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6회 등정’ 전설과 함께 지리산을 오르다…허영호 대장의 모험과 도전, 그의 극지탐험 스토리!

    - Advertisement -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 국립공원관리공단

    9월의 지리산은 편안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여전히 짙은 녹음과 경쾌하게 질주하는 계곡물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반야봉 정상은 구름과 안개에 둘러싸여 근사한 조망은 힘들었다. 먼 곳을 보지 못하는 대신 가까이 피어있는 주변 꽃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 시국에 ‘허영호 대장과 함께하는 지리산 생태탐방 트레킹’은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산행 중간중간 이어지는 지리산 이야기와 허 대장의 극지 탐험담은 탐방객들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종일 웃음과 감탄사가 끊이질 않은 유쾌한 산행이었다.

    허영호 대장이 트레킹 출발 전에 주의 사항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 아래 오른쪽)

    허 대장과의 지리산 트레킹은 국내 1호 공정여행사 착한여행과 지리산 생태탐방원이 올 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그램. 7월 중순께 1차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매월 한 차례씩 총 6차례 진행된다. 세계 최초 3극점(에베레스트, 남·북극)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국내 대표 산악인과 함께 지리산을 오른다는 이 가슴 뛰는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과 늦장마로 1, 2차 산행이 취소되자 과연 이 프로그램이 시작은 할 수 있는 것인지 걱정이 커졌다. 그러다 3차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냉큼 남원행 KTX 표를 끊었다.

    트레킹 구간은 성삼재에서 출발해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까지 약 9시간 정도 걸리는 왕복 16km 코스다. 난이도는 조금 어려운 정도. 특히 반야봉 직전 마지막 1km가 상당히 가파르다. 지리산 생태탐방원에서 간이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성삼재로 이동한 다음 운해 기운을 받으며 상쾌하게 출발했다. 지리산은 시기적으로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푸르름은 성하 못지않았다. 탐방로 주위에는 가을을 알리는 산꽃들이 수줍게 방문객들을 맞았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산오이풀, 투구꽃, 벌개미취, 짚신나물꽃, 왜우산풀과도 인사를 나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무넹기고개 계곡수가 힘차게 흘렀다.

    한 탐방객이 “도대체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과연 그렇다. 생김새만 보면 둘은 정말 똑같다. 동행한 자연환경해설사가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기본적으로 구절초는 흰 꽃이고 쑥부쟁이는 연한 보라색이다. 하지만 꽃잎 색깔이 변한 구절초는 쑥부쟁이와 헷갈릴 수 있다. 두 꽃을 제대로 구분하려면 잎을 보면 된다. 구절초 잎은 한갈래로 길쭉하게 나 있는 반면 쑥부쟁이 잎은 마치 쑥처럼 생겼다. 잎에서 오이 냄새가 나는 산오이풀, 뿌리에 맹독 성분이 있어 집에 걸어두는 것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투구꽃 등 재미있는 야생화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넹기고개에서 콸콸콸 굽이치는 물길을 보니 없던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올라 노고단대피소에 닿았다.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고(향후 5시간 동안은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볼일을 보는 게 좋다) 마고 할머니 배웅을 받으며 반야봉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반께 임걸령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 시간. 당을 충전하면서 허 대장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름하여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1박 하기 대작전’. 지난 2017년 그는 개인 통산 여섯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그의 나이 63세, 국내 최고령 등정이었다. 게다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을 때다.

    허영호 대장이 극지탐험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있다.

    허 대장은 “오래전부터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1박 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왜?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올라가는 팀이 있고 날씨 상황 등 변수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바란다고 이룰 수 있는 희망사항은 아니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2017년 등정이었다. 동행한 셰르파에게 1박 제안을 했고, 흔쾌히 동의를 받았다. 오전 7시쯤 정상에 올랐다. 칼바람이 몰아쳤다. 정상 기온은 보통 영하 35도.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 40~50도까지 내려간다. 텐트를 쳤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한 겨울에도 텐트 안에서 물을 끓이면 내부 온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텐트 안에서 물을 끓였는데 내부 온도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바깥이나 텐트 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대체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허 대장은 그래도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심박수를 체크하는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박수 오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텐트 안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데 심박수는 계속 올라만 갔다. 4시간 정도 지나자 130까지 올랐다. 더 이상 머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허 대장은 “40대였다면 모험을 감행했을 거 같은데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고 아쉬워했다.

    임걸령 샘물(왼쪽)과 꿀맛 나는 산행식

    반야봉 정상까지 마지막 1km는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정상에 올랐을 때 시간은 오후 1시 반쯤. 출발하고 4시간여 걸렸다. ‘반야봉 1792m’라고 씌어진 정상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시원했다. 땀이 증발하면서 살짝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사방은 운해로 가득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청명한 날에는 노고단은 물론 멀리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봉을 한눈에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정상석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꿀맛 나는 점심을 먹고 하산을 준비했다. 내려오는 길, 임걸령에서 차가운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켰다.

    에베레스트 봉우리(왼쪽) 극지탐험 강연을 하는 허영호 대장

    지리산 생태탐방원이 녹초가 된 탐방객들을 반갑게 맞았다. 정갈한 방과 잘 갖춰진 각종 편의 시설에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허 대장의 극지탐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스토리는 어느 하나 긴박하지 않은 게 없었다.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강연 내내 이어졌다. 몸이 천근만근 피곤했는데도 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날 강연은 바로 조금 전까지 9시간 가까이 함께 산행하고 마련된 자리여서 분위기부터 달랐다. 외부 강연자와 관객이라는 딱딱한 거리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북극해 횡단 중 나타난 북극곰(좌상) 썰매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우상) 허 대장 팀이 북극점에 도달해 사진을 찍고 있다. / 허영호 대장

    “지금까지 수많은 극지탐험 가운데 가장 지독한 게 어떤 것이었나요?”라는 질문에 허 대장은 망설임 없이 “1995년 북극점을 경유하는 북극해 횡단”이라고 답했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캐나다까지 1,800km를 한 사람당 180kg씩 나가는 짐을 썰매에 싣고 걷는 대장정이었다. 그가 걸었던 루트는 길이 아니었다. 마치 폭격당한 건물 잔해와 같은 얼음들 사이를 넘어가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런 ‘난빙’ 구간에서는 하루 1~2km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단단한 빙판만 놓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얼음이 깨져 바닷물에 빠지는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그 험한 길을 꼬박 99일 동안 걸었다.

    201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허영호 대장 / 허영호 대장

    허 대장은 여전히 목이 마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다. 그중 하나는 경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면서 그가 지금까지 달성한 7대륙 3극점을 다시 한번 오르는 것이다. 그의 비행기가 여주에서 모험에 나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허 대장은 “20억 정도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후원이 성사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 새로운 기록을 세워보고 싶다”고 했다. 왜 그렇게 무모하게 위험을 무릅쓰는지 물었다. 허 대장은 “탐험의 목적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도전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런 도전이 역사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보다도 한참 어린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어떤 도전을 그리고 있는가. 조바심이 났다. 아니, 나는 또 나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최용성 여행+ 기자


    - Advertise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