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붐비고 볼 거 많은 여행지 찾는다면…안동말고 옆동네 예천으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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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정 가운데 날 경북 예천에 다녀왔다. 8월 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돌입 이후 국내 출장이 재개된 건 거의 두 달 만이었다. 오랜만의 출장을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고민이 깊어졌다. 덜 붐비면서도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어야만 했다. 사실 10월은 전국 어디를 가도 좋다. 단풍으로 물든 동네 뒷산, 청량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집 앞 개천에만 나가도 감회가 새로운 계절이 바로 가을이니까.

    고민이 쉬 끝날 것 같지 않자 방향을 틀었다. 코로나 시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다. 일단 붐빌 것 같은 곳은 전부 리스트에서 지웠다. 그렇다고 뻔한 곳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예 낯선 곳을 가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고른 여행지는 바로 경북 예천이다. 전혀 정보가 없었다. 일단 예천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홈페이지 메인 사진은 ‘회룡포’. 예천은 몰라도 회룡포는 들어봤다. 뿅뿅다리인지 퐁퐁다리인지를 건너 들어가는 물돌이 마을 풍경이 머릿속에 스쳤다. 물길이 350도를 휘감는 회룡포는 워낙 외져서 차로 가는 것보다 천 반대편에서 걸어서 마을로 드는 게 훨씬 빠르다고.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 속 회룡포마을은 뭍으로 연결되는 지점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육지 속 섬 아닌 섬’이라는 별명 그대로였다.

    초간정, 삼강주막, 용궁역, 용문사, 금당실마을…

    나머지 명소들을 살펴보는데, 용궁역과 용문사 그리고 회룡포까지, 지명에 용이 들어간 곳이 세 개나 된다. 처음엔 그저 모르는 동네라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점점 더 궁금해진다. 내륙 중의 내륙 무려 소백산맥 산줄기에 ‘용궁역’이 생겨난 배경과 천년 고찰 용문사에는 또 어떤 전설이 숨겨져 있을지 기대감을 품고 예천으로 향했다.

    단물·단술이 솟는 샘, 예천(醴泉)

    새로운 동네를 가볼 때에는 이름을 천천히 뜯어본다. 예천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건 무려 1000년이 넘었다.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에 ‘예천’이 탄생했다.

    예천(醴泉)

    ‘단술 예’자에 ‘샘 천’자를 쓴다. 단물, 단술이 솟는 샘이라니. 이렇게나 구미가 당기는 이름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 단물이 어디일까. 당장 지도 검색을 했다. 예천군에는 큰 물줄기가 두 개가 지난다. 동남쪽으로 안동·의성과 경계가 되는 낙동강과 그보다는 북쪽으로 형성된 내성천이다. (내성천 역시 낙동강의 지류니까 그 물이 그 물이다.)

    구전되는 전설에서는 ‘단물이 솟는 샘(예천)’을 특정하고 있다. 예천읍 노하리 68번지 자리에 옛날 주천(酒泉)이라는 샘이 있었다. 물맛은 달기도 달았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단다. 정유재란 때 이곳을 지나던 양호라는 명나라 장수가 이 샘의 물을 마셔 보고 감탄하면서 “과연 예천(醴泉: 중국에도 있는 지명으로 단술처럼 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함)의 이름처럼 물맛이 좋다. 예천의 지명은 이 샘 때문에 얻게 되었구나“라고 극찬했다 한다.

    이름을 살펴봤으면 이제 지리 공부 시간. 예천 면적은 66만1484㎢. 면적 절반 이상이 숲과 들이다. 임야가 54.5%, 밭이 12%, 논이 16.5%를 차지한다. 동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이 지붕처럼 덮고 서남쪽으로는 낙동강과 내성천 줄기가 흐른다. 인구는 5만5100명(2019년 기준)이다. 그러니까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친 면적보다 조금 작은 곳에 강남구 인구 10분의 1이 살고 있는 거다. 지리적인 특성만 봐도 그 모습이 얼추 그려진다. 한적하고 또 한적하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하기까지 한 전형적인 전원마을에 왜 이렇게 ‘용’의 흔적이 많을까.

    # 예천의 용 세 마리

    회룡포 용문사 용궁역

    옛날부터 용은 왕을 상징했어요.

    그래서 왕과 관련이 있는 지명에 ‘용’자를 많이 넣었는데,

    용문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곳 사찰 근처를 지났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대요.

    그때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했다

    하여 용문사(龍門寺)라 불렀다고 합니다.

    장덕철 예천군 문화관광과장

    회룡포는 마을을 싸고도는 내성천의 모양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다가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용궁역’이 있는 용궁면은 전설 속 용궁처럼 예천에도 지상낙원을 만들자고 해서 ‘용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름에 용자는 없지만 ‘장안사’ 역시 용과 관련이 있다. 통일을 이룩한 신라가 전국 세 곳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부산 기장 그리고 예천이다. 장안(長安)은 불교에서 지상낙원을 뜻하는 말로 금강산 장안사가 용 머리, 부산이 꼬리, 예천 장안사가 용 허리에 해당한다. 장안사는 회룡포를 내려다보고 있는 비룡산에 위치한다.

    드론으로 촬영한 용문사 [예천군청 제공]

    저 용문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용문사는 870년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온다. 생각보다 절 규모가 커서 놀랐다. 전각만 13개에 달하는 용문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684호)를 포함해 성보문화재 1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 경전이 보관된 윤장대는 일종의 책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대장전은 오롯이 경전을 보관한 윤장대만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예천군청 제공]

    1174년 세워진 대장전은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대장전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불단 양옆으로 색이 바랠대로 바란 윤장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팔각형 본체 위에 화려한 지붕을 덮은 모양을 한 윤장대는 대장전 건물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연결돼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윤장대 중심에 회전축을 세워 연결된 손잡이를 돌리면 윤장대 전체가 돌아간다. 글을 몰라 경전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도 경전이 담긴 윤장대를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는 효과를 본다고 여겨 그 옛날부터 참배객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윤장대는 함부로 돌릴 수 없다. 일 년 딱 두 번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윤장대를 돌리는 ‘윤전법회’를 열고 있다.


    회룡포의 명물 뿅뿅다리

    번째 용을 찾아 용궁면으로 향했다. 예천의 제1 비경 회룡포다. 내비게이션에 회룡포를 찍으면 내성천 건너편으로 안내한다. 간혹 마을 안쪽으로 가는 임도로 안내할 경우도 있는데, 내성천 건너편으로 가는 편이 훨씬 접근성이 좋다. 용궁면 읍내에서 갈 경우 내성천 건너편 회룡포까지는 차로 10분,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20분이 걸린다. 회룡포 백미는 바로 뿅뿅다리. 회룡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뿅뿅다리를 통해 마을에 들고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오래된 외나무다리를 치우고 철판을 깔아 다리를 놓은 것이 1997년 일이다. 밟을 때마다 철판 구멍을 통해 물이 ‘퐁퐁’ 솟는다고 해서 ‘퐁퐁다리’라고 불렀는데 98년 언론 보도에 ‘뿅뿅다리’로 잘못 나갔다. 보도 이후 퐁퐁다리보다 ‘뿅뿅다리’로 더 많이 알려지면서 아예 뿅뿅다리라고 이름을 고쳐 불렀다. 2004년에는 제2뿅뿅다리도 생겼다. 제2뿅뿅다리는 지보면 용포마을과 연결된다.

    회룡포마을 안 미로공원

    현재 11가구가 살고 있다는 회룡포는 고요 그 자체였다. 뿅뿅다리를 건너 곧장 연결되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 없었다. 민가는 섬 가운데에 몰려 있는데, 마을 가장 바깥쪽으로 난 산책로에서는 꽤 멀어 보인다. 저 먼 곳에 트랙터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이 워낙 굼떠 한참을 지켜봐야 겨우 움직임이 감지된다. 트랙터가 움직일 때마다 이는 먼지 바람이 아스라이 펼쳐졌다. 최근엔 미로공원도 만들어서 소소한 재미도 더했다.

    장안사 회룡포 전망대에서 본 아침 풍경

    장안사 용왕각

    이제 회룡포를 내려다볼 차례다. 내비게이션에 장안사를 찍고 이동한다.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10분 정도 계단을 따라 산에 오르면 회룡포 전망대가 나온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15도 이상 나는 날엔 아침 일찍 물안개가 피는 장관도 볼 수 있다. 마을을 싸고도는 내성천의 모양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다가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이름과 찰떡처럼 맞아떨어진다. 쏟아지는 가을 햇빛에 윤슬이 반짝이는 내성천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궁면에 위치한 용궁역은 실제 기차가 다닌다. 1928년 영업을 시작했는데 2004년엔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이 됐다. 작은 간이역이 예천 명물로 떠오른 건 2013년에 탄생한 ‘토끼간빵’ 덕분. 용궁면이라는 지명에서 착안해 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팥앙금을 넣은 동그란 빵을 만들었다. 간이역에서 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역을 찾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었다. 용궁역에 왔으면 꼭 맛 봐야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순댓국밥. 용궁시장에는 순대 전문집이 10곳이 넘는다. 용궁시장 순대의 역사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궁시장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용궁시장에는 한우 식육식당이 국밥집 만큼이나 많다.) 상인과 업자들이 몰려들자 자연스레 식당이 형성됐는데, 마침 근처에 돼지 도축장이 있어 순댓국집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용궁순대는 천안 병천순대 그리고 용인 백암순대와 명성을 나란히 한다. 용궁순대는 돼지 막창을 껍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순대보다 두껍다.

    예천의 가을엔 낭만이 있다

    초간정 삼강주막

    예천이 땅이 워낙 넓고

    볼거리가 퍼져있어서

    차 타는 시간이 많아서 어째요.

    예천군 문화관광과 김봉규 주무관이 이동할 때마다 멋쩍은 듯이 말했지만 외려 좋았다. 명소를 오갈 때마다 정겨운 시골길을 달렸다. 노을보다 더 빛나는 황금들판이 산줄기 사이사이 들어차고 마을 마을을 통과할 때마다 아궁이에서 올라오는 불 때는 냄새가 자욱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왜 이런 풍경에 마음이 동할까. ‘고향’이라는 단어가 온갖 감각으로 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예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주한 황금빛 가을. 초간정 앞 화장실은 근래 본 화장실 중 가장 예뻤다.


    예천 명소 중에서도 특히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두 곳은 초간정과 삼강주막이었다. 용문면에 위치한 초간정(草澗亭)은 1582년에 지어진 누정이다. 초간 권문해(1534~1591)가 벼슬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내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불타 폐허가 된 것을 1739년 그의 후손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소소한 동네 명소로만 알려진 초간정이 유명해진 건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소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초간정은 고애신(김태리 분)이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장소로 그려졌다. 모두 3칸으로 왼쪽 2칸은 온돌방, 나머지 한 칸은 마루로 구성된 권세있는 양반의 놀이터보다는 청렴한 선비의 공부방에 더 가까웠다. 초간정은 안에서 밖을 보는 풍경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풍경도 더할 나위 없이 멋졌다.


    삼강주막 안으로 들어가면 주모가 쳐놓은 빗금이 있는데, 일명 외상장부다.

    예천이 가을과 잘 어울리는 이유를 찾았다. 바로 ‘낭만’이다. 삼강주막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까지 장사를 했던 마지막 주막이 바로 예천에 있다. 삼강주막은 1900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마지막 주모인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돼있던 것을 2007년 예천군에서 복원했다. 주막 주변에 있는 보부상 숙소, 사공 숙소는 복원 당시 지어진 새 건물들로 주막 손님들이 이곳에서 음식과 막걸리를 먹는다. 삼강주막이 인기를 끌자 예산군에서 아예 그 일대에 문화단지를 조성 중이다. 강문화전시관과 보부상 문화체험존, 생태공원 등이 있는데 올해 7월에 오픈한 삼강나루 캠핑장이 특히 인기다. 곤충 모양으로 만들어진 펜션 10동과 오토캠핑장 20면 등이 강 주변에 조성돼있는데, 주말에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평일인데도 반 정도가 찼다. 오후 느지막이 주막에서 배를 채우고 캠핑장으로 이동해 고기를 구워 먹으면 완벽한 가을 나들이가 완성된다.

    펜션동 앞에 피어난 핑크뮬리

    곤충 모양으로 된 펜션에는 2층 침대가 구비돼 있다

    야외에서 먹는 고기는 꿀맛


    ‣‣‣‣‣ 예천 여행 팁1

    예천군이 최근 개발한 ‘왕의 구슬’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예천 여행의 재미가 배가된다. ‘왕의 구슬’은 백두대간 파워스폿을 주제로 예천군 곳곳에 퍼져있는 명소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2019년 한국관광공사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으로 선정된 ‘왕의 구슬’ 프로그램은 용문사, 하늘자락공원, 초간정, 금당실 전통마을 등을 방문해 동선별 미션지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미션수행을 하도록 꾸며졌다. 앱스토어에서 ‘조인나우’를 다운로드해 미션탭에서 ‘왕의 구슬: 조선의 활력 콘텐츠’를 실행한 후 진행하면 된다. 미션에 대한 힌트가 담긴 미션지는 용문사 관광안내소 및 예천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수령 가능하다.

    예천군이 개발한 ‘왕의 구슬’ 프로그램 미션지 [예천군청 제공]


    ‣‣‣‣‣ 예천 여행 팁2

    예천은 ‘활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서는 최초로 양궁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궁장 권영학, 시장 김종국씨가 예천에서 지금까지 활을 만들고 있고 1979년 세계 양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한 김진호 선수,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윤옥희 선수 등 예천 출신 양궁 국가대표는 10여명이 넘는다.

    활기찬 예천 활체험센터에 가면 양궁(리커브), 국궁, 호버볼체험, 활서바이벌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코치와 스태프들이 활 잡는 법부터 활시위를 당기고 놓는 것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초보자도 수월하게 체험할 수 있다.


    ‣‣‣‣‣ 예천 여행 팁3

    용문사로 차로 10분 거리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이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전망대에 오르면 양수발전소 용문 상부댐 어림호와 용문산을 비롯해 일대 산군은 물론 30㎞ 멀리 떨어진 예천 신도시까지 조망된다. 최근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에 황금색 봉황 조형물이 세워졌는데, 사연은 이렇다. ‘봉황이 단물만 먹는다’는 속설에서 예천(단물 샘)과 봉황의 연관성을 찾았단다.

    드론으로 찍은 소백산 하늘자락공원 전망대 [예천군청 제공]

    홍지연 여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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