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수도’ 목포 원도심 돌고 먹어야 할 2가지

    - Advertisement -

    아픈 역사와 극복 의지 공존하는 공간

    해상케이블카, 코롬방제과 외 볼거리 풍성

    윤여정도 맛본 총리밥상 먹은 후에는

    할머니 바리스타 찾아가 가성비甲 후식

    “멀리서 보면 뉴질랜드나 호주의 다운타운인 거 같은데, 실상은 올드타운이었어요.”

    홍동우 괜찮아마을 공동대표는 노적봉에서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며 전체적인 인상을 설명했다. 본격 투어에 앞서 그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봐달라”고 했다. 목포가 고향도 아니면서 5년 동안 목포에서 먹고 자며 정착한 ‘서울 촌놈’의 시선을 주목해달라는 의미였다. 홍 대표는 익스퍼루트라는 여행사를 차려 젊은이들과 전국을 누빈 거리만 지구 2바퀴이고, 함께 한 여행자만 1300여 명이다. 타지에서 온 여행전문가이자 이제는 ‘목포의 사위’인 홍 대표를 제안대로 따라보기로 했다. 원도심 투어 끝에는 ‘남도맛기행’이 있는 감칠맛 나는 여행이었다.

    홍동우 괜찮아마을 공동대표가 목포의 원도심 여행을 개괄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 ‘목포의 사위’와 원도심 여행

    목포 여행의 출발점은 노적봉이다. 목포는 일제 수탈의 역사 이전에 왜란 극복의 선봉에 섰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홍 대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틀어줬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유나 볼빨간사춘기 급이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2절 가사를 읊었다. 첫 소절이 “삼백년 원안풍(鴛鴦風)은 노적봉 밑에”인데 원안풍은 일제의 검열를 피하기 위한 가사였다. 모두가 “원한 품은”이라고 불렀다.

    노적봉을 자세히 보면 사람 얼굴 형상이 숨어있다. 하늘을 향해 고함을 치는 모습이라고 한다.

    노적봉에 대한 홍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목포의 눈물이 나온 1935년의 정확히 300년 전에 고하도에 이순신이 왔다. 고하도에 머물면서 신안군 1000개의 섬을 관찰하며 왜군에 반격할 토대를 닦았다. 노적봉에 볏짚을 덮어 쌀가마니가 쌓인 것처럼 보이게 해 병사가 많은 것처럼 꾸몄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으로 거쳐 고하도에 내리면 판옥선 모양을 형상화한 고하도 전망대가 있다.

    노적봉 전망대에서 목포 바다를 바라보면 원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홍 대표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운 1987년 자주적 항구로 목포를 개항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1900년 일본 영사관이 만들어졌다. 일본 노동자와 관료들이 이주해왔다. 한때 일본이 지은 건물을 없애자는 얘기도 있었다”고 했다. 심상소학교에 일본인 교장이 생일 선물로 받은 호랑이 박제는 불갑산에서 잡힌 마지막 호랑이다. 일본인 목재상이 지은 이훈동 정원은 모래시계와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을 촬영했다. 2000평이 넘는 정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소나무는 감정가가 최저 5억이라고 했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개성 강한 건물들 간단히 소개만 들어도 끝이 없다.

    노적봉에서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적산가옥과 일제가 지어놓은 건물을 보이지만, 일제 이전의 목포와 해방 이후의 목포가 엄연히 공존한다. 그 속으로 발길을 옮겨보았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처음에 일본 영사관이었다. 전범기 문양이 남아있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노적봉에서 내리막길로 처음 만나는 대표적인 유산이자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다. 만들 땐 일제가 목포를 한눈에 감시하고 관리했던 일본 영사관이었다. 해방 후 시청이었다가 도서관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목포 할아버지는 시청으로 기억하고, 아주머니는 도서관으로, 학생들은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알고 있다.

    홍 대표가 창문 위에 문항을 가리키면서 “전범기가 남아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전범기 안에 있는 문항이 꼭 목포의 포 같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학술적 근거는 전혀 없는, 독창적 해석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박물관에 파편 자국은 한국전쟁 중에 남았다. 총탄을 보관하고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 옆자리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박물관 앞 도로 바닥에 표식이 있는데, 한반도 1호 국도와 2호 국도의 출발점이다. 1번 국도 목포에서 대전 서울 찍고 신의주까지 이어지고, 2번은 부산 방향이다.

    예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쓰인 건물인 목포근대역사관 2관을 지나면 곳곳에 적산가옥이 남아있다. 그중에는 배우 허장강의 처갓집이자 배우 허준호의 외갓집도 있다.

    갑자옥모자점에 붙은 옛날 사진을 보면 건물 자체는 거의 똑같다. 다만, 지금은 2층처럼 빈 공간이 많다.

    원도심 투어의 끝은 오거리다. 일제강점기 오거리를 기준으로 북쪽엔 한국인이 살았고, 남쪽에는 일본인이 살았다. 일본인 거주지역은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주먹패들이 조합을 만들어 상권을 지키고 조선사람을 보호했다. 나름 정의로운 주먹들은 해방 후 다른 일거리를 찾아 상경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옛날 방송의 드라마에서 건달이 죄다 호남 쪽 특히 목포 사투리를 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윤여정도 반한 총리밥상

    몇 시간 걸었다고 허기가 진다. 목포는 시가 슬로건을 ‘맛의 수도’로 정했을 정도로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관광개발연구원이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8권역(남도맛기행)에 포함하기도 했다. 홍 대표에게 식당 추천을 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오거리식당으로 안내했다. 주변 백반집이 다 맛있지만, ‘총리밥상’으로 알려진 오거리식당이 대표격이다. 이낙연이 전남도지사 시절 찾아 자주 찾았다. 그 외 유명인 방문이 하도 잦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최근 윤여정 배우와 이정은 배우도 방문했다.

    처음 내어준 반찬만 보고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왼쪽 사진), 시작에 불과했다. 성인 남녀 4명이 다 먹을 수 없는 양이 나왔다.

    ‘총리밥상’은 1인당 2만 5천 원이다. 4명 기준 한 상에 10만 원인데, 상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으로 반찬이 나온다. 이곳 홍어는 많이 삭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코가 찡한 맛을 기대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졸깃하고 싱싱해서 초심자도 부담스럽지 않게 입문할 수 있다. 당일 새벽 시장에서 공수해오는 제철 물고기가 회로 나오면 싱싱하고, 구이로 나오면 고소하고, 찜으로 나오면 짭조름하다. 레퍼토리가 다양하니 먹는 맛이 배가 된다. 총리밥상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1만 원짜리 생선백반을 시키고, 홍어를 추가로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


    ◇ 14년 전 가격 그대로 할머니 바리스타

    밥 배와 후식 배는 따로 있다. 목포는 목포 9미 뿐 아니라 디저트 격 주전부리도 우수하다. 홍 대표가 선택한 맛집은 코롬방제과, 쑥꿀레가 아니었다. 후식은 할머니 바리스타가 만드는 팥빙수를 선택했다. 14년 전부터 아메리카노 2000원, 눈꽃빙수 5000원 가격을 고수한다. 커피에 떡을 먹어도 5000~6000원 선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커피 한 잔 가격이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백발이 성성한 주인장에게 여쭤봤다.

    ‘한마을 떡’ 한 쪽에 목포여고 시절 강정숙 선생님의 흑백 사진이 있다. 괜찮아마을 친구들과 활짝 웃고 있는 사진도 옆에 놓여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게 아니라 목포시민을 위해서 가격을 위해서 가격을 14년 전부터 그대로 받고 있다. 서울 물가는 너무 비싸다. 내 집 앞 소비자에게 이쁘지는 않지만, 다른 데 없는 떡을 만들어 내놓는다. (떡이) 누구 입으로 시집갈지 생각하면서 만든다. 손님들과 대화도 즐겁다” 80세가 넘어 커피를 배운 할머니 바리스타 강정숙 선생님은 1935년생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학업을 잇기 어려워 신문 배달, 옷 장사 등 안 해본 게 없다. 4남매를 키우고 ‘한마을 떡’ 자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다가 80살이 넘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잠시 우르르 몰려오는 관광객이 아니라 가난한 목포 사람을 위해서 만든다는 말이었다. 힘들지 않냐고 여쭤보니 “몸은 고단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진열하고 나면 ‘밥은 먹고 살겠구나. 이 손이 보험이다. 열심히 일하자’라는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 괜찮아 마을은?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거 같은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에 괴로워하는 청춘들이 의외로 많았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여행이 아니라 아예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목포에 모였다. 한 시인이 3층짜리 여관 건물 우진장을 20년 무상임대해주었다. 2017년 괜찮아 마을은 그렇게 탄생했다.

    ‘괜찮아마을’은 6주 지역 살이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일간’, ‘주간’ 프로그램을 추가로 운영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07명이 참가했다.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30여 명의 청년이 창업 혹은 취업해 목포에 정착했다고 한다.

    목포의 원도심 살리기이자 방황하고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괜찮아 마을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권오균 여행+ 기자]

    - Advertise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