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00로 보관할 수 있다는 이색 체험 직접 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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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 감정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의 멋진 석양, 끝내주는 분위기의 식사,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까지. 우리는 소중한 순간들을 곱씹기 위해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 보면 한 번쯤은 과거의 여행지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 그때마다 찍어둔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지라고 말끝을 흐리곤 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흐린 기억을 애써 잡아 보려는 기분에 아쉬웠다면 여기, 나도 모르는 방법으로 기억과 감정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오늘은 지난 여행지에서의 기억과 추억을 고이 간직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랜덤 다이버시티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RANDOM DIVERSITY>

    2021.08.01. ~ 2021.10.03. 송원아트센터

    먼저, 우리가 느낀 기억과 감정을 색으로 치환해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천영환 작가의 <랜덤 다이버시티> 전시회에서는 뇌파분석 장치를 이용해 뇌파 패턴을 기반으로 색상을 추출할 수 있다. 전시회를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우상, 연인 등을 통해 느낀 감정을 간직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여행지에서의 감정을 색으로 간직하기 위해 전시회장을 찾았다.

    전시회 장소인 송원아트센터의 입구를 통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이곳을 지나간 다양한 기억들이 보관되어 있다. 각자의 이름으로 라벨링 된 색들은 이모션 백신이라는 유리병에 저장된다. 미묘하게 다른 명도와 채도들이 우리 기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과연 내 기억 속 여행지는 어떤 색을 가지고 있을지,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며 계단을 내려갔다.

    emotion AI 실험은 본인이 고른 한 가지 사진을 통해 측정된 색상을 간직할 수 있는 실험이다. 간직하고 싶은 감정을 연상시킬 수 있는 사진을 오픈 채팅방에 전송하면 실험이 시작된다. VR 기기를 통해 해당 사진을 응시하며 여행지에서의 특정 감정을 떠올리면 된다. AI의 분석을 통해 특정 감정을 떠올릴 때의 색상 좌표를 추출하고, 이 좌표를 혼합 장치로 전송해 색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필자는 2019년 여름, 한 달 동안 여행한 호주의 마지막 여행지인 시드니에서의 기억을 골랐다. 공연을 보기 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응시하며 그때의 날씨와 온도,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떠올렸다. 낯설지만 설렘 가득했던 그날의 여름은 어떤 색으로 표현될까?

    내가 기억하고 느꼈던 시드니의 여름은 맑은 분홍색이었나 보다. 오페라 하우스 뒤쪽으로 나지막이 사그라들던 그날의 일몰과 닮아 있었다. 내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감정이 치환된 색을 보고 있자니, 이모션 백신이 2년이 넘는 시간의 공백을 훌쩍 뛰어넘게 해 준 것만 같았다.

    여행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덕인지 필자가 생각하는 기억과 유사한 색이 추출되었지만, 나도 모르는 나의 뇌파를 통한 측정이기 때문에 어떤 색이 추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렬한 일몰의 감정이 탁한 녹색으로 나올 수도 있고, 바다에서의 푸른 기억이 붉은 태양빛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기억을 나만의 색깔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두는 것이 좋겠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 2층에 도착하면, 전시회의 주제를 관통하는 소개 영상과 다양한 오브제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장 한가운데에는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물건이 설치되어 있는데, 코인 거래량에 비례해 자동적으로 거품을 생성하는 버블 스프링클러이다. 무색인 동시에 유색인, 이중적 의미를 가진 버블에 작가 천영환의 해석을 더한 작품으로, 15분 간격으로 15초 동안 작동한다. 가운데가 뻥 뚫린 전시회장 위로 올라가는 버블에 눈을 맞추다 보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버블의 이중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버블 스프링클러를 지나 지상으로 쭉 올라오면 또 다른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인간의 시각을 통한 전기신호를 색으로 이해하는 이번 랜덤 다이버시티에 그치지 않고 향후 후각, 미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연구를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작가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곳이다. 탁 트인 공간에 우리의 감정이 해석된 다양한 색들을 마주할 수 있으니, 색 추출 실험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꼭 들러 보길 바란다.

    이외에도 AI 기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범주화된 우리들의 모습을 재정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상주하는 큐레이터를 통해 함께 사진을 출력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체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독특한 흑백 사진을 남길 수 있으니, 인증 숏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잊지 않고 사진을 남겨 보는 건 어떤지.

    랜덤 다이버시티 [색추출 실험]

    가격 : 색추출 실험 1인 18,000원

    장소 : 송원아트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75)

    사전 네이버 예약 필수


    랜덤 다이버시티 -프레그넌스

    <RANDOM DIVERSITY>

    2021.08.01. ~ 2021.10.31. 갤러리 오프(Oeuf)

    특정 기억을 연상시키는 고유한 향기를 찾아 나서는 프랑스의 조향사 ‘Jeanne Passera’와 협업한 이 체험은 랜덤 다이버시티 알고리즘을 시각이 아닌 후각에 적용한 것이다. 송원아트센터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이동해 경복궁역 근처 갤러리 오프에서 체험할 수 있다.

    특정 향기에 자극받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프루스트 효과’ (Proust Effect)를 모티프로 진행되는 전시로, 색추출 실험과 유사하게 뇌파와 뇌의 변연계 반응을 측정해 나만의 향수를 제작할 수 있다.

    갤러리 안은 마치 실험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전시와 관련된 굿즈 몇 가지를 만나볼 수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늘 향으로 추출될 기억과 감정을 측정할 기기들이 마련되어 있다. 랜덤 다이버시티와 유사하게 VR 기기를 착용한 뒤, 뇌파 측정과 더불어 후각이 관여하는 뇌의 변연계 반응도 함께 측정한다.

    필자는 화려한 야경이 인상 깊었던 홍콩에서의 기억을 가져갔다. 해당 이미지는 홍콩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잔잔한 물살 위 페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VR 기기를 착용한 뒤 의자에 편하게 누우면 진행자가 탑, 미들, 라스트 각각 3개씩 총 9개의 향의 시향을 도와준다. 시향을 진행하며 특정 향기에 반응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탑, 미들, 라스트 각각 1개의 향기를 체크하면, 향수 제작의 지표가 되는 결괏값이 나오게 된다.

    측정 시 사용한 9가지의 향은 우디 계열부터 플로럴, 시트러스 등으로 다양하다. 필자는 평소에 시트러스, 우디, 모스 등과 같은 숲의 향을 선호하는 편인데, 홍콩에서의 감정과 기억은 필자의 선호와는 조금 달랐다. 탑은 그린, 미들은 무화과와 같은 과일, 라스트는 포근한 엠버 계열의 향이 나왔다.

    측정이 완료되면 자리를 옮겨 진행자의 설명에 따라 결과지에 체크된 숫자와 동일한 병을 찾아 직접 샘플을 제작하면 된다. 스포이드로 탑과 미들, 라스트의 향기를 담아 조심히 나만의 향기를 제작한 뒤, 나만의 제목을 달면 감정과 기억을 담은 멀티 퍼퓸이 제작된다.

    필자의 감정과 기억 속 홍콩은 조금 따뜻한, 은근한 숲 냄새를 풍겼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홍콩의 밤과 어울리는 향기였다. 페리 위에서 찍은 사진이라 물의 따뜻함이 전이된 걸까 생각하며 체험을 마쳤다.

    색추출 실험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선호하거나 생각했던 향기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힐 기억을 간직해 줄 저 작은 병 속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떠한 색과 향이 나와도 그 속의 기억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랜덤 다이버시티 [향추출 실험]

    가격 : 향추출 실험 1인 35,000원

    장소 : 갤러리 오프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하동 152번지 2층)

    사전 네이버 예약 필수


    프루스트

    <PROUST : in search of lost scent>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6길 38-3

    기억을 통해 향기를 담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뇌파가 아닌, 온전히 나의 감각과 기억에 의존해 직접 향수를 제작하는 향수 공방을 찾았다. 대학로의 조용한 골목길, 한옥 공방 프루스트는 순수 원료와 300가지가 넘는 향료의 배합을 통해 나만의 유니크한 향을 표현할 수 있다. 필자는 프립 플랫폼을 통해 나만의 향수 만들기(50ml) 클래스를 예약했다.

    탁 트인 입구와 쭉 뻗은 서까래가 매력적인 프루스트의 내부는 조용한 분위기로, 온전히 향수 제작에 집중할 수 있다. 내부에 진열된 수많은 향료들을 보니, 흐릿했던 여행의 기억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필자는 보홀에서의 기억을 향수로 만들기로 했다. 짠 기가 가득했던 바다와 적당히 따뜻한 수온, 바닷속 수많은 생물들과의 만남을 기억하며 향수 제작에 들어갔다.

    먼저 프루스트에서 제안하는 7가지 베이스를 하나씩 시향한 뒤, 제작하고 싶은 향수의 느낌과 가장 유사한 한 가지 향을 골랐다. 무궁무진한 향기 중 어떤 흐름으로 향수를 제작할 것인지 큰 가지를 잡는 것이다. 필자는 [healing]이라는 이름의 베이스를 선택했다.

    그 후 어떤 향기, 느낌으로 향수를 제작하고 싶은지 조향사에게 설명을 전달하면, 300가지의 향료 중 몇 가지를 골라 제안해 준다. 필자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아쿠아 계열 향료와, 물속에서 만난 생물들을 연상시키는 풀, 모스 계열의 향료를 부탁했다.

    조향사가 가져온 6~8개의 향료를 하나씩 시향하며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4가지 향료를 선택했다. 이제 베이스를 포함해 총 20g에 맞춰 각각의 향료 비율을 선택하면 된다.

    단순한 바다 향이 아니라 소금의 짠 기까지 표현한 [Majoram]을 가장 많이 넣기로 하고, 이끼 향인 [Moss], 따뜻한 바다 느낌이 나는 [Marine], 시원한 물 향이 나는 [Coolwater] 순서로 비율을 정했다. 저울을 이용해 비율을 정확히 맞춰 배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비율에 맞춰 샘플을 제작했다면 살짝 흔들어 블렌딩한 뒤, 시향지를 담가 본인이 원하는 향이 맞는지 중간 테스트를 진행한다. 짠 기가 있는 바다에 푸릇한 생물들의 향, 따뜻했던 그날의 수온까지. 필자가 기억한 보홀의 바닷속과 똑같은 향이 나왔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여서인가, 놀랄 만큼 맘에 든 샘플에 만족하며 같은 과정을 반복해 샘플의 양을 2배로 늘렸다. 약간의 수정을 거치고 싶은 이들은 두 번째 과정에서 다른 향료를 추가하거나 비율을 달리 만들 수 있다.

    이끼 향료 때문인지 바다색보다는 탁한 초록빛을 띈 내 기억 속 보홀이 완성되었다. 향수 제작이 끝나면 3가지 패키지 포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고뇌, 사랑, 자유를 의미하는 3가지 일러스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필자는 망설임 없이 자유를 표현하는 일러스트를 선택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향수는 2주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쳐 개봉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향수를 들고 둘러보지 못한 공방을 구경했다. 프루스트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몇 가지 향수와 책과 함께 즐기면 좋은 디퓨저까지 진열되어 있으니, 취향에 맞는 제품이 있다면 구매해 보는 것도 좋겠다.

    프루스트 [나만의 향수 만들기 클래스]

    가격 : 65,000원 (프립 예약)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6길 38-3


    완전히 기억되고 보존되는 것이 과연 있을까.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진 색과 향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과 현재의 우리를 연결하는 끈을 조금 더 늘려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여행에서의 기억, 타인과의 기억, 나와의 기억을 가지고 감정을 형상화해 보는 것은 어떤지.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의 유통기한을 만 년으로 늘려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글 = 유신영 여행+ PD

    사진 = 유신영 여행+ PD, 이승연 여행+ 인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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