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을 따라, 부산 속 재생 공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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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떤 시작은 작은 바람에서 피어난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밝고 화려한 공간보다는 조용하지만 따뜻함이 묻어있는 공간을 찾아내고 싶었다. 머리를 쥐어짜 찾은 주제는 바로 ‘무언가를 개조한 공간’. 시간이 스쳐간 공간은 본연의 묵직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산에서 찾아낸 이 공간들은 촌스럽지만 새롭고, 낡았지만 신선하다. 버텨낸 세월만큼 기묘하고 불완전하다. 장소마다 살펴볼 포인트가 많아 2편으로 나눴다. 1편에서는 숙소와 해변 열차를, 2편에서는 복합문화공간과 맛집을 소개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바라는 부산의 낭만적인 장소들이다.


    01

    심해(深海)를 닮은 공간,

    우리가 만들고 싶은 집

    WETEVER


    외지인으로 늘 붐비는 광안리 카페거리에서 2분.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작은 주차장을 따라 꺾어 들어간 곳에 웻에버가 있었다.

    바닷가 근처의 한적한 낡은 주택이면 좋겠어.

    붉은색과 검은색 벽돌과 묘하게 힙한 나무 문과 창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웻에버를 기획한 27club은 바닷가 근처 낡은 집을 원했다. 100개의 가까운 주택을 찾아다니며 골라 개조한 공간이 이곳이다. 낡은 집의 가치에 집중해 1960~70년대 미국 가정집을 닮은 웻에버를 완성했다. 햇빛은 잘 드는데 축축하게 젖은 듯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복도에 사용하는 폐목을 재활용했고 꼼꼼히 코팅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느껴지는 나무의 질감이 익숙한 듯 낯설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거실이 반겼다. 이 공간은 웻에버를 조사하며 가장 많이 본 사진 속 배경이기도 했다. 어두운데 채도는 빠진 청록색 벽지와 꽃무늬 소파, 나무 바닥과 테이블,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흐린 날이어서 일조량이 많진 않았지만 웻에버와 어쩐지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오래된 집을 개조했다고 해서 냄새가 나거나 습도가 높진 않을지 우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가 돼있어 만족스러웠다. 거실과 방 곳곳에 자리를 잡은 식물들이 쾌적한 습도를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손이 닿을만한 공간마다 놓인 책들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테리어 효과는 덤.

    3층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킹사이즈 침대가 자리 잡은 이 방에 ‘안방’ 타이틀을 달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도 이 방에 들어서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벽에 꽂힌 책들이 말을 거는 듯하다. 플라워 패턴의 실크 벽지와 어두운 갈색의 빈티지 가구가 대비를 이뤄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느낌을 저장하고 싶어 자꾸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웻에버에 머무는 동안 감각 좋은 큐레이터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심심할 때면 침대 머리맡과 책상 위에 각각 놓인 책들을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여백인가 싶은 공간에 붙어있는 엽서도 지루함을 덜어줬다. 혼자 방문했지만 누군가 함께인 기분. 메마른 감성이 어느새 충전됐다.

    작은방에는 싱글 침대 하나와 옷걸이, 에어컨, 그리고 역시나 식물과 책이 있었다. 방구석에는 사진 작품과 레트로 포스터, 구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램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방은 아담한 사이즈지만 충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속적인 컨디션 유지를 위해 건물 내 취사는 전면 금지돼 있다. 전자레인지, 전기 포트를 이용한 간단한 조리, 음식을 포장 및 배달해 먹는 것은 가능하다. 바닥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코팅된 나무 선반은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선반 안에 다양한 종류의 와인잔과 음료 컵, 그릇이 구비돼 있다. 싱크대가 깊은 편이라 밖으로 튀는 물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웻에버는 웰컴 티로 베르크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한다. 서울에서 소위 힙하다고 하는 카페를 갈 때마다 베르크 원두가 보였던 기억이 나 괜히 반가웠다. 베르크 로스터스는 맛과 질감을 위해 생두, 로스팅, 추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전문성을 가지고 커피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서도 웻에버 운영자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샤워 공간과 화장실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 하지만 오래된 집 구조상 이 둘을 분리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어메니티는 이솝 제품을 쓰고 있고 샤워 타월, 수건, 드라이기, 칫솔, 치약이 구비돼 있다. 세면 공간은 앞에서 살짝 봤듯이 거실 구석에 위치한다.

    하절기에는 옥상에서 바비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사용 비용은 2만5000원이며 이용 시간은 오후 10시까지. 그 옆에 위치한 작은 옥탑방의 정체는 ‘예술가의 캐빈(Artist’s Cabin)’이다. 젊은 예술가의 작업실을 모티브로 제작된 전시 공간이다. 6개월을 주기로 영 아티스트의 전시가 펼쳐진다.

    오는 7월 15일까지 작가 엄주의 ‘어 드리머(A Dreamer)’ 전시를 진행한다. 그의 습작들과 메모,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으로 꾸며졌다. 벽에는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 포스터가, 의자와 창틀에는 책이 놓여 있다. 마치 작가의 작업실에 몰래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든다. 본 전시는 웻에버를 이용하는 숙박객들만 관람할 수 있다.

    숙소를 고를 때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는 곳인지 꼭 따져보는 편이다. 웻에버에는 120인치 스크린이 있어 영화를 즐기기 참 좋다. 불을 끄고 빈티지 소파에 반쯤 누워 영화를 보면 마치 이곳이 영화관 같다. 빈티지 턴테이블에 좋아하는 장르의 LP 판 한 장을 올리면 분위기가 더 촉촉해질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수리 중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stayfolio

    웻에버는 레트로 영화와 응답하라 시리즈 그 사이에 위치한 공간 같다. 머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게 있었어?’‘나 이거 아는데’ 를 반복하게 만든다. 이곳을 기획한 27club은 앞으로도 문화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낙후된 건물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대중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적어도 뻔한 작품은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의 야심찬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웻에버’는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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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파란 하늘과 바다가 숨 쉬는 곳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동해남부선 옛 철도시설을 재개발한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는 4.8km 길이로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 송정에 이른다.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30분,

    일부러 느린 열차를 탄 이유는 오직 바다였다.

    두 번째 장소는 옛 동해남부선 미포 철길에 열차 시설을 조성한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솔직히 말하자면 첫인상은 평범했다. 관광지에 가면 꼭 하나씩 있는 OO 열차를 떠올렸기 때문. 해운대 블루라인은 해변 열차와 스카이 캡슐로 나뉜다. 해변 열차는 미포~청사포~송정 구간을, 스카이 캡슐은 미포~청사포 구간을 운행한다. 에디터는 스카이 캡슐을 선택했다.

    한 줄로 서서 기다리다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68번 노란색 스카이 캡슐에 탑승했다. 스카이 캡슐의 가장 큰 장점은 단독으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중간에는 소지품을 올릴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있고, 등받이 뒤로 안내문과 비상 정지 버튼이 있다. 비상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무전기가 있어 더욱 안심할 수 있었다.

    약간의 덜컹거림과 소음은 철길 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줬다. 오래된 철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분명히 달랐다. 지층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고로 해변 열차의 미덕이란 넓은 바다를 어떠한 방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면이 큰 창문으로 뚫려있어 속 시원한 오션뷰를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햇빛이 마구 쏟아질 테니 선글라스를 챙기는 것도 좋겠다. 창문이 큰 만큼 햇볕이 잘 들고, 이는 곧 사진이 잘 나온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는 캡슐마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연인들이 가득했다.

    해변가에서 절대 찍을 수 없는 사진. 창문 밖으로 찍은 사진은 어색하거나 반사되는 경우가 있는 법인데 스카이 캡슐에서 찍은 사진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이 취미인 분들이라면 반드시 찍고 가야 할 코스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니 30분이 금세 흘렀다. 정거장에 도착하면 여러 색의 캡슐을 만날 수 있다. 레트로 스타일로 꾸며진 열차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 아닐까. 다른 열차와 가까워질 때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청사포 해변의 일출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는데 초저녁에 저녁달이 뜨는 모습 역시 부산 팔경으로 꼽힌다고 한다.

    빨간 등대와 하얀색 등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등대를 뒤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마을은 국토교통부가 주최하는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대통령 상을 받은 국내 관광명소이다. SNS를 확인해보니 이 등대 앞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려고 청사포 정거장에 내리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다시 미포 정거장으로 돌아가는 길. 철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평소와는 다른 구도를 시도할 수 있었다. 나무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구도만 바꿨을 뿐인데 드넓은 해운대 바다가 조금은 작아 보였다. 구도가 달라지니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독특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운다.

    바닷바람이 느끼고 싶을 때는 큰 창문 사이에 위치한 세로로 긴 창문을 밀면 된다. 안전상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열리며 반 자동이라 큰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답답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 섬세한 배려가 만족도를 높이고 재방문을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열차를 빠져나오며 담당자분에게 추천 코스를 살짝 물어봤다.

    담당자가 추천하는 해운대 블루라인 코스는?

    송정 정거장에는 대형 버스도 주차할 수 있을 만큼 큰 주차장이 있다. 차를 가져왔다면 이곳에 주차해두고, 해변 열차를 타고 미포 정거장으로 오며 바다를 실컷 감상한다. 그리고 미포에서 스카이 캡슐을 타고 청사포 정거장으로 이동한 뒤, 주변 관광지를 구경한다. 사진도 남기거나 식사를 한 뒤 다시 해변 열차를 타고 송정 정거장으로 이동하면 미포~청사포~송정 일대를 꼼꼼히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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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서 계속>

    글 / 사진 = 정미진 여행+ 에디터

    취재협조 = WETEVER(웻에버),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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