에 좋은 지역은 아닌 듯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수비면에서도 죽파리의 ‘자작나무숲’과 수하리 ‘국제밤하늘보호공원’ 딱 두 곳만 갔다. 낮엔 밤같이 어두운 원시림 속 자작나무숲을 만나고 밤엔 별빛이 훤히 비추는 하늘을 기대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을 보는 건 실패. 별은커녕 비 안 맞고 돌아다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 정도로 날이 궂었다.

    언제 장대비를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흐린 하늘을 머리 위에 지고 열심히 길을 달려 영양군에 다다랐다. 봉화를 지나고부터 길이 점점 험해진다. 원래 차멀미가 없는데 이 길은 심상치가 않다. 중앙선이 없어지기도 하고 외길 낭떠러지 구간도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 동안 진짜 오랜만에 멀미가 났다.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은 대형 버스가 신기하고 외지인들은 이런 길을 이 큰 버스가 통과할 수 있는 건지, 대체 어디까지 들어갈 참인지 궁금하다. 바깥 공기가 간절할 때쯤 버스가 멈춰섰다.

    죽파리 영양 자작나무숲의 밤하늘과 겨울 그리고 여름 풍경 [정종훈 해설사 제공]

    죽파리 ‘영양 자작나무숲’은 아직 공식 오픈 전이다. 2023년까지 영양군, 경북 남부지방산림청, 경북도 등이 함께 주차장·안내센터·휴게실·체험장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아직 날 것 그대로에 가까운 자작나무숲을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담당 공무원도 신기할 정도다. SNS 인증샷을 위해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여행족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부지런한 사람들.

    영양 자작나무숲이 알려진 건 2020년 산림청 지정 국유림 명품 숲에 선정된 영향도 있다. 산림청은 생태적·경관적 숲의 가치, 활용콘텐츠 등 숲 서비스, 숲 관리 등을 기준으로 전국 명품숲을 지정하고 있다. 더러는 영양 자작나무숲을 국내 최대규모 자작나무 군락지라고 한다. 국내 ‘자작나무 숲’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인제 원대리. 규모를 비교해보면 산림청 기준 홈페이지 기준 원대리는 6㏊, 영양 죽파리는 30㏊ 크기다. 조림을 시작한 건 원대리가 먼저다. 원대리는 1989년부터, 죽파리는 1993년부터다.

    앞서 말했듯 영양 자작나무숲은 아직 미완성이다. 시작점은 ‘죽파리 장파경로당’. 이곳에 차를 대놓고 트레킹을 시작하는데, 자작나무 숲이 워낙 깊은 곳에 있어 입구까지 약 4.5㎞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다행인 건 길이 거의 평지라는 것. 우거진 금강송숲 계곡 길을 따라 시원하게 걷는다. 평일 오후, 날까지 궂어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검마산(1017m)에서 유명한 건 서쪽 자락의 자연휴양림이고 남쪽 자락 자작나무숲은 이제 막 발굴된 곳이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다가다 심심치 않게 사람들을 마주쳤다. 편한 복장의 현지인들이었다. 죽파계곡(장파천)을 따라 물가엔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가 그늘을 내어주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우거진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전날 내린 비 전체적으로 축축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소나무 밑동에 골이 옴폭하다. 전날 내린 비를 잔뜩 머금어 색이 짙다. 멀리 서 보면 (상상력을 약간 더해) 호랑이 등가죽 같기도 하다.

    호젓한 숲길을 걸어 드디어 자작나무숲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은 색다르게 자작나무숲을 보는 방법을 알려드릴 거예요.”

    정종훈 해설사가 배낭에서 주섬주섬 거울과 볼펜, 자작나무 수피를 꺼내 나눠준다. 정종훈 해설사를 따라 거울을 위로 향하게 해서 숲을 본다. 손바닥만 한 거울 안에 빽빽한 자작나무 숲이 야무지게 담겼다. 아예 바닥에 누워서 올려다보는 거랑은 또 느낌이 다르다. 이번엔 반대로 거울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다. 하늘에서 숲을 내려다보는 새의 시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단다. 간단한 장치인데 무척 색달랐다. 앞으로 자작나무숲에 갈 때 꼭 거울을 챙겨야겠다.

    30년이 넘은 자작나무숲은 나무도 빽빽하고 숲 자체로는 무척 좋았지만 작년 태풍 피해로 인해 정비가 필요해 보이는 구간도 있었다. 일행 중 “데크를 깐다거나 하지 말고 그냥 지금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작나무는 묘하다. 하얀 수피도 그렇지만 기둥 곳곳에 난 생채기 같은 것이 더 신경 쓰인다. 어떤 건 꼬리가 긴 사람 눈매처럼 생겼다. 자작나무는 위로 자라나면서 아래쪽에 붙은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린다. 이때 남은 가지의 흔적을 ‘지흔’이라 부른다. 가지가 떨어진 자리가 검게 변하고 주변으로 자글자글한 가로줄이 생기면 마치 커다란 눈처럼 보인다. 지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다가도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분 탓이겠지.

    숲 해설이 끝나고 정종훈 해설사가 직접 만들었다는 자작나무차를 나눠줬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본 자작나무숲 풍경

    흔히 자작나무숲이 가장 좋은 계절을 겨울로 꼽지만 나는 여름이 더 좋다. 파란 이파리들이 가장 빛나는 건 여름 햇빛 아래서다. 청량한 여름 바람에 몸 터는 소리가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다. 정종훈 해설사는 ‘가을’도 추천한다. “자작나무는 가장 일찍 단풍이 드는 나무 중 하나예요. 노랗게 이파리가 물들면 참 예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깨끗한

    밤하늘

    이번 영양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이었다. 날씨가 안 따라줬다. 별을 보러 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숙소도 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영양군생태공원 사업소 내 펜션으로 잡았는데 말이다. 펜션은 천문대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었다.

    왼쪽 사진 영양군 제공

    수비면 수하리 일대는 2015년 아시아 최초로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어요.

    국제밤하늘협회(IDA)가 전세계에서 별빛이 밝은 밤하늘을 선정해 공원으로 지정하는 제도인데요.

    수하리 일대는 실버 등급(빛 공해 및 타 인공조명으로부터 영향이 적은 양질의 밤하늘)을 받았습니다.

    정종훈 해설사

    영양군 제공

    반딧불이 천문대는 2005년에 문을 열었고 작년에 리모델링을 거쳐 시설을 보수했다. 천문대의 꽃은 역시 망원경. 7m 돔으로 꾸며진 주관측실에는 600mm 반사망원경이 설치돼있다. 돔을 설치하고 망원경을 들여놓는데 총 2억원이 들었단다. 보조관측실에는 추가로 망원경 5대가 설치돼있다. 아쉽게도 이날은 날씨가 안 좋아 관측을 할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일행에게 천문대 박찬 담당자는 “꼭 다시 오라. 별을 보는데 계절보다는 날씨가 더 중요하다”며 “은하수를 관찰하기엔 여름이 좋다”고 말했다. 반딧불이 천문대는 주간(오후 1시~6시) 야간(오후 7시30분~10시)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주간에는 천문대 천체투영실 + 별생태체험관, 야간에는 천문대 위주로 투어가 진행된다.

    주관측실 망원경

    천문대에서 다리를 건너면 정종훈 해설사가 추천한 반딧불이 관측 포인트가 나온다. 초여름 모습을 보이는 건 애반딧불이. 오후 9시 반에서 11시까지 볼 수 있다. 늦반딧불이는 8월에 볼 수 있다. 애반딧불이는 깜박이는 불빛을 내고 늦반딧불이는 깜박이지 않는다. 반딧불이가 불빛을 내는 건 짝짓기를 위해서다.

    천문대 주변 풍경. 민가도 거의 없는 외진 곳이다.

    예전엔 너무 흔해서 개똥벌레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빛 공해가 많아져서 잘 볼 수 없네요.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시골 고모네 아니면 외할머니댁이었을 거다. 원두막일 수도 있고 마당 평상 위였을지도 모른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데 파란 그물 모기장 밖으로 연두색 작은 빛이 날아다닌다. ‘저게 뭐야?’ 입술을 떼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무거워진 눈꺼풀이 나도 모르게 자꾸 내려앉는다. 어렴풋해서 이게 진짜 겪은 일인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인지 모를 풍경이 떠올랐다.

    영양군 제공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본 적 있지. 너 5~6살 때 외할머니랑 같이 시골 살 때도 그 동네에 반딧불이 많았어. 근데 갑자기 왜?” 궁금증이 해소되고 나서야 엄마의 잠긴 목소리가 들린다. 시간을 보니 거의 자정에 가까워졌다. 상황을 설명하고 급히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해. 근데 밥은 먹었어?”라며 시작된 엄마의 고정 멘트. 떨어져 사는 딸의 전화가 내심 반가웠는지 미주알고주알 옛날이야기를 쏟아내신다. 별도 반딧불이도 못 봤지만 어쨌든 추억 여행에는 성공했다며 영양의 긴긴 까만 밤을 보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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