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가지 않을래? 이때 아니면 못 보는 소수서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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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와도 연이라는 게 있나 보다. 그동안 경북 영주에 갈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때마다 일이 생겨 매번 불발됐다. 세 번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이쯤되면 포기!”를 외치고 내려놓게 됐다. 천년 넘은 절이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그렇게 잊고 있는 사이 영주에 겹경사가 생겼다. 1년 차이로 부석사(2018년)과 소수서원(2019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다시 영주 여행을 결심한 건 유네스코 등재 뉴스도 아니고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띵동 –

    “별 사진 찍으러 갑시다.”

    처음 보는 앵글이었다. 고즈넉한 고택 뒤로 군청색 하늘이 펼쳐지고 별이 총총하다. 그 아래 조명을 독차지하고 선 나무 한 그루는 영롱하다. 밤하늘보다 더 검은 소나무에 곧 집어 삼켜질 것만 같다가도 곧 밝아올 아침을 그 어떤 생명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맞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 한 장에 “가겠다”고 먼저 말하고 “근데 어디에요?”를 물었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동행이 있었다. ‘영주야 한밤에’ 여행 상품을 기획한 승우여행사 이원근 대표와 함께였다. ‘반차 내고 영주 여행’을 컨셉으로 오후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부석사에서 일몰을 보고, 해가 진 뒤 소수서원에서는 별을 보고 11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하는 당일 일정과 1박 2일 중에 고를 수 있다. 영주시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승우여행사에 6월 독점으로 소수서원을 야간에 개방해준다. 상품 출시를 앞두고 특별히 여행+가 소수서원의 비밀스러운 밤에 초청받았다.

    하버드보다 93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 사립대학

    소수서원으로 향하는 길엔 울창한 소나무숲이 맞아줬다. 본래 소수서원이 생기기도 전부터 있었던 소나무 밭이랬다. 수령 300년에서 길게는 1000년에 가까운 적송들이 서원을 에워싼다. 추운 겨울에도 항상 푸른 소나무가 선비의 기개와 닮았다 하여 ‘학자수’라고도 불린다. 소나무숲은 시시각각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숲을 관통하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때문에 소나무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날이 궂어 안개라도 덮이는 날엔 어떨까. 한폭의 수묵화로 변해버릴 풍경을 상상해본다.

    소나무길이 끝나는 곳에 당간지주(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깃발을 거는 기둥)가 보인다.

    영주에는 당간지주가 모두 3개가 남아있어요.

    비로사, 부석사 그리고 이곳입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지어진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어요.

    1457년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순흥(영주의 옛 지명)도호부가 폐부될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정호 해설사가 말했다.

    옛 절터에 서원이 지어진 연유는 무엇일까. 숙수사와 소수서원의 연결고리는 바로 회헌 안향선생이다. 안향이 어린 시절 숙수사에서 공부해 18세 과거에 급제했고 그의 아들과 손자도 숙수사에서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2년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만들고 양반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으면서 우리나라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 )의 효시가 됐다.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왼쪽 사진) 서원정자로 가장 오래된 겸령정과 500년 된 은행나무(오른쪽 사진)

    옛날 순흥은 엄청난 부촌이었어요.

    기와집이 10리나 이어졌대요.

    태평하던 마을에 피바람이 분 건 단종복위운동 때 연루가 되면서였어요.

    순흥에 유배와있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했는데

    관노가 밀고를 하면서 그만 일이 잘못된 거죠.

    세조 3년(1457년) 금성대군을 도와 반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순흥 마을 유생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화를 당하는 ‘정축지변’이 일어났다. 순흥 사람이라면 3살 이상 남자는 모조리 죽였다. 소수서원 앞으로 죽계천이 흐르는데 이곳에 시신을 수장시켰단다. 핏물이 10리 흘러가 멎었다는 곳에는 ‘피끝동네’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서원으로 들기 전 입구 오른편으로 경렴정이 보인다. 주세붕이 지은 정자로 국내 서원정자로는 가장 오래됐다. 그 옆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서원이 세워질 무렵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을엔 어김없는 사진 포인트다.

    소수서원으로 드는 지도문,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강학당이 보인다.

    지도문을 통과해 서원 안으로 들었다. 정면에 강학당이 가장 먼저 보인다. 학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공간이다.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강학당 왼편으로는 문성공묘가 있다. 이곳에서는 회헌 안향, 안보, 안축, 주세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문성공묘

    묘(廟)는 종묘같이 왕의 위패를 모신 곳에만 붙여요.

    보통 사당에는 사(祠)를 붙여요. 현충사처럼요.

    하지만 여기는 문성공묘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안향은 고려 충렬왕 때 사람이다. 안향이 왕과 공주를 데리고 중국을 갔을 때 주자학을 처음 접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책을 사고 구매할 수 없는 것은 직접 필사를 해서 가지고 왔다. 불교라는 종교가 아닌 학풍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안향은 고려에 주자학을 보급했고 후에 그의 뜻을 받드는 성리학자들이 모여 조선을 세우게 된다. 주세붕과 퇴계 이황이 소수서원에 각별함을 쏟은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

    왼편의 장서각과 오른편의 직방재, 일신재. 그 사이 은행나무가 빛을 받아 오묘한 색을 뽐낸다.

    문성공묘 오른편으로 아담한 장서각이 보인다. 책을 보관하던 공간이다. 직방재와 일신재는 유생과 교수들의 생활공간이다. 건물을 마주보고 오른편에 일신재, 왼쪽에 직방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 안향·주희·이원익·주세붕·이덕형·허목의 초상화를 봉안한 영정각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소수서원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서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양반의 자제 중 초시나 행시에 합격한 이들만 가능했다.

    안향과 주희 등 초상화를 모신 영정각

    성균관이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학교였던 셈인 거죠.

    학생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교수는 두서너명, 학생은 최대 11명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서원 밖에서 사숙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대요.

    해설사와 동행해 소수서원을 전부 둘러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봄볕에 사로잡힌 소수서원은 치열한 면학의 공간이라기보다 분위기 있는 별장 같았다. 담장만 나가면 울창한 나무들과 맑게 흐르는 죽계천이 맞아준다. 소수서원에 발을 디디고 한 시간 남짓이 흘렀을까. 소나무 그림자가 조금 더 길게 드리워졌다.

    찬란한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

    드디어 소수서원의 밤을 열 시간이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이원근 대표와 함께 다시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핸드폰 조명으로 불을 밝히고 관리인을 따라 소나무길을 걸어 들어간다. 시커먼 어둠과 간간이 켜진 조명에만 의지해 밤길을 걷는다. 사위는 고요하고 발걸음에 흙이 긁히는 소리뿐이다. 소나무 길이 끝나고 하늘이 열린다. 발걸음을 멈추자 물소리가 들린다. 낮에 들었던 ‘정축지변’ 당시 죽계천 비극이 생각났다. 괜히 등 뒤가 서늘해졌다.

    굳게 닫힌 지도문을 열고 소수서원을 마주한다. 건물 일부에만 조명을 밝힌 상태라 아예 깜깜하지는 않다. 주변 시야를 가리는 산이 없어서 하늘이 통째로 보인다. 산과 산이 아닌 처마와 처마 사이로 밤하늘이 보이는 게 독특하고 황홀하다. 별 보려면 산꼭대기 높은 곳으로만 가야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뷰도 가능하다. 고개를 들어 별을 보다가 목이 아프면 시선을 똑바로해 주변을 살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보이는 것이 달라지니 생각도 달라진다. 가만히 앉아 그 옛날 유생들의 밤을 상상해본다. 찬란한 아침을 기다리며 견디는 밤의 시간. 600여 년 소수서원에서 품었던 꿈들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흩뿌려진 듯 하다.

    ◆ 영주야(夜) 한밤에

    경북 영주시가 영주시관광협의회, 승우여행사와 협업을 통해 출시한 문화유산 관광 + 야간여행 상품. 천년고찰 부석사의 아름다운 낙조와 최초로 공개되는 소수서원의 별빛경관을 볼 수 있는 야간여행이다. 당일코스는 부석사와 소수서원의 야간여행으로 진행되며, 숙박코스는 영주 선비촌 한옥에서 숙박하며 육지 속 섬마을 무섬마을이 추가된다. 6월 4일을 시작으로 한 달간 총 20회(당일 12회, 숙박 8회) 진행된다. 1인 당일코스 4만9000원(매주 금·토·일요일), 숙박여행은 13만9000원(4인1실 기준, 매주 금·토요일). 모든 여행객에게 1만원 상당의 영주사랑 상품권 제공.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1회 최소 12명부터 최대 25인까지 진행.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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